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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전남) 더 머물고 싶었던 태안사(泰安寺)

더 머물고 싶었던 태안사(泰安寺)

 

 

언제: 2011년 8월 6일(토요일)

어디: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

 

 

순천에 계시는 장인과 장모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서울 둘째 동서 내외와 우리 내외가 오랜만에 함께 순천을 내려갔다.

하필이면

태풍 무이파가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오늘 오후부터 영향을 미친다는데 다행히도 순천은 아직 태풍의 영향이 닿지 않아

하늘만 잔뜩 흐려 있을 뿐 바람이 불어 무더운 날씨가 아니어서 좋았다.

 

 

이왕 순천까지 내려온 김에 시간이 나면 여수 향일암을 보고 싶었는데 태풍은 몰려온다 하고 또한 그곳까지는 지금 시간으로는

어렵다며 동서가 나에게 곡성 태안사를 한 번 보러 가자고 한다.

언젠가

태안사에 대해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어 귀가 번쩍

오후 4시에 순천에서 곡성 태안사로 향했다.

다행히 태안사는 동서가 몇 번 다녀간 곳이라 30여분만에 태안사에 도착했다.

 

 

 

큰 도로 옆 돌에 새겨진 동리산 태안사의 안내를 받아 산길에 들어서니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우거진 숲길과 우측으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약 2.5km 산길을 시간이 충분하다면 걸어서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무념무상으로 그 길을 걷고 싶은데 태풍의 영향으로

흐려 있는 하늘과 늦은 오후의 산속이라 마음이 급하다.

 

 

 

차에서 내리니 저 위에서 어깨를 턱 펴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건물이 있다.

능파각(凌波閣)

능파란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

 

 

 

 

다리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주는 곳

불교에서 다리는 사바세계와 피안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경계를 상징한다.

아래로 동리산 계곡의 맑디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려 가는 능파각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속세에서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장소라는 상징성 또한 부여된 것 같았다.

걸어서 능파각을 건너며 냄새나는 이 몸 당신의 세계로 들어서니 더럽다 냄새난다고 고개 돌리지 마시고

저를 받아주십사 마음속으로 빌며 능파각을 건너 하늘 우거진 숲길이 일주문에 이른다.

 

일주문 이르기 전 길 좌우측에 돌담이 편안히 쌓여 있고

그 위에는 하늘이 내려와 아담한 연못을 이루고 연못 가운데 삼층석탑이 자리한

탄성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하늘이 내려와 동리산 허리에 연못을 이룬 한가운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3층 석탑이

물 위에 비치는 아름다움은 탄성이 절로 난다.

많은 곳을 여행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늘과 산이 어우러져 정리된 연못에 산사와 석탑이 비치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절경이라 

표현하고자 하는 글이 짧아 아쉽다.

 

태안사 일주문과 목백일홍

6.25 동란으로 사찰이 불타버렸으나 유일하게 능파각과 일주문은 불타지 않아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일주문 옆에 다소곳 비켜 서 있는 흰백일홍 

일주문에서 절까지는 쭉 뻗은 전나무가 영접을 하며 그 우측에는 부도군이 있다. 

 

윤다 광자대사의 부도(보물 제274호)와 부도비(보물 제275호) 부도비는 비신이 파괴되었다. 

대웅전 

 

삼성각과 우물

공사중인 종루 

보제루 

 

적묵당 

약사전 

염화실(주지스님의 거처로 사용) 

살짝 들린 모습의 처마가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염화실 

 

태안사는 3단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태안사를 창건한 혜철스님의 부도탑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물 제273호 

 

 선원

 

해우소 

약사전을 중심으로 좌측은 염화실 우측은 선원 

 

 

 


[ 태안사 바라 - 보물956호 ] 
바라는 승가에서 범패같은 행사에서 사용되는 무구로서 악사가 무자, 여기, 집박악사, 악공 등을 인도할때나 그 밖에 취타와 무악 등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바라가운데 절에서 쓰이는 것을 동발이라고 하는데, 태안사 바라는 효령대군이 세종과 왕비, 왕세자 등의 수복을 빌기 위하여 발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이 바라는 한 사람이 한손으로 들고 치기는 어렵다. 제작기법이 우수하며 손상이 거의 없는 것이 특색이다.

앞뒷면에 침점으로 새긴 1백자 명문이 있고 원형 중심부에 조금튀어 나온 돌출부가 있으며 그 가운데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고 무거운 중량 때문인지 기둥에 고정시켜 놓은 흔적이 있는 지름이 92cm인 태안사 바라는 2매가 1쌍이며 보물956호 이다.

 

태안사를 떠나며

 

둘째 동서 덕분에 뜻하지 않은 전라남도 곡성군 동리산에 있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절 태안사를 볼 수 있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크고 이름있는 사찰이야 언제든 갈 수 있으나 멀고 좁은 곳에 위치한 사찰을 가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토요일인데도 고요하기만 한 태안사

유명한 절보다는 더욱 정겹고 마치 보석의 원석을 발견한 듯한 더 머물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능파각

그리고

하늘이 내려와 만든 연못 그 위에 삼 층 석탑이 물 위에 비친 환상적인 풍경

잘 정리된 도서관 같은 절이 태안사이며 누군가에게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태안사 소개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 (742년)에 동리산파를 일으켜 세웠던 혜철스님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 는데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리웠으며 이나라 불교의 구산선문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로 선암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등을 거느려 꽤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던 사찰로 혜철선사와, 도선국사가 득도한 정양 수도의 도량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광자선사가 32칸으로 넓혀 지었으나 고려시대 중기에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지로 지위를 굳혀 따로 제금났고, 조선시대에는 어느절이 겪었던 것과 마차가지로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 바람을 탈 수 밖에 없었으나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온당으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줄곧 옛날의 영화로움을 되찾지 못한채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일제시대에는 도리어 화엄사의 말사로 격하 되었다. 그나마 6.25전쟁때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절에 딸려 있던 건물 세채가 불에 타 버렸고 지금의 대웅전은 1969년에 옛 모습을 본따서 새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뜰에는 돌로 만들어진 혜철 스님의 부도와 광자선사를 기리는 탑과 비가 이끼 낀 채로 남아 있어 이 절의 연조가 오래됨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태안사는 도 문화재 자료 23호로 지정되어 있고 경내에는 태안사 바라 등 9점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으며

태안사는 봉두산 혹은 동리산(鳳頭山: 桐裏山: 752미터) 경사면 해발 27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고종 10년(1223)에는 당시 집권자인 최우가 고쳐 지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숙종 10년(1684)에 주지 각현이 창고를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특히 조선초에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이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때 많은 피해를 입어서 지금 있는 건물은 대부분이 복원된 것이다. 경내에는 혜철선사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비(보물 제275호), 승무를 출 때 사용하던 태안사대바라(보물 제956호), 태안사동종(보물 1349호), 태안사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태안사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