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三郞城)
언제 : 2014년 8월 5일 화요일
어디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삼랑성
덥다고 집에 있기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
아내가 출근하자마자
토마토, 곳감, 비스켓, 커피와 며칠 전 펫트병에 얼려 둔 얼음물을 챙겨 집을 나선다.
10:30
오늘은 오랜만에 마니산에 올라
소진된 기(氣)를 충전하여 더운 여름을 나려고 강화도로 향했으나, 너무 늦게 집에서 나서다보니 온수리에 도착하니
벌써 12:00
어쩔 수 없이 마니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정족산 전등사로 코스를 바꿨다.
삼랑성 남문 종해루(宗海樓)에 도착하니
습도가 높아 온몸이 땀에 젖는다.
초지대교 지나서 본 삼랑성 풍경/핸드폰 촬영
동문에서 달맞이 고개로 올라가는 성벽과 남문 몰랑에서 남문으로 내려오는 성벽이 조망된다.
삼랑성 남문 종해루로 삼랑성의 정문
삼랑성 남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풍경
칡꽃
삼랑성 남문에서 동문으로 가는 풍경
삼랑성 남문에서 동문으로 가던 중 바라 본 달맞이 고개를 오르는 풍경
삼랑성 동문
동문 근처의 노송들과 고목
동문에 세워진 양헌수 승전비(梁憲洙 勝戰碑)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總梁公憲洙勝戰碑)" 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에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가 181cm, 비신의 높이가 163cm, 너비 60cm, 두께가 27cm이다.
삼랑성 동문에서 달맞이 고개 오르는 풍경
▲
달맞이 고개에서 본 온수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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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가 매우 높아 조망이 좋지 못하다.
달맞이 고개에서 북문으로 가는 삼랑성 풍경
달맞이 고개에서 북문으로 가는 풍경
습도가 매우 높은 날이라 아직 이슬이 맺혀있다.
▲
삼랑성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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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북문 풍경
산딸기
천상에서
무슨 꿈 가지고
강화도 정족산 삼랑성 전등사 뒷산에 내려
비바람
천둥번개 개의치 않고
견디어
눈시리게 붉은 열매 맺었구나
너라도
탈없이
꿈 이뤘으면 좋겠다만,
너와 나
우리
가슴치며 외치고
울며 대들어도
필요하면
찐득찐득한 눈물로
순하디 순한 대한국민을 현혹하고
때론
수 천 년
박히어 꿈적하지 않는 바위처럼
우리의 아우성
우리의 눈물
우리의 꿈을 외면하는 그림자
더럽고
냄새난
한반도 이 시대에
너라도
고왔던
너의 꿈 이루기 바란다.
제발
야수의 입맛 돋우지 말고
차라리
하늘 나는 산새의 먹이 되거라.
나
집에 있으면
복장 터질 것 같아
두 손 모우고
엎디어
부처님전 울고 싶어 이곳 왔다가
보석보다 더 어여쁘고 고운
두 알 남은
너를 만나
속마음 털어놓는다.
이 개같은 한반도
2014년
4월.
더러운 눈물로 세월호 참사를 덮어 지자체 선거에서 선승하고
은폐하여 국민을 속여 7.30 보궐선거에서 대승한
28사단 윤일병 사망을 보면서.
삼랑성 북문에서 정상으로 가는 풍경
▲
아무도 없는 삼랑성 정상에 호랑나비 날아와 나와 동무하자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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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정상에서 마니산 방향의 들을 내려다보니 연무에 의해 잘 보이지 않지만 평화롭기 그지 없다.
아마
그 세상은
편갈라
미워하고 시기하며 배신하고 속이며,
악마의 탈을 쓰고
싸우고
죽이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삼랑성 정상에서 서문과 남문 사이의 몰랑으로 올라가는 풍경
삼랑성 정상에서 서문 사이의 풍경
▲
삼랑성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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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서문에서 남문으로 가는 풍경
삼랑성 서문과 남문 사이 몰랑에서 마니산 방향을 본 풍경
삼랑성 일주를 하는데
여태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스님 한 분이 나처럼 땀에 젖어 삼랑성을 걷고 있다.
▲
삼랑성 남쪽 몰랑에서 본 전등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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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여러번 왔는데
정작
산몰랑에서 전등사를 내려다보는 일은 오늘이 처음이다.
