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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폴란드 천년의 예술 특별전

 

 

 

폴란드, 천년의 예술 특별전

 

 

언제 :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어디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다보니 일상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겹입혀 마음이 답답하던 차,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이전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인

 동유럽의 폴란드, 천년의 예술 특별기획전이 열려 관람했다.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어 그럭저럭 모아 담아본다.

 

 

 

 

 

 

Ticket Box 

 

 

 

Ticket 13,000원

 

 

 

전시실 입구

 

 

 

 

 

 

 

 

 

 

 

동과 서의 경계에서

Between the East and West

 

폴란드의 역사는 서기 966년 통치자 미에슈코 1세의 기독교 공인에서 시작된다.

이후 폴란드는 라틴어 알파벳을 받아들였고 서유럽 문화와 강한 유대를 형성하며 발전했다. 서유럽의 도시계획, 건축 및 예술

양식은 폴란드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폴란드는 동쪽 영토의 확장을 통해 동방의 문물 역시 흡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교류가 활발 했던 터키 지역의 영향은 의상, 무기, 장식 예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수세기동안 폴란드에는 여러 기독교 종파와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공존했고,

동쪽 지방에는 이술람교도인 타타르 족이 살고 있었다. 이렇게 유럽의 서쪽과 동쪽의 문화가 만나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폴란드의 문화는 17세기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한다.

 

워비치의 소녀 - 1910년경

아폴로니우시 켄지에르스키 - 바르샤바국립박물관 소장

 

 

1. 폴란드 예술의 기원, 중세

폴란드의 중세 예술은 주로 교회 건축 장식이나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11~12세기에는 건축의 일부로서

돌 조각이 장식되었자만 13~14세기에 점차 교회가 웅장해지면서 그림과 조각상이 많아졌다.

교회 건축의 중심인 제단은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제작한 아름다운 조각상들과 제단화로 꾸몄다.

 

마리아 일가 - 1510~1515 - 마워폴스카 지역 화가

164cmx129cm

바르샤바국립박물관 소장

 

 

 

 

2. '사르마티안'시대의 예술

16~18세기에 폴란드는 광대한 영토를 자치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폴란드 귀족들은 자신들이

고대 동방의 용맹한 사르마티아 사람의 후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동방의 영향을 받은 옷을 입고 가문의 문장과 글귀를 넣는 초상화를 제작하였으며, 정교하고 값비싼 공예품을

수집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코페르니쿠스의 초상 - 얀 마테이코

 

 

3. 억압의 시대에 피어난 영혼의 왕국

18세게 후반 폴란드는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가 분활되고 100년이 넘게 지도에서 사라졌다.

비록 국권을 상실한 시대였지만 당시 폴란드 예술은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게 피어났다.

폴란드의 역사와 국토, 민속을 주제로 한 애국적인 주제가 각광받았으며 새로운 관객을 겨냥한

다양한 장르의 회화가 인기를 끌었다.

 

 

쇼팽(CHOPIN), 조국을 연주한 피아노의 시인

폴란드이 위대한 작곡가 쇼팽이 살았던 시기는 폴란드 역사에 있어 비극의 시대였다.

망명지에서 폴란드의 전통 선율을 담아 작곡한음악과 잃어버린 조국을 향한 마음은 동시대와 이후 폴란드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 

조국을 연주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도 비극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이번에 그의 친필 악보 ‘마주르카 마 장조 Op. 6 No.3'를 최초 공개하는데,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1831년에 쓴

글귀가 마음에 박힌다.

“만약 북쪽의 전능한 독재자(알렉산드로 1세)가 쇼팽이 작곡한

 마주르카의 단순한 선율 속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이 숨어있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당장 이 음악을 금지시킬 것이다.

쇼팽의 작품은 꽃에 파묻혀 있는 대포와 같다.”

쇼팽은 러시아 치하의 조국 폴란드를 생각하며

 “때로는 그저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내 절망을 피아노에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쇼팽의 피아노 소곡 "야상곡(Nocturne)"이나 "이별의 노래(Tristesse)"에서

그 시절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했던 그들의 삶을 짐작할 수 있고, 그 잔잔한 멜로디에는 강대국 러시아의 농노로 살아야 했던

농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슬픔이 묻어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로는 그저 신음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내 절망을 피아노에 쏟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데리크 쇼팽 - 러시아 치하의 조국 폴란드를 생각하며

Sometimes I can only groan, and suffer, and pour out my despair at the piano!

 

 

 

그룬발트 전투

그룬발트 전투는 1410년 폴란드의 브와디스와프 야기에우워(Wladyslaw Jagiello) 이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연합군이

독일 튜틴 기사단을 물리친 전쟁으로 폴란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19세기 역사화가 얀 마테이코에 의해 웅장한 화면에 되살아난 이 역사적인 전쟁은 폴란드의 찬란했던 지난날을

상징하면서 고통과 굴욕으로 점철된 정치적 탄압의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폴란드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점령 기간에도 시골의 헛간 아래에서 전쟁을 이겨낸 이 작품은

현재 바르샤바국립박물관에 영구히 전시되고 있다.

 

 

4. '젊은 폴란드' 시기의 예술

20세기로의 전환기에 폴란드 예술계에는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애국적인 주제를 벗어나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했고 시와 음악, 신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한 줄의 현-자화상 - 1908

아제크 말제프스키

 

 

5. 20세기의 폴란드 예술

1918년 독립 이후 폴란드 예술은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자 했다.

기존의 전통적 소재와 역사적 주제를 다루면서 유렵 아방가르드 사조의 급진적 태도를 수용한 창의적 시도들이

전 예술 장르에 걸쳐 확산되었다.

다양한 시각과 열정을 지닌 화가들이 2차 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폴란드 예술을 이끌어 오고 있다.

 

 

 

 

 

 

 

 

 

빅토르 구르카 - 영화 "창문 없는 집" 포스터 -1962년

빌라누프포스터미술관 소장

 

 

 

 

 

 

 

욕심이리라.

폴란드 천년의 예술 전시장에 들어서니 정말 귀하고 멋진 작품들이 많아 감사히 감상하면서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어쩌다 몇장 담기는 했으나 너무 아쉽다.

 

 

폴란드 천년의 예술을 보고 나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는 풍경이 너무 인상적이라 담아본다.

남산과 멀리 북한산이 지금의 기분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