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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조각 전시장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조각 전시장

 

 

 

언제 :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어디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조각공원

 

3개월 전 예약한 서울 중앙대병원에 갔더니 메르스 예방을 하기 위해 세 군데를 거쳐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복잡하기는 했으나 이렇게라도 예방을 하는 것이

지금 온 나라를 혼돈케 하며, 온 세상에 망신을 당하고 있는 메르스를 퇴치하는 길이리라.

 

오전에 진료를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젠가 지인과 둘러본 야외조각 전시장과 가족공원을 둘러보며 사진을 담아본다.

 

도심 가운데 녹음 우거진 숲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으니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다 보면

여러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고,

호수와 폭포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데이트 장소로도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청자정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상징물로 건립한 청자정은

고려 의종11(1157)넨 대궐 동쪽의 별궁에 양이정을 짓고,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건립하였다.

 

 

청자정에서 본 호수에 수련 사이로 물고기의 행진이 아름답다.

 

 

 

 

 

 

 

남계원 칠층석탑 - 국보 100호

경기 개성 남계원터 - 고려 11세기

이 탑은 세부 묘사에서는 통일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탑신이 7층이고, 지붕이 얇고 넓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탑신의 두께가 둔중한 느낌을 주는 고려 탑 특유의 특징도 보인다. 특히 이 탑에서는 고려 충렬왕 9년(1283)에 넣은 것으로

여겨지는 쪽물을 들인 종이에 은물로 글씨를 쓴 경전 일곱축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 국보 99호

경북 김천 갈항사 터 통일신라 758년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탑처럼 2단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부로 이루어진 탑이 일반적인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이 탑이 있던 갈항사는 통일신라 초기 절인 감은사처럼 하나의 금당에 두 탑이 있는 배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탑의 기단부에 새ㅐ겨진 글을 통해 신라 경덕왕 17년(758)에 영묘사 언적법사 세 남매가

이 탑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홍제동 오층석탑 - 보물 166호

서울 홍제동 사현사 터 - 고려

이 석탑은 서울 홍제동 사현사 터에 있던 탑으로 고려 정종 11년(1045) 사현사 창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새김법과 세롭게 유행한 탑신 받침의 덧붙임

그리고 벽 테두리 장식 등에서 고려 전기 석탑의 조형미가 드러난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 - 보물 282호

경기 여주 고달사 터 - 고려

두 마리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에서부터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하지만,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여느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가 우리나라 3대 선원의 하나인 고달원高達院으로 명성을 떨치던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 - 보물 358호

보제존자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고려 우왕 14년(1388)에 세운 승탑이다.

보통 승탑이 팔각 집 모양이거나 종 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이 승탑은 특이하게 불탑과 같이 네모난 형태의 두 탑으로

이루어져 매우 이채롭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이 탑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그가 주지로 있던 양주 화암사 터에도 남아 있다.

 

 

 

미르폭포

미르는 용(龍)을 뜻하는 옛말로 박물관이 위치한 용산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미르폭포', '미르못', '미르다리'가 있는 박물관 정원은 우리의 전통조경을 엿볼 수 있도록 꾸민 공간이다.

 

 

 

살구인가 매실인가

 

 

 

 

 

 

 

 

 

 

 

 

 

 

저 철조망 너머

성조기가 펄럭이는 곳은 우리 땅이면서도 우리 땅이 아닌 곳이다.

 

 

그런데

그 땅에 서 있는 전봇대로 오르는 식물이 모두 메말라 있다.

겨우내 동토에서 죽을 힘 다해 겨우 살아 이제는 살겠다며, 소박한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전봇대를 혹은 철조망을 타고 오르다가 

 무참히 죽어가는 저 식물이 우리를 향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태극기 공원

현대사에 있어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여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던 땅이기에

우리 민족의 혼을 다시 살린다는 취지로 나라의 꽃인 무궁화 형상으로 조성하였고,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 50봉과 무궁화를 식재하였다.

 

 

이렇게 쭉쭉 뻗은 나무가 있는 반면,

 얄궂게 구부러진 나무도 있는 것이 마치 우리의 삶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쭉쭉 뻗은 나무는 제목으로 좋으나 태풍에 부러지기 쉽고, 구부러진 나무는 태풍은 피하나 쓸모가 없다.

 

 

 

 

 

난데없이 장 꿩 두 마리가 저 멀리 나타났다.

가까이 가면 달아날 것 같아 몸을 감추고 부랴부랴 렌즈를 갈아 두 마리를 담는다.

 

 

아하!

 어떤 이유가 있어

숲 속에서 싸우기 좋은 넓은 잔디밭으로 장 꿩 두 마리가 결투를 하기 위해 나왔구나!

저놈들은 분명 혈기 왕성한 젊은 장 꿩이렷다.

 

 

두 마리가 자세를 낮춰 상대의 빈 곳을 노려본다.

나이 든 내가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동안 독기를 품고 노려보다가

타협이 이뤄졌는지 잔뜩 움츠렸던 자세를 조금씩 세운다.

