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비운의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465호(2005.4.13)
어디 : 서울 종로구 평동108-1
경교장은
1938년 광산업을 하던 최창학이 지은 건물로
원래는 ‘죽첨장’이었으나 건물주인 최창학이 환국한 김구 선생에게 거처로 제공하면서
김구 선생이 옛 지명을 따라 지은 ‘경교장’으로 불렸다.
김구 선생은 환국 이후 경교장에서 3년 7개월간 기거했으며,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강점기 27년간 중국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해방 후 환국해
마지막 임시정부(임정) 청사로 사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임정 국무회의가 진행됐으며,
민족 분단을 막기 위한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 협상 준비가 이뤄졌다.
경교장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1946년 2월 13일까지 4개월간 임정 청사로 사용됐다.
당시 임정 요인으로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을 포함해 임시정부 국무위원 15명이 경교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경교장 1층 영상실
↑
영상실 내부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공간
임시정부의 홍보및 언론관계를 담당하였던 선전부가 활동하던 공간
경교장 2층 발코니에서 김구 주석과 수행원들
(좌- 장우석, 안미생, 김구. 안우생)
귀빈식당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개최되고, 김구가 서거했을 때 빈소로 사용했던 곳
지하1층 전시실
죽첨장 - 경교장 - 훼손과 복원
경교장 모형과 층별 구조
중경 임시정부 청사 앞 환국기념 사진(1945.11.3.)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기념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 기념 서명
김구 서명 태극기
김구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매우사 신부에게 준 태극기로 바탕에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의 친필
김구의 인장 과 친필 서명본 백범일지
시계와 혈흔이 묻은 책
김구 유묵(遺墨)-신기독(愼其獨)
김구 서거 당시 책상 위에 있던 유묵으로 "홀로 있을 때도 삼가한다."
김구 혈의(血衣)
김구가 안두희의 저격을 통해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저고리와 바지이다.
옷 전체에 혈흔이 남아있고 저고리에는 탄흔이 남아있다.
데드마스크(Dead Mask)
김구 서거 당일(1949. 6. 26) 조각가 박승구가 뜬 데드마스크이다.
2층 응접실(서재)
임시정부 환국 후 김구와 정당대표들과의 회담및 국무회의가 개최된 곳
임시정부 요인 숙소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곳
김구 유묵(遺墨) - 사무사(思無邪)
김구 서거 당시 책상 위에 있던 유묵으로, '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회의 장면
건축 원형 전시실
이곳은 임시정부 당시 욕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벽체, 바닥(타일), 천정, 창문 등이 건측 당시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침실에서 바라 본 창가 책상 있는 곳이 서거 장소
측면에서 본 백범 김구 선생 흉상과 집무실
정면에서 본 백범 김구 선생 집무실과 침실
서거時 집무실 장면
경교장 마당에 김구선생 서거 소식에 몰려든 인파와 유리창 탄흔
서거 당시 책상의 흐트러진 모습
유리창 탄흔
경교장 입구
↓
김구 선생 서거 후
삼성 측으로 소유권이 이전되기 전까지 경교장은 자유중국대사관, 6.25 전쟁 당시 미군의료부대 주둔지,
9.28 수복 후 미군특수부대 주둔지, 베트남 대사관저로 사용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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