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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 반짝이는 천 년 고찰 만덕산 백련사(白蓮社)

 

동백숲 반짝이는 천 년 고찰 만덕산 백련사(白蓮社)

 

  

 

언제 : 2013년 7월 2일 화요일

어디 :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만덕산 백련사는

절에서는 한문으로 寺(절사)를 쓰는데 백련사는 社(모일사)를 쓴 이유는

고려 시대 백련결사(白蓮結社)로 인해 절寺 대신 모일 社를 쓴다.

 

백련사는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과 보물 제1396호 백련사 사적비 그리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대웅보전

또한

신라 시대 김생의 글씨와 원교 이광사의 글씨들을 볼 수 있으며,

다산(만덕산 옛명) 아래 향 좋은 차와 천 년 동백숲, 은빛 찬란한 구강포 앞바다가 조망되며,

고려8국사와 조선8종사의 숨결이 어우러진 천 년 고찰이다.

 

그러나

오늘 백련사를 찾아온 목적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흔적과 숨결을

흡입하러 온 것이다.

 

 

백련사 오르는 동백길

 

 

백련사는 이제 사천왕문을 중수하고 있는 것 같고,

 주변에는 백련사와 함께 수백 년 살아온 동백나무 숲이 있는데, 3월 초부터 남도의 검붉은 설움처럼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통째(온몸)로 떨어지는 동백꽃이 장관이라고 한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을 벗어나면 백련사가 보인다.

 

 

백련사 앞에는 조그만 연지(蓮池)가 있다.

 

 

만덕산 백련사

신라 시대 명필 김생의 글씨를 집자 했다고 현판 옆에 씌여있다.

 

 

차량통행금지

 

 

 

 

 

만경루

 

혜장보다 10살 위인 다산은 유배생활의 시름을 이곳에서 혜장스님과 차를 마시며 달래고,

다산은 혜장에게 주역과 유학을, 헤장은 다산에게 차를 이야기하며 사철 푸른 동백숲과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의 붉은 꽃

 그리고 구강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원교 이광사가 쓴 만경루 현판

 

만경루에서 본 풍경

 ▲

만경루를 지나 도량에 들어서면

탐진강을 비롯한 아홉 물길이 모인 구강포(강진만)가 한눈에 조망되며 3천여 평의 동백숲이 반짝이며,

 일주문과 해탈문의 역할을 사철 푸른 동백숲이 대신한다.

 

 

백련사 대웅보전(전남 지방문화재 제136호)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

 

인연도 참 고운 인연이다.

대웅보전 단청 작업을 하고 있어 보여주지 않음은

한 번 더 오시어 대웅보존과 붉은 동백꽃을 보라는 백련사 부처님의 간곡한 부탁이라 믿으며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불자는 아니지만,

탐욕과 이기로 냄새나는 몸 더럽다고 고개 돌리지 마시고, 제 여정의 발길마다 당신의 불꽃 같은 관심 주십사 기도하며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더니, 간곡한 내 기도에 미소로 화답하신다.

 

 

대웅전에는 목조 삼존불이 모셔저 있는데,

 보통 중앙에 있는 본존불이 석가모니불이면 좌우 불상은 협시보살상이 배치되는 것이 통례인데 반해,

백련사 대웅전은 좌우에 똑같은 여래상을 안치한 것이 특징이다.

 

 

 

 

 

대웅보전 벽화는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스님들이 그렸다고 전해지나

안타깝게 공사 중이라 다음을 기약한다. 

 

 

 

 

 

 

 

 

 

 

 

 

 

 

백련사

 

839년(신라 문성왕1) 무염 국사(801~808)가 만덕사로 창건했으며,

1211년(고려 희종7년)에 원묘국사 요세스님(1163~1245)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결사로 크게 이름 날려 백련사(白蓮社)로 불렸다.

앞서 시작된 송광사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룬다. 송광사 지눌 스님의 수선결사가 정혜쌍수를 수행의 요체로 삼았다면

원묘국사의 백련결사는 삶속에서 민중들과 함께 참회와 염불수행을 통해 현세를 정토로 만들자는 최초의 민간결사운동이었다.

백련결사는 120년간 고려 8명의 국사를 배출한 중요한 절이었으나,

(고려 8명 국사 - 원묘, 정명, 원환, 진정, 원조, 원혜, 진감, 목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남해안에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해 폐사 직전에 이르렀다.

 

 

그 후 1430년(세종 12년) 행호대사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동원 20동과 서원 4동을 건립하고 왜구의 침입에 맞서 행호토성을 쌓는다.

세종의 둘째 형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입산하여 8년간 수행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1621년(광해군 13)부터 1627년(인조 5) 사이에 삼우스님, 효종 때 현오 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련사는

조선시대에도 청허 휴정선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8명의 종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8명 종사 - 소요, 해운, 취여, 화악, 설봉, 송파, 정암, 연파)

그 가운데 여덟 번째 연파종사가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던 아암 혜장선사이다.

(백련사 홈페이지 참조)

 

 

 

 

 

 

 

 

 

 

 

백련사 앞에 있는 250년 된 배롱나무는 8월 초에 꽃이 핀단다.

 

 

 

 

백련사 사적비(보물 제1396호)

 

 

 

 

 

 

 

 

 붉은 동백이 필 즈음 다시 백련사를 방문하리라 다짐하며, 다산길을 걸어 다산초당으로 가야 한다.

오후 늦게

장마가 온다니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