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사적 제122호 창덕궁 후원(後苑)
올여름 피서는 궁궐의 고목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 들으며
잠시 옛날로 돌아가 임금이 되어보고 왕비도 되어 선조들의 숨결과 역사를 돌아봄도 좋을 일이다.
가능하다면
학창시절에 비원(秘苑)이라고 불리웠던 창덕궁 후원(後苑)은 어떤가!
그야말로 구중궁궐보다 더 깊이 숨어있는 부용지의 부용정을 바라보고, 애련지 연꽃에 취해 머물다
존덕정에서 숨 돌리고 나서
오르막과 내리막 끝에 자리한 옥류천에 머물며 시원한 약주 한잔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만,
안타까운 일은
창덕궁 후원(後苑)의 자연을 손상하지 않는 아름다운 숲과 연못 그리고 작은 정자에서 더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인솔자의 설명이 끝나면 우리도 함께 나와야 한다는 일이지만,
후원과 궁궐의 관람을 마치고
가까운 곳 맛집을 찾아 시원한 냉면과 녹두빈대떡을 기다리는 시간도 행복한 일일 것 같다.
궁궐은 무료 개방이나
창덕궁 후원은 입장료 5,000원이며, 제한된 코스로 인솔자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볼 수 있다.
15:00
인솔자의 설명을 시작으로 창덕궁 후원을 관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입구에 모였다. 이곳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창덕궁 동궁 거처인 중회당이 있던 곳이다.
후원 입구 출발 고갯길 내려가니 부용지와 영화당이 보인다.
창덕궁 후원(後苑)
태종의 창덕궁 창건 당시에 조성되어 창덕궁과 창경궁의 공동 후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 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역대 왕들에 의하여 개수. 중측되어 지금에 이른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인공적인 정원을 삽입시켜, 최소의 인위적인 손질을 더해서 자연을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覽池), 옥류천(玉流泉)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 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청덕궁 후원은 여러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 정원이었다. 또한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장소이기도 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로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부용정 : 보물 제 1763호
열십(十)자 모양의 독특한 평면 형태, 공간구성, 건물의 장식 등이 뛰어난 비례와 대비로 건물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부용지와 부용정 그리고 사정기비각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하는데,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방지(方池)이다. 동서 길이가 34.5m, 남북 길이가 29.4m에 이르는 방형의 연못이다.
부용지의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부용지 서쪽에 "마니" "파리" "우리" "옥정"의 4개의 샘에 대하여 기록한 비각 곧 "사정기비각"이 서 있다.
어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연잎 위에 새끼오리 한 마리가 올라와 있다.
취병(翠屛)
취병은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기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이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긱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주합루의 취병은 1820년대 그려진 동궐도(국보 제249호)의 그림을 토대로 하여 「임원십육지 관병법」에 기록되어 있는
제작 기법대로 대나무 틀을 짜고 신우대를 심어 재현한 것이다.
어수문
어수문은 임금을 물에, 신하들은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져 있다.
어수문으로 임금이, 그 옆 작은 문(협문)으로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주합루 : 보물 제1769호
주합(宙合)이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주합루는 1776년(정조 1)에 지어 1층을 규장각, 2층을 주합루라 칭하고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부용정에서 본 주합루와 영화당
영화당
건물 앞쪽에는 춘당대(春塘臺)라는 마당이 있어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곳이나
지금은 창경궁의 담으로 막혀있고 춘당지(春塘池)라는 연못으로 바뀌었다.
영조 친필인 영화당 현판
불로문(不老門)
의두합(倚斗閤)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독서 공간으로,
의두합(倚斗閤 : 같은 건물의 동쪽 누는 영춘루, 남쪽 마루는 기오헌(寄傲軒) 현판이 걸려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과
운경거(韻磬居)는 정면 1칸 반. 측면 1칸 건물로 궁궐에서 가장 규모가 작다.
정조가 승하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외척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순조는 외척에 의해 왕권이 약화되자,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였다.
효명세자는 매우 총명하여 외척에 대항할 수 있는 반외척 세력을 정계 복귀시키고 이곳에서 세도정치의 벽을 뚫고져 노력하고
정조의 흉내를 많이 내며 왕권을 추스렸다.
그러나
대리청정 3년 3개월 만에 급서하고 만다.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
의두합 건너편에 있는 연못
창덕궁의 뽕나무 - 천연기념물 제471호
창덕궁의 뽕나무는 관람지 입구 창경궁과 경계 담장에 자란다. 이 나무는 키 12.0m, 가슴높이 줄기둘레 228cm이고
나이는 약 400년이 되었다. 옛날에는 농사와 함께 누에치기가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이었다.
이에 백성들에게 뽕나무 가꾸기를 장려하고 궁궐 안 곳곳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직접 누에치기 시범을 보이는
'친잠례(親蠶禮)'를 거행하였다.
이 나무는 현재 궁구러에 남아있는 뽕나무 중 가장 크고 나이가 많다.
관람정(觀纜亭)
우리나라 정자에서 볼 수 없는 부채꼴 모양의 정자이다.
관람정(觀纜亭)과 승재정(勝在亭) 사이의 관람지(觀覽池)
폄우사(砭愚榭)
.‘폄우(砭愚)’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쳐 경계한다’는 뜻이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말로 쓰인다.
순조에 의해 대리청정을 한 효명세자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폄(砭)’은 ‘돌침’인데, ‘돌침을 놓아 병을 치료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승재정(勝在亭)
존덕정(尊德亭)
존덕정은 인조 22년(1644)에 병자호란 당시 볼모로 잡혀간 봉림대군(조선 제17대 임금인 효종. 제위 1649~1659))이
심양고궁 대정전(1625)을 보고 온 뒤에 세운 정자로, 반월지에 두 발을 담근 모양이다.
만주족 특유의 겹지붕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조선의 왕 중에 봉림대군의 아들인 현종이 유일하게 심양에서 태어났는데,
존덕정을 지은 해에 처음 조선에 입국을 하여 존덕정 현판을 썼다.
정조의 교시
존덕정 안 북쪽 벽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제목으로 빽빽하게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정조가 집권 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강력한 내용이다.
천장 중앙에는 쌍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덥고 후덥지근한 날,
작은 산을 넘고 또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쉽지 않는 길이지만,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도심 속에 군데군데 고목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과 정자와 개울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보상을 충분히 받는다.
취한정(翠寒亭)
존덕정 일원에서 작은 산을 넘어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면 옥류천 일원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정자이다.
초가지붕인 청의정 앞에 모여 인솔자의 설명을 듣는다.
청의정((淸漪亭)
궁궐 내의 유일한 초가지붕으로, 조그만 논 가운데 세워져 있다.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유일하게 온돌방과 마루 그리고 부엌을 갖춘 살림집 형태로, 정조가 여러번 이곳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한다.
소요정(逍遙亭)
옥류천 소요암 앞에 있는 정자로 좌측에 소요암이 보인다.
소요암 아래에는 조그만 폭포까지 만들어 눈을 감고 소요정에 앉아 폭포소리 듣고 싶다.
소요암(逍遙岩)
인조의 玉流川이라는 어필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다.
飛流三百尺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소요암 아래 반석이 편편하게 깔려서 둘레가 스무 걸음이 좀 넘는데, 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띄울 수 있는 물굽이를 만들었다.
움푹 파인 물굽이에 물이 흐르면 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자신의 앞에 왔을 때 시를 읊는 놀이를 하였다며,
안내원이 설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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