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157호
황제국의 상징, 환구단(圜丘壇)
환구단과 황궁우는 당시 고종이 황제로서 제천 의례를 행하던 곳으로,
예로부터 천자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나 천황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 대해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ㆍ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현재는 황궁우와 3개의 돌북, 그리고 석조 대문만이 남아 있다.
한편, 1960년대 해체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환구단의 정문이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어 복원 공사가 진행되어 2009년 12월에 복원되었으나
문은 닫힌체 열리지 않고 있다.
덕수궁에서 바라 본 환구단 정문
싸리꽃
자주색 작은 꽃으로 화려하기는 하지만, 화려함보다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알싸한 꽃이다.
환구단 정문
환구단은 사라져 없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이 버티고 있는데, 2009년 환구단 정문을 재현했지만 아직도 사용하지 못한다.
석고(石鼓)
석고는 광무 6년(1902)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조형물이다.
3개의 돌북은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몸통에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이 용무늬는
조선조 말기의 조각을 이해하는 좋은 자료로서 당시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된다.
황궁우(皇穹宇)
환구제의 주요대상인 하늘 신(황천상제 :皇天上帝). 땅 신(황지기:皇地祈). 그리고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등의
신위판을 봉안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환구단 건립 2년 후인 1899년에 완공하였다.
삼층의 목조건물로 언덕 위로 우뚝 솟아 있어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祭天)의 장소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 주며,
황궁우는 팔각 월대 위에 지어진 팔각 평면의 건축물로 기둥 또한 팔각이다.
외부에서는 3층 구조로 보이나 내부는 1층에서 3층이 모두 통해 있는 통층으로 되어 있으며,
팔면에 설치된 문과 창은 소슬꽃살로 장식하고
바깥기둥 사이로 물결과 연꽃 무늬(파련각:波蓮刻)를 새긴 낙양을 설치하여 건물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황궁우 정문인 전축삼문의 전경
조선호텔 시설물에 의해 좁아서 정면에서 전경을 담을 수 없다.
전축삼문에서 본 황궁우
조선호텔에 가려진 환구단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황제국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에
조선은 1464년(세조 10)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게 된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897년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 일대에 환구단을 세워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황제에 등극한다.
이것은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국의 수립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며 장소이다.
이렇게 의미있는 환구단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이 버티고 환구단 흔적을 가리우고
남은 황궁우는 주변의 고충 건물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1907년 추정하는 환구단 전경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그곳에 지금의 조선호텔이 있다.
황궁우 협문
하늘에서 본 환구단 옛 터와 황궁우
1897년 환구단을 건축 중인 모습
경운궁과 환구단의 모습
1911년 환구단 전경
황궁우 전경
1911년 황궁우와 전축삼문
갓을 쓰신 분이 보여 그 시절 풍습을 볼 수 있다.
황궁우(皇穹宇)
환구제의 주요대상인 하늘 신(황천상제 :皇天上帝). 땅 신(황지기:皇地祈). 그리고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등의
신위판을 봉안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로 환구단 건립 2년 후인 1899년에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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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병풍
황궁우 천장
황궁우 정문(전축삼문:塼築三門)
현재 남아있는 전축삼문과 일대는 사진과 달리 계단도 경사지고 축대도 사진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제향 때 신위를 모신 의자
신좌(神座)
환구단에서 제향을 지낼 때 신위를 모시는데 사용한 의자이다.
각 모서리마다 도금된 용머리를 장식했으며, 의자의 등받이 부분은 용무늬를 투각으로 장식하였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것 외에 조선이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 독립을 지향했던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 철도호텔(조선호텔)이 시커멓게 자리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가 묘를 조성할 때에도 앞이 막혀있으면 좋지 않는 자리라고 하여 그 자리를 피하여 묘를 조성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제를 지냈고,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 조선을 지향했던 환구단을, 먹고 놀고 자는 호텔이 자리하고,
남아있는 황궁우는 호텔에 가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황제국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에
조선은 1464년(세조 10)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게 된다.
이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1897년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 일대에 환구단을 세워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황제에 등극한다.
이것은
중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국의 수립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며 장소이다.
이렇게 의미있는 환구단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이 버티고 환구단 흔적을 가리우고
남은 황궁우는 주변의 고충 건물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환구단에 관한 옛 사진과 자료는 2015년 8월 7일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발췌하고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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