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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국립중앙박물관)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언제 : 2015년 9월 26일 토요일

어디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기획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이전 10주년을 기념한 고대불교조각대전(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는 인도에서 시작된

불상의 제작 전통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여준 전시회다.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 금속공예의 진수인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78호만 전시를 하였고 83호는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고대불교 조각대전에서 9월 25일부터 78호와 83호가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일반인에게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이 민족 대명절 추석임에도 카메라를 챙겨 국립박물관에 갔으나

전시회장 사진 촬영은 안된다네.

그러나

국보 제 78호와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어 감사히 보고 왔다. 

 

 

 

전시기간 : 2015.09.25. 금요일 ~ 11.15. 일요일

 

 

 

입장료 

만65세 이상 : 3,000원 - 성인 : 6,000원 - 대학생, 중, 고생 : 5,000원 - 초등생 : 4,000원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전시된 불상들을 담을 수 없어

사진으로 전시된 작품만 블로그에 올린다.

 

 

 

육계에 홈이 있는 부처

간다라 탁트 이 바히 - 쿠샨 시대, 2~3세기 - 영국박물관

 

 

 

중국식 법의를 입은 부처

허베이 성 스자좡 시 - 북위 또는 동위 -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방형대좌 반가사유상- 보물 331호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특별전은 4부로 구성되며 불교 작품 210점 전시한다.

 

첫 번째는 ‘인도의 불상-오랜 역사의 시작’

석가모니의 열반 후 초기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사리’였지 불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원 전후가 되면 신을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높아지면서 불상이 만들어졌다.

처음 불상이 제작되었을 때에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사후 400년이 되어서야 불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설법하는 부처

간다라 2~3세기 - 현암 - 높이 55.5cm

독일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소장

 

 

 

빛살무늬 두광의 부처

간다라 1~2세기 - 청동 도금흔적 - 높이 16.8cm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석가보니의 교화

간다라 쿠산시대 1~2세기 - 높이 24.5cm, 길이 73cm

독일 베를린 아시아미술관

 

 

 

 

 

 

 

 

 

 

 

 

두번째 테마는 중국의 불상 '시작부터 수대까지’로,

중국의 5호16국부터 수로 이어지는 중국 불상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인도 간다라 불상을 모델로 제작하지만 후대로 들어오면서 간다라 양식과는 다른 중국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조금씩

불상 제작이 변천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세션이다.

간다라의 불상이 자연스러운 옷 주름으로 묘사되었다고 한다면, 중국 불상은 몸의 중심을 따라 주름이 구현된다.

쓰촨 성에서 발견된 불교 조각은 윗단과 중간 단, 아랫단의 3중 단으로 제작된 비석 양식이 눈에 띈다.

몸의 양감과 굴곡을 강조하기 위해 불상의 옷이 얇아지는 복식의 변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총 150점의 해외 불교

조각이 선보이는데, 그 중 100점이 중국 불교 조각으로 해외 전시물 가운데 중국 작품의 비중이 높다.

 

 

 

 

 

 

 

 

 

 

대세지보살

수 6세기 - 금동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삼존불

 

 

 

금동으로 만든 큰 부처

산시성 우타이산 - 북위 5세기 - 금동 - 높이 140.3cm - 현존하는 금동불 가운데 제일 크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반가사유상

산동성 칭저우시 용흥사지 - 북제(550~577) - 석회암 - 높이 68cm

중국 칭저우시박물관

 

 

 

 

세 번째 테마인 ‘한국 삼국시대의 불상’에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다가 6세기부터 점진적으로 한국적인 양식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반 세기라는 간격을 두고 한국 불교 조각이 중국의 방식을 따라 만들기 시작하다가 모방의 단계를 지나

한국적인 방식으로 조각품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점은, 앞서 중국이 인도 간다라 양식의 불교 조각을 만들다가

점차 중국적인 방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점과 궤를 같이 한다.

 

 

 

 

 

국보 제85호 -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삼국시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국보184호

국립대구박물관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3호)과 함께 출토되었다.

 

 

보주를 든 부처

신라 - 7세기 전반 - 금동 - 높이 30.7cm

국립중앙박물관

 

 

금동 계미명 삼존불입상 국보72호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국보247호

공주국립박물관

 

 

 

일본으로 건너간 반가사유상

6~7세기 금동 - 높이 20.4cm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보살

6세기 - 금동, 높이 45.3cm -일본 도쿄예술대학미술관

 

 

 

네 번째 테마인 ‘반가사유상의 성립과 전개’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도상이자 가장 주목할 만한 종교적, 예술적인 성취를 이룬 반가사유상을 조명한다.

