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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파주) 두 개의 선(Two Lines)

 두 개의 선(Two Lines)

DMZ & 독일 Grunes Band 사진전

 

 

어디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77

 

임진각 평화누리의 경기 평화센터에서 2013. 7.23~2014.3.23

두 개의 선이라는 제목으로

 1장 독립과 분단, 2장 한국전쟁과 DMZ, 3장 대립과 평행선, 4장 이데올로기와 휴머니즘, 5장 화해와 생명의 땅, DMZ

DMZ & Grunes Band 분단에서 평화통일까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6.25로 인한 민족의 분단과 아픔 그리고 이산가족의 설움을 담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러시아어로 쓰인 휴전선 팻말 앞에 나란히 선 아이들(1947.5.1)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보고 자란 이 세대만이 분단 이전 DMZ의 평화를 기억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마을과 마을을 가르고 대대로 일구어온 논 밭을 두 동강 낸

38선(1948)

잠시 일을 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발길을 묶인 이산 가족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폭파된 한강 철교(1950.6.28)

북한군이 서울에 진입한 6월28일 새벽, 국군은 한강의 교량들을 폭파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개시한 미군 병사들(1950.9)

인천 상륙 작전과 함께 낙동강변에서도 아군의 대대적인 북진이 시작됐다. 

 

 

미 해병대를 따라 이동하는 포로들(1950.9.1)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이들은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하는데 무려 3,000여 명이나 되는 포로가 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쪽에 남기를 원했다. 

 

 

장진호에서 흥남 항구로 후퇴하는 미 해병대

중공군은 계곡을 따라 이들을 추격해 끈질기게 괴롭혔다.(1950.12.24)

 

 

국군 제6단 제19연대

피와 땀과 눈물로 탈환한 514고지(1952.10.18)

 

 

 개성, 정전 회담 장소에서의 공산군 측 안내 장교(1951.7.10)

 

 

 돌아오지 않는 다리(Bridge no return) 주변 풍경

포로 송환이 이루어진 이 작은 다리는 '한번 가면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는' 다리라 하여 부르게 되었답니다.

 

 

정전 회담 장소로 들어가는 교량(1951.7.10)

 

 

개성에서 변경된 정전 회담 장소인 판문점(1952~1953)

 

 

판문점 - 그 당시 보기 드문 컬러 사진(1952~1953)

 

 

거제도 포로수용소(1952)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중동부 전선(1953)

단 한 평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장병이 꽃 같은 목숨을 바쳤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185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수송기에서 병력과 군수 물자를 투하하는 장면(1953)

 

 

1. 1954년 당시의 공동 경비 구역(JSA)  

2. 북한군과 중공 인민 의용군들이 본국으로 송환되면서 포로수용서에 있는 포로들에게 인사하고 있다(1953)  

3. DMZ 검문소 북한군이 걸어가고 있다(1953) 

4. 아군의 대대적인 북진이 시작되었다.

 

 

전선의 미군을 위로하기 위해 메릴린 먼로가 한국을 방문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세기의 뮤즈를 만난 병사들이 열광하고 있다.(1954) 

  

 

1.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서로 위안이 되던 시절(1956)

어린 동생을 업은 누이와 그 뒤에 꼭 붙어선 코흘리개 사내아이가 더없이 정겨워 보인다. 

 

2. 종전 후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는 청진의 한 시장(1954)

뭔가를 사고팔기 위해 시장에 나오는 게 아니다. 서로 살아있음을 ,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3. 가슴을 가릴 만한 여유도 없던 시절, 청진의 어느 시장에서(1954) 

 

 

1. 서울 청계천변의 판자촌(1955)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난민은 서울의 몇몇 곳에 집단적으로 거주지를 형성했다.

 

2. 산비탈을 따라 촘촘히 들어앉은 피난민촌(1952.9.26)

1.4 후퇴 후 남한 지역은 어디를 가나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으로 북새통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부는 국방부, 내무부 등과

협의하여 각 도별로 피난민촌을 만들어 정착하게 했다.

 

3. 1950년대 초 부산에 설치된 피난민촌.

