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을 담다.
언제 : 2015. 5. 23.~8. 2.
어디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불자는 아니지만,
요즘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는
한국 불교문화의 중심에 있던 후원자들의 역할과 염원을 살펴봄으로써 종교미술 속에 나타난 후원자들의 신앙.
권력. 신분. 경제적 지위 등의 상호 관계를 조명.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조각, 공예, 회화, 경전 등을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려 다녀왔다.
발원(發願) 의미
불사(불사)란 사찰을 세워 탑을 건립하고, 법당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거나 경전을 간행하는 일을 뜻한다.
불사를 후원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큰 공덕을 쌓는 것이며,
발원(發願)이란 이처럼 공덕을 쌓으며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다.
후원자들의 소원은 국가가 평안하고, 살아서는 건강하며 죽어서는 극락왕생하는 것이었다.
고대 국가에서 불교는 중앙집권적 국가 성립의 정신적 기반이었다.
사찰 건립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탑에 봉안한 화려한 사리기는 사찰의 최대 후원자가 왕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왕실에서는 탑을 세우면서 국가의 안녕과 선대의 명복을 기원하였지만,
더불어 국력을 과시하고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는 정치적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말부터는
승려나 일반 신도들도 석탑을 세우고 소박한 형태의 사리기를 봉안하였으나
여전히 국왕의 명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발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제불입상과 금제아미타불좌상 - 국보 80호. 79호
불입상은 신목태후와 효소왕이 692년 석탑을 세울 당시에 봉안한 것이며, 아미타불좌상은 706년 성덕왕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봉안했다는 불상으로 추정된다.
△
백제 유민이 조성한 불비상
계유명 아미타불비상 - 국보 106호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비석 모양의 조각상이다. 정면에는 전씨(全氏)를 비롯한
주요 발원자들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발원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측면에는 50명의 후원자들이 모든 중생을 위해 발원한다고 기록하였는데,
여기에는 백제의 성씨와 관등, 신라의 관등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 옛 백제 유민들이
주요 발원자로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측면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天人) 8구와 뒷면의 불상 20구 옆에
후원자들의 직함과 이름을 하나씩 새겨놓았다.
▽
▽
△
승려 40인이 발원한 불상
연가칠년명 불입상 -고구려 539/금동 - 국보 119호
불상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제작 연도, 그리고 제작 목적을 기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광배 뒷면의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는 동사(동사)에서 승려 40인이 발원한 것으로,
전불(천불) 중 스물 아홉 번째 인현의불을 만들어 승려 법명이 공양하였다.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발원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관람 도중 외국인이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진을 담고 있어
외국인인데 불교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라고 물었더니 자기는 역사학자이며 지금 한국의 모대학 교수란다.
외국인이 한국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모습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황룡사지 구층 목탑 사리구 - 통일신라 7 .9세기)
고려시대에는 왕과 귀족, 고위 관료의 후원을 바탕으로 화려한 불교 문화가 꽃피었다.
그 중에서도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경전 제작은 최고 계층의 후원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였다. 대장경은 거란, 몽고와의 전쟁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몰렸던 고려 왕실이 국력을 결집시켜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간절한 바람의
산물이었다. 국토 수호라는 국왕의 발원에 따라 국가적 사업으로 대장경 조성을 추진하였다.
무신정권 시절 팔만대장경은 최고 권력자들의 아낌없는 후원과 백성의 참여로 완성될 수 있었다.
푸른색이나 붉은색으로 물들인 종이에 금이나 은으로 경전의 내용을 옮겨 쓰는 사경 또한 주로 신분이 높은 왕과 귀족,
고위 관료가 후원하였다. 소수의 후원자가 참여하였기 때문에 개인적 신상이나 소원이 발원문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간경도감과 같은 국가기관이나 왕실에서 경전을 간행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사찰에서 민간의 후원으로 경전을 간행하는 일이 늘어났다.