반가사유상은 실존에 대해 사유하는 인물을 묘사하던 인도의 전통에서 출발했고, 한-중-일 삼국에서 두루 제작되었다.

그 중 한국은 동아시아 삼국의 보살상 중 반가사유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독 높아

반가사유의 도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반가사유상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전시물은

50년만에 처음으로 원래의 소장처인 경북대학교박물관을 떠나 선보이는 석조반가사유상과,

2004년 이후 11년만에 나란히 전시되는 국보 78, 83호 반가사유상이다.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높이 17.5cm

1944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공사를 하던 중 출토된 출토지가 확실한 고구려의 반가사유상이다.

 

1944년 평양(平壤) 평천리(平川里) 유적지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불상이다.

삼국기(三國期)에 유행한 반가상(半跏像)이 오직 백제(百濟)와 신라(新羅)에서만 그 유례(遺例)를 볼 수 있었는데,

이 불상으로 새로이 고구려(高句麗)의 유례를 첨가하게 된 것이다.

왼발을 받치기 위하여 약간 앞으로 내면 원형에 가까운 연화좌(蓮華座) 중앙의 원통형 좌대(座臺) 위에 왼발을 내려 놓고

반가(半跏)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른손은 그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이 발목을 잡고 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에 얹어 놓았으나, 팔과 손이 떨어져 나가 원형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손으로 턱을 괸 사유(思惟)의 모습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윗몸은 나신(裸身)으로 허리가 가늘고, 허리 이하의 상의(裳衣)는 얇은데 왼쪽 다리에서 고선(孤線)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오른쪽 다리 밑으로는 2단의 습(褶)을 그리면서 대좌를 덮었는데, 좌우로는 비대(비帶)가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에는 간단한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약간 앞으로 수그린 얼굴은 장방형이며, 두 눈은 반쯤 뜨고 코와 입술은 작은 편인데

미소는 뚜렷하지 않다. 두 귀는 길게 늘어지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장엄구는 팔찌가 있을 뿐이다.

뒷머리부분에는 굵직한 꼭지가 달려 있는데, 광배(光背)가 달려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전면(全面)에 녹이 나 있는데, 일찍이 불에 탔던 흔적이 있고, 오래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침식(浸蝕)이 심하나

곳곳에 아직도 도금(鍍金)이 남아 있다.

일부의 손상은 있으나 고구려(高句麗) 반가상(半跏像)으로는 초유(初有)의 것이며,

근엄(謹嚴)한 얼굴이나 청수(淸秀)한 몸집의 표현 등은 한국(韓國) 반가상 고찰에 한 좌표가 되는 귀중한 유례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봉화북지리석반가사유상(奉化北枝里石半跏思惟像) - 보물 997호

경북 봉화군 북지리 -신라 말-통일신라 초, 7세기 후반 -화강암,높이 170cm, 연화좌 지름 75cm,

경북대학교박물관

 

상반신은 옷을 벗은 듯 하고 하체에 표현된 옷은 매우 얇다.

왼쪽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오른쪽 다리는 매우 크고 무릎을 높이 솟게 하여 강조하고 있다. 올려 놓은 다리 밑에는

  3단으로 옷주름이 부드럽게 흐르는데 그 선이 분명하다. 이들 옆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고리와 화려한 구슬 장식이 있다.

불상의 뒷면은 옷주름만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어 앞면을 위주로 조각했음을 알 수 있다.

발받침대는 약 70cm의 원반형으로 아래로 향한 연꽃이 7잎 새겨져 있다.

 

상체는 어디로 가고 허리 아래만 남았는데

높이가 1.7m 무게 2.6t 온전했다면 전체규모 3m로 동양 최대 반가사유상이다.

 

 

인도 불상

 

 

 

중국 불상

 

 

 

일본 불상

일본 국보 제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 78호 - 금동미륵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삼국시대 - 6세기 후반 - 금동,높이 82cm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제 83호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삼국시대 - 7세기 전반 - 금동. 높이 93.5㎝.

국립중앙박물관

 

후기에 국보 제78호와 제83호 반가사유상에 대한 글과 사진을 자세하게 담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