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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경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像이 있는 마재성지(馬峴聖地)

 

두루마기 입은 예수 像이 있는 마재성지(馬峴聖地)

 

 

어디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16

 

다산 유적지 도착 500m 전에  

다산의 형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순교와 그의 성가족을 기념하는 마재 성지가 있습니다.

 

현재 마재성지가 들어서 있는 자리는

한국 천주교 창립 성현 중 한 명인 정약종과 그의 형제들이 살았던 생가터로,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형제는 이곳에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읽고 신앙을 받아들였던 곳입니다.
대부분
많은 천주교 성지들이 ‘순교지’인데 반해 마재성지는 한 가정의 ‘신앙 출발지’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마재(마현)성지

 

 

 

마재성지 한옥성당

 

현판에 쓰인 글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던 토마스(도마)의 고백으로,

 의심이 많았던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의 가슴에 난 상처에 손을 댄 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 20, 27~29)”라고 답했는데,
이 토마스의 고백이 마재성지의 성당에 걸린 이유는

보지 않고도 하느님을 믿었던 정씨 형제들의 신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랍니다.

 

 

 

 

 

약종동산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면서 조직한 명도회 초대회장이었으며

명도회는 교회공부와 전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평신도 단체명입니다. 

 

 

정약전과 그의 딸 정난주(마리아), 정약용(세례자 요한)은 유배를 떠나고,

큰 형 사위인 황사영(알렉시오)와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그의 부인 성녀 유조이(체칠리아),

큰 아들 정철상(가롤로), 둘째 성 정하상(바로로), 딸 성녀 정정혜(엘리사벳)은 순교하므로써 믿음에 사표가 되었고

특히 정약종 가족은 부인, 아들, 딸 모두 마재의 성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도자기로 형상화한 성모 마리아像

 

 

칼십자가

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옥에서 쓰고 있던 ‘칼’을 십자가로 표현했답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이 빌라도의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의 언덕에 이르는 길을

Via Dolorosa(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라 하는데

마재성지에도 십자가의 길 14개 형상이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의 14개 처소와

구성이 같아

산책을 하면서 예수의 고난을 묵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첫 번째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심

 

 

두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

 

 

세 번째

예수께서 넘어지심

 

 

네 번째

예수께서 마리아를 만나심

 

 

다섯 번째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짐

 

 

여섯 번째

여인이 예수께서 흘리신 땀을 수건으로 닦아줌

 

 

일곱 번째

예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여덟 번째

예수께서 우는 여인을 위로하심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예수像

 

 

아홉 번째

예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

 

 

열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지기 위해 옷을 벗김

 

 

열한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열두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열세 번째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심

 

 

열네 번째

예수께서 무덤에 안치되심

 

 

십자가의 길 마지막은 못 박히신 예수님의 발

 

 

활짝 핀 모란과 이따금 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마재성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업적 가운데 한국인이 쓴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그 위에 임자가 계신줄을 알고 병들어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하늘을 우러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며 빌고 천둥번개가 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시다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러하리요."

 

 

이곳에서 태어난 정약종 형제의 천주교 믿음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길이 남길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첫째인 약현은

그 부인이 이벽 성조의 누이이니 이벽은 약현의 처남이 되고, 사위가 황사영 백서사건의 장본인인 황사영이며

정씨 형제의 누이가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입니다.

또한

진산사건으로 효수된 윤지충은 외사촌간입니다.

 

둘째인 약전은

신유박해 때 신지도로 유배를 당하고, 조카사위인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흑산도로 유배 길을 떠나

그곳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셋째인 약종(아우구스티노)은

한국 천주교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 중 한사람으로

큰아들 정철상과 함께 성인품에 오른 둘째 정하상과 딸 정정혜도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약종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르 펴냈으며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 초대회장으로

사제와 교우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1801년 옥사를 합니다.

 

넷째인 약용은

신앙생활을 하며 신해박해(1791년)때 교회를 떠나지는 않았으나 을묘년의 포도청 장살사건이

당쟁으로 번지면서 반대파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잠시 천주교를 떠났으며,

이어 신유박해(1801)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포항 장기로, 다시 황사영 백서 사건이 터지자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이 때 그는 스스로 호를 여유당(與維堂)이라고 불러

초대 교회 창립을 휘해 명도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크게 활약한 형 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서소문밖에서

순교한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시하였답니다.

 

 

마재성지는

한옥 성당과 약종동산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조그만 성지였으나

갖가지 꽃과 숲이 우거지고

 예수께서 빌라도의 재판에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무덤에 묻히는 14개 과정이 형상화된 십자가의 길이 있어

산책 겸 묵상을 할 수 있으며,

특별하게 한복 두루마기를 입으신 예수를 볼 수 있었고, 검은 튤립이 군데군데 피어

 더욱 기억에 남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