거란을 물리치고자 새긴 대장경
초조본 대보적경 권59 - 고려 11세기 목판본 - 국보246호
1010년 거란이 침공하자 고려 현종은 불법을 유포하여, 공덕을 쌓고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대장경 조성을 발원하였다.
최충헌 삼부자를 위한 경전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 (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 보물 691호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1149~1219)과 그 두 아들인 최우와 최향을 위해 발원한 "불정심다라니경"과
경전을 넣었던 경갑이다.
고려 국왕이 발원한 사경
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 고려 1275년 - 국보 210호
1275년 고려 충렬왕의 발원으로 은자대장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봉상대부 허사청 부부가 발원한 묘법연화경 - 고려1373년 - 국보 185호
봉상대부 지옥주사 허사청과 그의 부인 안동군부인 권씨가 발원 및 사주하여 조성한 "묘법연화경"이다.
봉상대부는 정4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며 옥주는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군이다.
원나라 황제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발원한 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 고려 1334년 - 보물 752호
고려 충숙왕 때 인물인 안세한이 발원한 사경으로 그는 원나라와 가깝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 사상기에는 부모의 은혜와
원나라 황재와 황태후, 태자 등의 덕으로 위계 2품을 받은 것에 감사하며 좋은 금으로 화엄경을 옮겨 썼다고 기록하였다.
세조가 죽은 아들을 위해 간행한 월인석보 - 조선 1459년 - 보물 935호
세조가 간행한 "월인석보"는 세종이 간행한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간행한 "석보상절"을
합쳐서 만든 것으로 부처의 생애를 기록한 책이다.
1455년 조카인 단종을 멀리 유배 보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아버지와 죽은 아들 도원군의 명복을 빌고자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수정 보완하여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뜻과 널리 불법을 알리고자 했던 세조의 바람이 모두 담겨 있다.
세조는 이를 통해 왕위 계승의 전통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왕권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정조가 용주사에 하사한 부모은중경 목판 - 조선 1796년 목조 - 보물 1754호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새긴 목판으로 정조의 어명으로 제작되었다.
전시 작품은 모두 126건 431점에 이른다.
그 중 34건 134점이 국보와 보물이고, 시도유형문화재가 3건 3점이다. 또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성보가 7건 77점에 달한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불교미술의 걸작들이 총망라됐다고 할 수 있다.
전시 작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불상과 함께 전시된 복장(腹藏) 유물이다.
복장이란 불상을 조성하면서 배 안에 봉안(奉安)하는 사리(舍利)와 여러 가지 유물을 일컫는 말로
발원문, 사리, 경전, 직물, 곡물, 복식 등 다양한 물품이 불상 속에서 발견됐다.
△
복장물을 넣은 관음보살상
관음보살좌상과 복장물 - 고려 13세기, 목조
관음보살은 세상의 소리를 살펴 고난에 처한 사람의 외침을 듣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고려시대 관음보살상은 갸름한 얼굴에 입체적인 이목구비가 특징으로 자비로운 보살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높은 보관과 화려한 장신구는 섬세하고 귀족적인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른쪽 다리는 올리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늘어뜨린 유회좌 자세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보타락가신의 바위 위에 앉은
관음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눈에는 수정을 감입하고 총 15개의 부재를 못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자세를 표현하였다.
▽
△
1333년 조성된 금동아미타삼존불상(사진)은 몸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발원문을 품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길덕’, ‘만덕’, ‘금이’ 등 성씨가 없는 평민들의 이름이다.
복장물(불상을 조성하면서 배 안에 넣는 여러 가지 유물) 중 다라니 판본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김진의 이름도 등장한다.
고위 관료부터 평민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한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
특히 ‘금동아미타삼존불’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불상 속에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고려·조선시대 불상의 복장(腹藏)유물을
일반에 처음 공개하며,
파계사 원통전의 관음보살상 복장물인 ‘영조대왕 도포와 발원문’(중요민속문화재 220호)은 임금이 입던 도포가
간절한 염원을 간직한 채 복장물로 납입된 신심어린 이야기를 전해준다.
