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령 철종의 잠저 용흥궁(龍興宮)과 강화 성공회 성당
어디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
추석 연휴 집안 어르신 혹은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할 만한 곳이 마땅하지 않다면,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며 먹거리가 풍부한 강화도라면 어떠할까?
추석이 다가와 모처럼 아내와 강화 풍물 시장과 인삼 시장에 가서
땅콩, 인삼, 그리고 젓갈 류를 사고, 장어구이에 소주도 한 잔 마시고도 여유로워
걸어서 10분 거리인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과 초창기 기독교 전파의 어려움을 볼 수 있는 강화 성공회 성당을 다녀왔다.
승용차라면 강화대교를 건너 읍내로 진입,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강화 버스터미널에서 약 10분 정도 강화읍 내 대로를 걸으면 안내판이 보인다.
고려궁지, 강화초등학교 방향으로 약 100m 들어오면
사진과 같은 골목을 따라 약 150m 들어가면 '설마 이런 곳에'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주변 건물과 다른 기와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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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 뒤 언덕에서 본 용흥궁 입구
용흥궁 입구
안채
행랑체
안채로 들어온다.
예전에는 관리가 잘 되었던데 이번 방문길은 관리가 허술하다는 느낌이다.
사랑채
사랑채 측면으로 가면 후문으로 나가는 계단이 나온다.
후문으로 나와 내려다 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 살았던 집이라는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
잠저구기 비(潛邸舊基碑)
강화 성공회 성당 - 사적 제4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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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공회 성당 정문인 솟을 대문
외삼문격인 대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위에는 '聖公會江華聖堂(성공회강화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문에는 태극문양을 본뜬 큰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현재 종각을 공사 중이라 정문 출입이 금지 되었다.
종각 건물은 옛날 사진
절의 범종과 생김새는 같으나 십자가 문양이 있어 아주 인상적이다.
처음 1914년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었는데
음색이 아름답고 소리가 4방 30리까지 울려퍼졌다는데
1945년 일제에 의하여 징발되어 서양식 종을 대신하여 1989년 신자들이 모금해 다시 만든 종이란다.
강화 성당 정면 모습
전면 기둥에는 절의 주련처럼 5개의 한문 주련이 연꽃 문양 아래 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
처음도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시다.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선인선의율조증제대권형)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니 이에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 되었다.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삼위일체천주만유지진원)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 만물의 참된 근본이되신다.
神化周流츉庶物同胞之樂(신화주류유서물동포지락)
하나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다.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복음선파계중민생영지방)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성당 내부
마치 큰 배를 연상하게 되며 지붕에 십자가와 천주성전이란 현판만 없다면 영락없는 어느 절과 같다.
이것은
토착문화의 옷을 입히어 거부감이 강한 서양 종교를 민중의 마음으로 다가갔던 고뇌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물 구조는
정문인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홍살의 범종이 있는 종각 그리고 성당 본관이 있고 본관 뒤에는 사제관이 있다.
사제관
요즘 공사 중이라
정문 출입 금지로 돌담길을 따라 저기 보이는 샛문을 이용하여 성당에 들어갔다.
강화 성공회 성당 소개
고종 33년(1896)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찰스 존 코르페(Charies Jone Corfe : 한국명 고요한) 초대주교가 이곳에 한국 최초의 한옥 성당을 세우고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 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1981년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처음 지정된 이래 강화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인천지방유형 문화재로 변경되었다가 2001년 1월에 국가사적 424호 로 변경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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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代 主敎(초대 주교) 고요한 記念碑(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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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聖公會第三世主敎趙瑪可記念碑(조선성공회제3세주교조마가기념비), 主敎(주교) 端公(단공) 雅德(아덕) 記念碑(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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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Alma) 수녀 기념비
알마 수녀는 1896년부터 강화도 온수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1906년 전염병으로 죽은 수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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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단군 이래
한반도 역사의 박물관이라 해도 과하지 않는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마니산 참성단을 시작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과 현존하는 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등사와 조선조 정족사고
그리고
남한에서 볼 수 없는 고려의 왕릉과 팔만대장경에 대한 역사가 있고,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
염하강을 따라 조선말 외세 침략에 피로 얼룩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용진진, 대원군의 척화비,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절집처럼 성당을 지은 강화성당과 온수리 성당, 조강 너머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통일 전망대 등 많은 볼거리가 있는 강화도인데
오늘은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과 강화 성당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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