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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경북) 영주 선비촌과 금성대군 신단

영주 선비촌과 금성대군 신단

 

 

영주 선비촌

소수서원 옆에 위치한 선비촌은 전통 가옥에서 숙박과 전통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마을.

1만8,000평 부지에 기와집인 만죽재 고택, 해우당 고택, 김문기 가옥, 인동 장씨 종택, 김세기 가옥, 두암 고택 등 7동과

아담한 초가인 장휘덕 가옥,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 두암 고택 가람집, 이후남 가옥, 김상진 가옥 등 5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산신각 등 모두 40여 채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는데,

 전통 가옥 사이의 고샅길을 거닐다 보면 마치 조선 시대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금성대군 신단

 

 

1457년 정축년.

삼촌인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던 그해.

단종의 또 다른 삼촌인 금성대군이 영주의 순흥 땅으로 유배된다.

거기서 금성대군은 비밀리에 단종을 왕위로 복귀시키려는 거사를 계획한다.

어린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의 자리에 오른 세조는 더 이상 형이 아니었다.

순흥 땅을 다스리던 부사 이보흠을 비롯해 수많은 영남의 선비들이 가세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굴러가고 있었지만, 온몸으로 그 바퀴를 세우려 했다. 사욕은 없었다.

오로지 선비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서슬 퍼런 결기, 그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참혹한 비극이었다.

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노비의 밀고로 발각이 됐고 그 뒤는 짐작하다시피 피바다였다.

금성대군은 죽고 그를 따랐던 수많은 선비들도 참수를 면치 못했다.

 

 

 

 

 

부석사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약 15분 풍기 방향에 빨갛게 빛나는 사과밭과 함께 소수서원과 선비촌이 보인다.

소수서원의 입장료는 3,000원

물론

박물관과 선비촌을 함께 둘러볼 수 있기는 하지만 입장료가 턱없이 비싸다.

소수서원은 도산서원에 비해 정리되지 않았고 보수중이라 몇 채 되지 않는 서원의 건물도 모두 볼 수 없었다.

서원과 박물관 그리고 선비촌까지 두루 살펴보고, 풍기로 나오니 풍기는 지금 인삼축제가 한창이다.

풍기역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축제에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나 축제를 한다.

진정한 그 지역에 어울리는 축제가 아니라 서양이나 혹은 어느 지역에서 했던 축제를 비슷하게 연출하고,

국적불명의 상품들로 넘치는것이 작금의 우리의 축제 문화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그 지역에 어울리는 특수한 축제 문화를 이뤄야 한다.

그리하여

타 지역에서 일부러 구경하러 와 그곳의 특산품을 사 가는 그런 축제가 되어야 한다.

늦은 밤 영주시내로 나와 숙소를 정하고 내일 청량산 산행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