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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인천 여행

(강화)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傳燈寺)

우리나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傳燈寺)

 

 

언제 : 2014년 8월 5일 화요일

어디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삼복더위와

온갖 매스컴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위정자와 그 똘마니들의 하는 짓거리를 보며 집에 있기에는 속이 터져

부처님 전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내 안의 평화와 힘없고 돈 없는 자에게 투철한 용기와 굳건한 힘 그리고 그들의 바램을 이루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기 위해 전등사를 찾았다.

 

전등사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자리한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最古) 사찰이며, 조선말 외국군과 싸우다 죽은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의 아련한 소망이 깃들어 있는

향기 넘치는 절이다.

 

 

전등사 입구

 삼랑성 남문 종회루(宗海樓)

 

 

 

종해루 들어서면 좌측 언덕에 서 있는 왕소사나무

보호수

수종 : 왕소사나무 - 수령 : 157년 - 수고 : 10m - 둘레 : 1.8m

 

 

 

 

 

 

 

보호수

1. 수종 : 은행나무 - 수령 : 600년 - 수고 : 25m - 나무둘레 : 5m

2. 수종 : 은행나무 - 수령 507년 - 수고 : 23m - 나무둘레 : 4m

 

 

 

 

 

 

 나무 줄기에 자연스럽게 구멍이 생겨, 전등사를 찾을 때마다 나는 이 나무 구멍으로

부처님 세상을 들여다 보곤 한다.

 

 

전등사 전경

 

전등사는 단군 신화를 연원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온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입니다.

우리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전등사는

민족의 역사가 살아 있는 강화도에서 1600여 년을 이어온 한국의 대표적인고찰입니다.

 

전등사(傳燈寺)라는 이름은 서기 1282년 진종사(眞宗寺)에서 개명되었는데,

고려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인기스님으로 하여금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인간(印刊).봉안(奉安)하도록 한 것과 옥으로 만든 등을 절에 사주한 것이 유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등(傳燈)이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 즉, 전등사는 "불법을 전하는 사찰"이란 뜻입니다.

전등사는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근본도량이었으며 격동하는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운을 지켜낸 사찰이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염원을 품은 채 대웅전과 약사전 내부에 남아 있는무수한 병사들의 이름과

동문 앞에 있는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는

전등사가 민족과 영욕을 함께한 천년고찰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등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전등사 현판이 붙은 건물은 대조루로 대웅전 앞에 선 건물

 

 

보물 제178호 전등사 대웅전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 기둥의 글씨

 병인양요때 참전했던 병사들이 부처님께 안녕을 기원한 글씨라고......

 

 

 

대웅전 처마 밑 나부상(裸婦像)

 

전등사 대웅전이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대웅보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가  불사를 하던 중

마을의주모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불사를 마치면 주모와 혼인할 생각으로 정성껏 모아둔 돈을 모두 맡겼는데,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날,

주막으로 찾아가니 주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사라진 여인 생각에 도편수는 몇 날을 힘겨워 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 처마 네 군데에는 지붕을 떠받치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대웅전을 중건했던 도편수나 스님들은 과연 무슨 뜻으로 나부상을 올려놓았던 것일까요?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을 징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여인이 대웅전에서 들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도편수의 불교적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부상이 아니라 사찰을 수호하는 원숭이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나부상이든, 원숭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전등사 대웅보전의 나부상은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전등사 대조루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운 누각식 건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전등사시」에서 대조루를 읋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는 이미

대조루가 있었다.

1932년 사찰 안의 건물들을 수리하면서 대조루는 다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 뜰 전경으로 대웅전 - 강설당 - 대조루

 

 

하얀 등으로 둘러쌓인 명부전 - 약사전 - 향로전

 

 

 

 

 

 

 

명부전 뒷뜰 굴뚝

 

 

 

 

 

 

 

극락암

 

 

 

전등사 범종은 사용하지 못하고, 아래 화면의 범종각 종을 사용한다.

 

 

 

범종각

 

 

대웅전 뜰 보호수

수종 : 느티나무 - 수령 : 약 210년 - 수고 : 21m - 둘레 : 3.7m

 

종무소와 템플스테이

 

 

월송요/설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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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전 입구

 

 

 

무설전 내부

 

 

 

전등사 식수대에 사람들이 모여 물을 마시고 있다.

 

 

 

 

 

 

 

 

 

 

 

 

 

 

 

전등사 삼성전

 

 

 

 

 

 

 

요사채/선체험관

 

 

 

 

 

 

 

요사채 전경

 

 

 

지난 8월 7일이 말복이며 추분이었다.

아직도 여름은 혈기왕성하여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데,

이제 전등사에는 저만치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고 있다.

 

 

주지스님의 거처

 

 

전등사 전통찻집 - 죽림다원

 

 퇴직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퇴직한 날,

나에게 어여쁜 화분을 선물했던 동료가 아직도 내게 안부 전화를 한다. 마음으로 항상 고마워하던 차, 

지난 말복,

그 동료와 삼계탕으로 식사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정호승 시인의 수필집을 선물했는데, 그 동료는 내게 양말 세트를 선물했다.

만일 내가 책을 준비 못 했다면

그가 선물하는 양말 세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