영조대왕이 하사한 도포
영조대왕 도포와 발원문 - 조선 1740년 - 중요민속문화재 220호
1740년 영조대왕이 하사한 도포로파계사 원통전의 관음보살상을 개금 중수할 때 낭ㅂ입한 복장물이다.
이곳은 숙종 계비 인원왕후, 영조와 영조비 정성왕후의 탄일 불공을 드리는 왕실의 원당으로 1740년 12월 영조대왕이 왕의 도포를
하사하면서 만세유전을 기원하였다.
호장 이신기가 발원한 묘법연화경
감지은니묘법연화경 (紺紙銀泥妙法蓮華經) 권7 - 고려 1330년 - 국보 234호
옛 충청남도 부여 지역인 홍산군 호장 이신기가 발원한 사경으로 아버지의 장수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시주하였다.
△
불상 조성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글
아미타삼존불조성보권문 - 조선 1457년 - 국보 282호
아미타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기 위해 단월, 즉 시주자로 참여할 것을 권하는 글이다.
태종의 후궁인 의빈 권씨, 명빈 김씨, 효령대군 등 왕실 여성과 종친이 후원하였다.
복장 조성의 기록과 참여한 사람들 명단
아미타삼존불복장기 - 조선 1458년 - 국보 282호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시주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글이다. 의빈 권씨, 명빈 김씨, 효령대군과
세종의 부마 안맹담, 왕실 종친 등 불상 제작과 복장물 납임에 참여한 275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여성은 불교미술의 중요한 후원자로 고려시대부터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발원의 주체로 부상하였다.
왕실은 조선 초기에도 여전히 불교의 중요한 후원 계층이었다. 특히 종친과 왕실 여인들은 사찰의 건립과 중창, 불상과 불화의 봉안,
범종 제작 등 모든 영역의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는 여성의 권한과 역할이 상당히 컸던 고려시대의 전통이 남아 있고,
권력을 지닌 왕실 여인들이 불교미술을 크게 후원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이 후원한 불교 미술품에는
종종 궁중 화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최고의 화가와 장인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원 내용을 살펴보면 보통 여인들의 바람처럼 딸, 아내, 어머니로서 부모와 남편, 자식의 안위 또는 명복을 기원하였다는
점에서 여성 특유의 정서가 드러난다. 예학이 발전하면서 유교적 규범이 확립된 조선 후기에는 황실의 후원이
줄어들었지만 조선 말기에는 상궁들이 주요 후원자로 나서게 되었다.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발원한 부모은중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 - 조선 1432년 - 보물 1125호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의 후원으로 간행된 "부모은중경"이다.
인수대비가 발원한 불정심다라니경
불정심다라니경 -조선 1485년 - 보물 1108호
인수대비로 잘 알려진 소혜왕후가 아들 성종을 위해 간행한 경전이다.
명빈 김씨와 인목대비가 발원한 수종사 불감과 불상
수종사 불감과 불상 - 조선 1493년. 1628년 금동 - 보물 1788호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에 봉안했던 불상으로 1층 탑신석에서 금동불감과 함께 석가불좌상에는 시주자인 명빈 김씨의
명문이 남아 잇고 기단 중대석에서 발견된 비로자나불좌상 대좌바닥에는 인목대비의 1628년 조성기가 남아 있다.
함께 발견된 불상 23구는 이 당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빈 김씨가 발원한 불상과 불감 - 보물 1788호
명빈 김씨는 태종의 후궁으로 성종 때까지 오랫동안 내명부를 지키면서 승려들과 교유하고 왕실과 불교계를 중재했던
인물이다.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 - 보물 1788호
수종사 불상 중 23구의 불상은 1628년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였으며 조각승 성인이 제작하였다.
