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高宗)이 하늘에 제(祭)를 올린 환구단(園丘檀)
사적 제 157호(1967.07.15)
언제 : 2013년 3월 29일 금요일
어디 : 서울 중구 소공동 87-1
2013년 3월 마지막 금요일,
남쪽 지방은
벚꽃축제, 산수유 꽃축제, 매화꽃축제 등 봄꽃 축제가 한창인데
서울을 중심으로
중부지방은 아직 꽃은 피지 않았으나 햇살이 아주 좋아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 외출을 못하다가
서울 조선호텔에 있는 환구단을 다녀왔습니다.
환구단 입구
현재 환구단 입구는 본래의 자리가 아니고, 본래 환구단 입구는 조선호텔 입구 쪽 입니다.
석고
황궁우(皇穹宇)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성종 2년(983)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으나, 명나라 황제만이
천자로서 천제를 지낼 수 있다는 외압에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탐탁치 않게 여긴 일본은 1913년 환구단을 허물어 버리고
1914년 그 자리에 4층의 조선호텔을 세웠다.
현재 남은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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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의 옛 모습
환구단 터와 황궁우는 당시 고종이 황제로서 제천 의례를 행하던 곳으로, 예로부터 천자라고 주장해 온 중국이나 천황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과 대등한 자격으로 서기 위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는 한편 서구 열강에 대해 독립적인 국가상을 보여주고자 했던 정치적ㆍ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는 황궁우와 3개의 돌북, 그리고 석조 대문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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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문(석조대문)
삼문 계단
삼문에서 바라 본 환구단
환구단은 1967년 7월 18일 사적 157호로 고시되면서 정식 문화재로 인정 받았지만,
그 정확한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환구단의 첫 자인 '圜'자를 '환'으로 읽어 환구단으로 할지,
'원'으로 읽어 원구단으로 할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문화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인데,
중국에서도 환구단의 첫 자인 '圜'을 우리의 '원'에 해당하는 '위안'으로 독음하기 때문에 우리도 '원구단'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서울시는 2005년 문화재청이 환구단 명칭을 정할 때
"원구단이 정식 명칭으로 적합하다"는 내용의 의견을 제출했지만,
문화재청은 당초 안(案)대로 환구단으로 결정했다.
황궁우 내부
해시계
뭔지 모르나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 쇠붙이가 황궁우 앞 계단에 박혀 있습니다.
황궁우와 프레지던트호텔
황궁우와 롯데호텔
황궁우와 조선호텔
현재 황궁우는
높은 빌딩에 막혀있고 마치 조선호텔 정원처럼 보이고 있는데,
환구단을 복원하려면 조선호텔, 롯데호텔, 프레지던트호텔 등 높은 건물들을 철거해야 하고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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