삼랑성 남쪽 몰랑의 풍경
저 아래 삼랑성 남쪽 몰랑에서 남문사이 성벽을 보수하는 인부들이 보인다.
독버섯도 생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 빛을 보는데
하물며
인간의 탈을 쓰고 주먹과 발 그리고 더러운 혀로 전우를 죽이는 2014년 4월의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
그리고
그런 일을 은폐하고 자기의 진급과 안위만을 바라는 부대장과 장관
부하의 목숨을 자기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참 더러운 세상이다.
제주도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승객
모두 304명을 바닷속에 수장시켜버린 악마와 다름없는 종교 지도자인 기업인과 그런 기업인의 못된 짓거리를
돈 몇 푼 받아먹고 눈감아 준 더러운 공무원들
사고가 발생하니 우왕좌왕 사고 수습도 하지 못하고, 국민의 눈을 속이기에 급급한 위정자들
달콤한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며 나 몰라라 하는 지도자가 있는 대한민국은 정녕 이대로 침몰하고 말 것인가?
남문으로 가는 풍경
남쪽 몰랑에서 남문으로 내려가던 중에, 가까이 남문에서 동문사이의 성벽이 조망되고,
멀리 뒤로는 동문에서 달맞이 고개로 올라가는 성벽이 조망된다.
굳세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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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으로 가는 풍경
이렇게 날은 덥고 습도 높아 끈적끈적한 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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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소개
고려사(高麗史)의 지리지에 의하면 전등산(傳燈山)을 삼랑성(三郞城)이라고 부르며,
단군(檀君)이 세 아들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을 시켜서 쌓았다고 전해 온다.
산의 이름은 길상산(吉祥山)이라고 하며 성의 이름은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기록되기도 하였으나,
항상 이 지역에서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구전(口傳)이 이어져 왔다.
성곽의 축조는 거친 할석(割石)으로 되어 있으며,
성의 안쪽 벽면도 할석으로 채워 안팎을 겹축(夾築)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할석 사이마다 할석 부스러기로 쐐기 돌을 많이
사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석축 이전에는 토축된 것이었다고 여겨지며,
해발 222.3m인 산의 정상에서 동향한 계곡을 포용하고, 동남향한 계곡에 수구과 남문이 있다.
북문은 북벽의 서쪽에 치우쳐 산봉우리 사이의 안부(鞍部)에 있고,
서문도 서남쪽 안부에 있으며, 동문은 남문의 북쪽으로 해발 107.2m의 봉우리 북쪽 안부에 있다.
성벽이 회절(回折)하는 곳마다 10여개의 곡성을 이루며, 치성(雉城)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성벽은 서측의 산정에서 북벽을 이루는 두 개의 봉우리와 동쪽 봉우리 및 서문 남동쪽의 봉우리 등이 있어서 마치 솥과 같은
고로봉형(고로峰形)을 이루었다.
조선왕조의 말기까지 존속하여 여장(女墻)과 총안(銃眼 )·사혈(射穴)이 남은 곳도 있다.
1259년(고려(高麗)고종(高宗)46)5월에 중랑장(中郞將)백승현(白勝賢)의 풍수설에 따라 이 성내에다 가궐(假闕)을 지었다.
1606년(선조(宣祖)39) 마니산(摩尼山)에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실록(實錄)을 보존해 오다가
1660년(현종(顯宗)1)삼랑성내의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로 옮겼다.
이때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璿源譜閣)이 같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모두 없어지고 전등사(傳燈寺)만 남아 있다.
이 산성은 고려(高麗)때에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739년(영조(英祖)15)중수를 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하였고, 1764년 다시 성을 중수하였다.
성안에는 훈련도감과 금위영·어영청 소속의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산성은 1866(고종(高宗)3)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하려던 160명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첩지로 유명하다.
현재 성내에는 당시 프랑스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순무천총(巡撫千摠)양헌수(梁憲洙)의 승전비가 있고,
1976년 남문을 다시 복원하고 문루를 세워서 예전대로 종해루라는 현판을 달았다.
마니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족산 삼랑성과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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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정상에서 카메라를 당겨 바라 본
정족산 능선을 따라 삼랑성이 보이며 삼랑성안에는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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