각지에서 유입된 피난민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거리에 나서면 사람이 너무 많아 어깨를 부딪힐 정도였지만,

새 삶은 시작되고 있었다.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들녘(1954)

 

 

 1. 남으로 피난하기 위해 흥남항으로 몰려든 북한 지역의 주민들(1950.12.9)

이미 모든 민간인 배들이 남으로 떠난 부두에는 군 수송 함선뿐이었다. 미 10군단장 앨먼드 장군은 막대한 양의 장비를

포기하고군 수송용 배인 LST를 비롯해 인근 지역의 대형 상선까지 불러 약 10만 명의 주민을 태워

피난시키는 감동의 철수 작전을 펼쳤다.

 

2. 혼혈인 김종철(33세)과 어머니(경기도 파주. 1993.2)

 

3. 1950년대 초 부산에 설치된 피난민촌.

 

4. 비록 발은 묶였지만 지극한 효심만은 철책 넘어 북녘의 조상 묘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다(1992.9.11)

  

 

 

 

 

남한 자유의 집에서 바라본 판문점(1992.7.18)

앞쪽에 있는 건물들은 군사 정전 위원히 본회의장과 중립국 감독 위원회 회의장이고,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북한 판문각이다.

 

 

삼엄한 판문점 모습(2010.9.28)

1953년 처음 판문점이 생겼을 때는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나 1976년 도끼 만행사건 이후

상대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DMZ 어느 봄날

 

 

남한 측에서 북한 측을 경계하고 있다(1992.9.30)

 

 

 

 

 

1. 열차 편으로 입대하는 학도 의용군(1950. 7)

 

2.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군이 철로를 폭파하기 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서울발 남행 열차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피난민들의 모습이 애처롭다(1951)

 

3. 남으로 피난하기 위해 흥남항으로 몰려든 북한 지역의 주민들(1950.12.9)

 

4. 전쟁의 포화 속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의 묘를 찾아 온 사람들(1953~1954)

그 앞에서 한 사나이가 좌판을 벌이고 있다.

 

 

1. DMZ 철책선을 붙들고 오열하고 있는 듯한 노인(1993.1.23)

이 철책선이 들어섰을 당시 그는 앳된 소년이었을 것이다. 두고 온 고향을 잊지 못하는 실향민의 아픔

 

2. 전쟁은 높은 실업률을 가져와, 많은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왔다. 사람 탓이 아니라 어지러운 시대 탓인데,

명필 구직 간판을 목에 걸고 반듯한 얼굴을 모자 밑에 애써 감춘 마음은 얼마나 서글플까(1953)

 

 

 DMZ 주변에서 훈련 중인 병사들(2992.11)

 

 

한겨울의 DMZ - 강원도 고성으로 뒤쪽에 보이는 산은 금강산이다.(2010.2)

 

 

하늘마저 남북으로 갈라놓으려는 듯, 끝없이 위로 향해 달리는 남방 한계선 철책(1998)

 

 

 

 

 

남북 고위급 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가는 남측 장교와 북측 안내 장교가 빙판길에서 순간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다(1992.2.18)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 토론회에 참석차 판문점을 통해 서울에 온 북한의 여연구 북한 최고 인민회의 부의장

(건국 준비위원회 위원장 여운형의 딸 - 왼쪽)이 남측 대표인 이태영 씨와 포옹하고 있다(1991.11.25)

두 사람은 이화여대 동기동창이다.

 

 

2006년 3월 제13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현장

남한의 동생이 북한의 누나를 만나 50년 넘게 가슴에 품어둔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 연천. 임진강이 남쪽으로 흘러드는 태풍 전망대 앞 높은 하늘을 비상하는 독수리의 날갯짓이 한없이 자유롭다.

 

 

북방 한계선에 인접한 옹진군 연평도 구지섬에서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가 갈매가와 입씨름 중이다.(2010.5.30)

 

 

최동북단을 지키는 우리 21사단의 한 GP(2010.1.1)

그림 같은 금강산의 자태와 동해 일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해야 하는 위험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