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새벽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서도 울타리를 타고 올라
삶의 현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화사하게 웃음을 선사하는
능소화를 휴대전화기로 담았다.
해마다
보는 능소화지만,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능소화가 일찍 피어 어느새 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통이 트는 새벽이다.
공원은 아직 조명이 켜 있다.
능소화(Chinese trumpet vine)는 중국 원산의 갈잎 덩굴성 목본식물이다.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착 뿌리(흡반)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물체에 지지하여 타고 오르며 자란다.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색의 꽃이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핀다
능소화는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핀다.
꽃은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이며,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작은 나팔꽃 같고,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된다.
무척이나 고고하고 화려한 능소화이지만, 전해오는 전설은 슬프고 애처롭다.
옛날 중국에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는데 어느날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을 나눈 그 밤 이후로 임금은 소화를 찾아 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소화는 결국 상사병에 걸려 죽으며,
죽어서도 담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소화가 죽은 뒤 그 자리를 뒤덮고 피어난 꽃이 바로 저 능소화란다.
그런 소화의 단심 때문인지 능소화는 시든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몸을 던질지언정 추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는 소화의 절개같이 시들기 전에 송이째 뚝뚝 떨어져버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화려하지만, 알고보면 아픈 사연 한둘씩은 가지고 있는 것.
어쩌면
사람이나 꽃이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아픔을 머금고 피어날 때 꽃은 더 처연하고 화사하듯, 능소화 꽃말은 '찬란한 슬픔'이다.
아직 동이 트지 않는 신새벽이고 도시인데도 어디서 벌들이 날아왔는지
능소화꽃에는 꿀벌들이 꿀을 따느라 요란스럽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노송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인상적이다.
요즘 새벽마다 걷는 공원 길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도 전에 가을꽃 코스모스가 피었다.
젊었을 적엔 'OOO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라며 위안을 삼았는데, 이제는 조금씩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세월 아무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별거 없다.
여름이 시작하기도 전에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우리나라에 전염되었다.
이 대재앙에 대처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함으로 전 세계인이 한국으로 오던 걸음을 돌려버려 경제는 빨간불이 켜졌는데,
지난 6월 25일
TV로 중계되어 국민이 보는 국무회의 대통령 입에서 자신의 비서실장을 지낸 여당의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자"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꼭 심판을 해 달라"는 등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차마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대통령 입을 통해 전국민이 들었고, 그로 인해 정치권은 정쟁으로 나라는 꼴이 아니며,
더위와 삶에 지친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심신이 피로하다.
가난한 국민은 더위에 시달리고, 삶에 지치고, 정쟁에 식상하지만,
울타리 높은 곳에 올라 꽃을 피운 능소화가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통령을 대신해
화사하고 고운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그래!
능소화라도 보며 마음을 달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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