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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파주) 청백리 황희(黃喜)정승의 얼이 깃든 반구정(伴鷗亭)

 

청백리 황희(黃喜)정승의 얼이 깃든 반구정(伴鷗亭)

 

 

언제 : 2013년 9월 3일 화요일

어디 :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산127

 

엊그제까지 무더위로 힘들었는데,

9월에 들자마자

조석 간의 선선한 기운과 한낮의 뜨거운 햇볕으로 날씨는 완연한 가을로 급변하여

곡식과 과일이 영글어 가기에 참 좋은 날,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며

 고향 개성 송악산과 임금이 계시는 서울 삼각산이 조망되는 곳에 자리한

조선 초기의 명재상 청백리 방촌 황희 정승의 얼이 깃든 영당과 반구정을 여행하였습니다.

 

 

방촌 황 희(尨村 黃 喜)

  

    1363년(공민왕 12년)~1452년(문종 2년),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석부(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균비(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현대부판강릉대  도호부사(資憲大夫判江陵大都護府使)

   군서(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고, 개성 가조리(可助里)서 출생하였다.

 

    1376(우왕 2년) 음직으로 복안궁녹사(福安宮錄事)가 되었다.

1383년에는 사마시, 1385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1389년에는 문과에 급제한 뒤 1390년(공양왕 2년) 성균관 학록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서 은거하다가

   1394년(태조 3년) 조정의 요청과 두문동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 학관이 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인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임하였다. 이후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6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태종의 신뢰를 받았으나,

1418년 세자(양녕대군) 폐출의 불가함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폐서인이 되어 경기도 교하(交河)와 전라도 남원(南原)에 5년간 유배되었다가 태종의 건의로 세종에 의해 다시복직되었다.

     이후 굶주림이 장기화 된 강원도에 관찰사로 나가

백성의 어려움을 잘 살피고 민심을 얻었으며 동시에 세종의 신뢰 또한 얻게 된다.

     이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겸 세자사(世子師:세자의 스승) 등을 지냈으며, 1431년(세종 13년) 69세의 나이로 영의정이 되었다.

    18년동안 세종을 잘 보필하며 태평성대를 이끌다가 87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은퇴한 뒤에도 국가 중대사의 경우 세종의 자문에 응하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파주 문산 반구정에서 갈매기와 같이 여생을 보내다가 향년 90세에 서거하여 파주 탄현 금승리에 안장되었다. 

 

 

 

 

 

방촌 황희 기념관

 

 

 

 

 

 

 

 

옥연(玉硯)

황희정승이 생전 사용하던 유물로 옥으로 만든 벼루

 

 

서진(書鎭) 

황희정승의 유물로 책장이나 종이 따위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누르는 물건

 

 

 서호영(瑞瑚纓)

 황희정승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물로, 29개의 산호를 꿰어 만든 갓에 다는 끈

 

 

서각대(犀角帶)

황희정승이 생전에 사용하던 유물로, 조선시대 관리가 허리에 두르던 무소의 뿔로 만든 띠.

 

 

 

 

 

 

 

 

 

 

 

 

 

 

 

 

 

 

 

두문불출의 유래

 

 

 

 

 

 

 

 

 

 

영당 입구 청정문(淸政門)

 

 

제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관리인의 거처

 

 

황희 선생 영당지(黃喜先生影堂址) - 경기도 기념물 제29호

 

 

 

 

 

 경모재(景募齊)

 

 

황희정승의 동상

 

 

앙지대(仰止臺)

황희선생을 존경하는 의미로 후손들이 세운 정자

 

 

 

 

 

앙지대에서 개성방향을 바라 본 풍경으로 멀리 임진각 철교와 뒤로 개성 송악산이 보인다.

아래 정자는 반구정

 

 

반구정에서 바라 본 임진각 철로와 뒤로 개성 송악산

 

 

반구정에서 임진강 건너편 풍경

 

 

반구정 아래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군인들이 지키는 초소와 철조망이 보임으로 최전방임을 알 수 있다.

 

 

반구정에서 바라 본 서울 방향 풍경

 

 

반구정에서 바라 본 삼각산(백운대와 인수봉이 조망됨)

 

 

반구정에서 본 앙지대

 

 

반구정(伴鷗亭)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

 

황희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던 곳으로,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 라고 이름지었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암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푸른 물이 아래로 굽이쳐 흐르고

송림이 울창하여 좋은 풍경을 이루고 있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선생이 지은 반구정기를 보면 "정자는 파주 서쪽 15리 임진강 아래에 있고 조수때마다

백구가 강 위로 모여들어 들판 모래사징에 가득하다. 9월이면 갈매기가 손으로 온다 서쪽으로 바다는 30리이다" 라고 묘사했다.

 

 

 허목의 반구정기

 

 

반구정이 있는 언덕

 

 

코스모스 피어

가을임을 알리는데 뒤로 보이는 철조망 너머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녹 쓴 철조망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말하고 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께 잘 계시라며 인사드리고 나오니, 겨울에 놀러 오라고 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겨울 임진강 얼음이 얼면 밀물과 썰물에 의해 얼음 깨어지는 소리가 아주 좋고, 독수리 떼가 볼 만하다며

제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다음은 반구정에서 임진각까지 걸어 가며 풍경을 담아 올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