인목대비는 선조의 계비였으나 169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이들 영창대군을 잃고 폐서인되어 서궁에 유폐된 인물이다.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된 인목대비는 죽은 사람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자주 불사를 행했다.
이성계와 부인강씨가 발원한 사리구
이성계 발원 사리구 - 고려 1390~1391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직전 금강산 월출봉에서 발원하여 봉안한 사리구이다.
문정왕후가 발원한 약사삼존도
약사삼존도 -조선 1565년
화기에 의하면문정왕후는 1565년 회암사의 중창에 맞춰 국왕의 장수와 왕자 탄생을 기원하며,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미륵불의 네 부처를 금화와 채색화로 각각 50점씩, 모두 400점의 불화를 발원하였다.
비단 바탕에 금선으로 약사불과 일광.월광보살을 그린 약사삼존도는 현존하는 6점의 불화 가운데 한 점이다.
문정왕후는 1545년에 아들 명종이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8년 동안 수렴청정하면서 국정을 장악하였고, 승려 보우와 함께
불교 중흥을 위해 노력하였던 인물이다.
작은 불화이지만 무려 400점이 동시에 조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왕실 여성의 불사를 대표한다.
사불회도(四佛會圖) - 조선 1562년 - 보물 1326호
1562년 풍산정 이종린李宗麟(1538-1611)이 돌아가신 외조부 권찬(?-1560) 등의 영가천도영靈駕遷度와 아버지인 덕양군 등의
보체保體를 기원하며 경상도 함창 상원사에 봉안한 사불회도이다.
사불회도는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미륵불의 네 부처의 설법모임을 한 화면에 그린 독특한 도상이다.
네 부처를 표현한 사불 도상은 삼국시대 이래 사방불 신앙에 근거하여 조성된 예가 있지만,
조선 전기의 사불회도는 그보다 당시 불교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277인이 발원한 불감과 아미타삼존불
불감과 아미타삼존불상 - 조선 1468년 금동 - 보물 1874호
순천 매곡동 석탑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동불감과 금동아미타삼존불이다. 벌원문에 따르면 1468년 4월
순천부 남촌 별량리 죽사(竹寺)의 승려 일선과 시주사 277명이 참여하여 같은 달 15일에 아미타삼존불을 완성하였다.
이처럼 승려가 주관하고 일반 백성들이 참여하는 불사방식이다.
대곡사 등촉계에서 발원한 감로도
감로도 - 조선 1764년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86호
아기 부처를 모시는 가마 - 조선 1670년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97호
불연이란 법회를 열 때 사용되며 나라의 임금을 태우는 연(輦)처럼 존귀한 부처와 보살을 모시는 가마이다.
가마 바닥면의 명문에 따르면 승려 학종이 울산 지역에 이르러 시주를 받고 양산 지역인 원적산 대승암에 머물며
1669년부터 1670년에 걸쳐 불연 제작을 주관하였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
그 간절한 바람을 어떤 사람은 교회로 가고, 어떤 사람은 절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갈 곳 없어 갈팡질팡한다.
아직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던 불교미술을 후원한 옛사람들의 삶과 염원을 살펴보는
귀한 성보들을 볼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
조선 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았음에도, 권력다툼에 힘들었던 왕실 여인들이 불심에 의지하는 마음을
볼 수 있었고, 특히 영조대왕의 도포와 발원문 그리고 파란만장한 인목대비의 삶을 볼 수 있었고,
아기 부처를 모시는 가마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더 많은 것을 올리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사적 제123호 창경궁 (0) | 2015.07.13 |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조각 전시장 (0) | 2015.07.01 |
(서울) 서울 대공원 장미원 장미축제 (0) | 2015.06.25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폴란드 천년의 예술 특별전 (0) | 2015.06.22 |
(서울) 서울 대공원 장미축제 (0) | 2015.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