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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일본 오사카) 풍신수길을 모신 호코쿠신사(豊國神社)

호코쿠신사(豊國神社)

 

 

 

오사카 외성을 돌아보고 내성으로 가는 도중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그의 아들 히데요리와 동생 히데나기를 신으로 모시는

호코쿠신사(豊國神社)가 앞길을 막는다.

 

도요쿠니 신사, 호코쿠 신사(豊国神社, とよくにじんじゃ、ほうこくじんじゃ)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신으로 모신 신사인데,

도요쿠니 신사로 불리는 곳과 호코쿠 신사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호코쿠 신사로 불린단다.

 

 

 

호코쿠신사(豊國神社)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와라국(尾張国) 나카무라(中村)에서 1537년 3월 17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체격이 왜소하며 추남인 데다가 손가락이 6개였고,

아명은 코자루(小猿, 원숭이 새끼) 또는 히요시(日吉).

 

 

 

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섬겼으며

오다 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죽자,

주고쿠에서 대군을 이끌고 교토로 돌아와 야마자키 전투(山崎の戦い)에서 역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를 격파하고,

오다 노부나가를 대신해 그의 사업을 계승하였다.

 

 

 

그 후, 오사카 성(大坂城)을 쌓았으며 관백(関白), 태정대신(太政大臣)에 임명되었으며,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라는 성을 하사받고 고호조 가문을 굴복시켜 일본을 통일,

오랫동안 계속된 전국시대를 마감시겼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최고의 세력을 장악한다 할지라도 세력가는 결국 천황의 신하에 불과하다.

다만 그 세력가가 막부를 세운다면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기 보다는 천황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출(무사 집안 출신이 아님)인 까닭에 상례적으로 쇼군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쇼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자신들의 영토를 회복하고

그를 방해하는 오랑캐를 물리쳐 승전군이 되어

천황에게 다시 대장군의 칭호를 받아 막부를 구성하는 것 뿐이었다.

 

쇼군이 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왜란(7년 전쟁)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후계자를 아들 히데요리에게 넘기고자 조카인 히데쓰구를 추방시켜 할복하게 한다.

 

 

임진왜란이 지지부진하자 홧병으로 자리에 누워

게이초 3년(1598년) 음력 8월 18일

고다이로(五大臣)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보호역을 맡은

마에다 도시이에에게 히데요리를 부탁하고 후시미 성(伏見城)에서 향년 62세로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출세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곳 풍국신사에 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농민에서 쇼군이 된 듯

출세를 기원하는 모양이다.

 

 

 

비 내리는 풍국신사의 풍경

 

 

비에 젖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김새가 여간 일본스럽게 생기지 않았다.

국민학생 때 임진왜란 영화에서 본, 아주 사악하고 음흉한 눈빛과 원숭이처럼 생긴 얼굴로 일본을 호령하던

위엄과 풍채는 내 눈에 전혀 보이지 않다.

 

지나간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만

솔직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를 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보이니까 일본의 역사도 세계사라

씁쓸한 마음으로 담아본다.

 

 

사실

풍국신사는 오사카 성에 가려 단체 관광객의 여행 코스에서는 걸음이 거의 미치지 못하나

나처럼

  개인여행을 하는 사람은 들러볼 만한 가치도 있을 것이다.

 

풍국신사를 벗어나니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오사카 성으로 몰려 가고 있다.

 

참고로

내 블로그에 호코쿠 신사를 잘못 알고 도요쿠니 신사로 적었는데, 내 블로그를 오신 어떤 분의 지적에 의해

2018년 1월 30일 다시 적는다.

 

도요쿠니 신사를 호코쿠 신사로 알려주신 분에게 다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