 

 

숲에서 잘 지내다가 어떤 일로 말다툼이 생겨 결투 일보 직전에 타협이 이루어져 살벌했던 자세를 풀었다.

우리도 젊었을 적에는 어떤 일로 결투하러 산속 공터를 찾아다니곤 하듯,

살아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는

한 마리가 먼저 몸을 틀어 자리를 뜨려 하니 다른 한 마리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숲으로 사라진다.

 

 

 

 

 

 

 

 

 

보신각 종 - 보물 2호

조선 1468년

조선 세조 14년(1468) 원각사(현재 탑골공원)에 걸기 위해 만든 종이다. 절이 없어진 후 광해군 11년(1619)

보신각으로 옮겨져 오전 4시에 33번(파루), 오후 10시에 28번(인정) 울려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데 쓰였다.

하나의 몸체에 양쪽으로 용머리가 달린 장식 고리(용뉴)가 달려 있으며,

몸통 한가운데는 세 겹의 굵은 띠가 둘러져 있다.

이러한 모양의 종은 고려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와 널리 만들어진다.

 

참고로 보신각 종은 그동안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찔 때 사용되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몸통에 균열이 생겨

1985년 국민의 성금으로 새로 종을 만들어 보신각에 달아 그해 광복절에 처음 타종하였다

 

 

나주 서문 석등 - 보물 364호

고려 - 나주 서문

이 석등 기단부는 긴 팔각기둥과 위 아래에 연꽃을 장식한 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긴 팔각 기둥돌은 간주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을 통해 고려 선종19(1098)년에 만들어진

석등임을 알 수 있다. 불발기집은 원래 파손되어 없었으나, 1929년 나주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새로 만들었으며, 맨 꼭대기 장식도 새로 만든 것이다.

 

 

 

현화사 석등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고려 현종 10년(1020) 개성 현화사에 세운 석등이다. 규모가 큰 이 석등으로 미루어 당시 국가 대찰로 창건된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불발기집은 팔각으로 된 것이 많은데, 이 석등은 사각이며 불빛 창도 따로 없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석등 앞에 있는 배례석은 공양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등공양"을 할 때

예를 갖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

 

 

 

 

 

거돈사 원공국사 승표탑 - 보물 190호

고려 1018~1025 강원 원주 거돈사 터

원공국사 자종의 묘탑이다. 강원도 원주 거돈사 터에는 이 승탑과 짝을 이루는 원공곡사의 탑비가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이어받아 단정하고 균형 잡힌 팔각의 형태에 사천왕, 팔부중 등의 부조상을 새겼다.

탑신 정면 문 위에 탑 이름을 새긴 점이나 탑신에 꽃띠 장식을 한 것은 고려시대에 새롭게 시도된 것이다.

 

 

 

메밀꽃이 벌써 피어 벌들이 메밀꽃꿀을 따느라 바쁘다.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 보물 365호

고려 940년 - 강원 원주 흥법사 터

이 승탑은 신라 신덕왕과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낸 진공대사 충담의 묘탑이다.

진공대사의 입적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 승탑의 탑신은 팔각 집 모양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 중대석은 원통형에 구름과 용무늬가 화려하게 조각되어있어 매우 이채롭다.

 이 탑과 함께 발견된 석관을 통해 고승의 시신을 화장뿐만 아니라 매장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 보물 361호

고려 939년 - 경기도 양평 보리사 터

이 탑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활동하던 성주산문의 대경대사 여엄(862~930)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9년이 지난 고려 태조22(939)년에 세워졌다. 거북 받침돌의거북 머리가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탑비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머릿돌의 구름과 용은 매우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봉림사 진경대사 보월능공탑 - 보물 362호

통일신라 923년 - 경남 창원 봉림사 터

이 승탑은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신라 선종 산문 중 하나인 봉림산문을 세운 진경대사 심히(855~923)의 묘탑으로,

팔각 집 모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체에 장식을 절제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조형적 특징을 보인다.

특히 기단부 가운데 꽃띠를 두른 북 모양 중대석은 같은 시기 석등에서도 보이는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염거화상 탑 - 국보 104호

통일신라 844년 - 강원 원주 흥법사 터 춮토로 전함

이 승탑은 탑지가 함께 전해져, 승탑의 주인공과 만들어진 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탑이다.

신라 문성왕 6년(844)에 선종 산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의 제2대 선사인 염거화상(?~844)을 위해 만든 것으로

팔각 집 모양에 사천왕 등의 부조상을 새긴 전형적인 승탑의 모습이다. 이후 만들어진 승탑들은 이 승찹을 따라

대부분 팔각 구조에 화려한 부조상을 새겼다.

 

 

 

 

간혹 비둘기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혹은 겨울에 청둥오리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기는 했어도,

 서울 한복판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장 꿩 두 마리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을 본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로또복권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는데,

좋은 일일 것 같은 느낌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귀가하여 맞춰 보며,

  로또 1등만 당첨되면 나는 무조건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오늘도 늦은 밤까지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