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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전남)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까지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까지 

 

산의 동쪽에 있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으며, 현재 태고종의 본산인 태고총림이다.

경내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大福田)과 '천인'(天人)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선암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와 강선루가 있다.

 

송광사-마당재-굴목재[屈木峙]-선암사를 잇는 등반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15:30 

 

송광사 굴목재를 너머 질경터에 자리한 보리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시커먼 가마솥에 끓는 숭늉을 마시는 일도 또한 일품이다. 

 

 

 

조계산 장군봉 

 

호랑이 턱걸이 바위를 지나 얼마간 내려가니 유명한 선암사 편백나무 숲이 나를 반긴다.

시간이 있다면 귀한 편백림의 피톤치드(phytoncide) 산림욕을 할 일이지만

날은 흐려지고

해는 이미 구름속에 숨어 발길을 서둘러야 했다.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일제시대의 선암사 전경

 

 

뒤깐의 전경 

청파전(절의 살림살이 관장) 

선암사 감로수 

적묵당(공양하는 곳)

절에서는 공양간, 뒷간, 세면장삼묵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이나 일을 볼 때 씻을 때는 항상 엄숙해야 한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웅전의 앞문이 없어 특이하다.

대웅전의 불상

  

설선당

 

팔상전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팔상도라 한다.

이 그림들을 모시고 석가여래를 기리는 불전이 팔상전이다.

원통각

정조 13(1789)년에 정조가 후사가 없자 눌암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스님이 대각암에서 100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가 태어나자 순조는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편액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 하였다.  

 

선원

 

 백매화

 

 

 

각황전 담벽의 홍매화  

 

 

무량수전앞의 와송 

 

범종루의 목어 법고 

 법고를 치는 스님

범종각 

범종 

 범종루의 야경

고청량산해천사(일주문 안쪽 현판/ 절의 옛이름 해천사와 옛 산이름 청량산)

일주문( 조계산 선암사)

▲하마비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 떠나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보물 400호인 승선교와 강선루

 

큰 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 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 기슭의 흙길에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길을 만들었다. 기단부는 자연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으며, 홍예석 중간에는 이무기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함께 재해를 막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승선교는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으며, 순조 25년(1825) 해붕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동부도전(화산대사 사리탑과 상월선사 비)

 

부도 11기와 비석 8기가 줄지어 있는데, 부도는 대부분 팔각원당형이다. 그 중에는 사사자가 삼층석탑을 지고 있는 이형부도 한 기도 있다. 이 부도는 부도밭에 있는 벽산대선사비(높이 3.75m)와 같은 시기인 1928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산대사부도(높이 4.1m)로, 사자 네 마리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전남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보물 제94호, 8세기 중엽 작품)이나 충북 제천 빈신사터사사자석탑(보물 제94호, 1022년 작품)을 닮았다.]고 쓰여있다. 이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것은 삼층석탑이 부도군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밤길을 밝히는 등불(선암사에서 주차장까지)

 

여행후기

 

15:30

눈이 조금 쌓여 미끄럽기도 했고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오는 사람들은 제법 있었으나 나 처럼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여 몇번이고 되돌아 송광사로 갈까 갈등도 있었지만

중간에 위치한 보리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16:30

하늘이 흐리고 해는 구름속에 숨어버려 산속의 밤은 일찍 오는데 무사히 선암사에 도착해서 선암사를 둘러보고

17:30

범종루의 예불을 볼 수 있어 고마운 일이나 일주문 그 아래로는 날이 어두워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바라보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없어 아쉬웠다.

 

선암사의 풍경은 뭐니뭐니해도 승선교에서 강선루를 바라보는 경치가 제일일 것이다.

대체로 절은 모든 건물이 일주문안에 두는데 선암사는 일주문 저 멀리 밖에 강선루를 두고 승선교와 멋진 조화를 이루게 했다,

 

선암사의 진입 공간 부분은 다소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첫 건물인 강선루(降仙樓)에서부터는 가파른 지형이다. 이곳은 그다지 넓지도 않다. 따라서 급한 경사지를 여러 단(段)으로 깎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선암사의 건물들이 좌우 방향으로는 다소 넓으나 전후 방향으로 조밀한 것은 그 까닭이다. 이러한 단들은 공간을 오르는 방향으로 분절하여 위계성을 주며 시각적으로는 전개되고 패쇠되는 효과를 연출한다.
우리나라 사찰의 공간 구성을 인위적으로 구분하고자 할 때 공간의 순서에 의미를 부여하여 진입 공간, 과정적 공간, 청정 공간, 매개 공간, 주공간, 부공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선암사에 있어서는 이러한 고려가 아주 우수하다.
강선루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여느 사찰에서는 보기 드물게 긴데, 두 번을 휘감고 돌아가 가파른 경사를 이룬다. 일주문을 지나면 범종루(梵鐘樓)가 압도하듯 다가온다. 그냥 서서 자나가면 호령이라도 할 것 같다. 이를 누하진입(樓下進入)이라고 한다.

전라도 지방의 사찰에는 이러한 누하진입이 드물다.
대웅전 앞뜰을 그다지 넓지 않다. 쌍탑(雙塔)을 격에 맞게 두었고 앞에는 길 다란 강당을, 좌우에는 요사와 선방을 위치시켰다. 이러한 배치구조는 조선후기의 사찰가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구조이다.  

선암사의 가람 배치 형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역과 축선이다.사찰의 규모가 크고 불전의 수가 많으니 주축 외에도 여러 개의 축을 설정하여 둘 이상의 주불전이나 영역을 통합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주축 상에 위치한 대웅전 영역의 건물군 외에도 원통전 영역, 응진당 영역, 각황전(覺皇殿) 영역 등 경내 전체를 네 개의 영역으로 건물들이 배치되는데  대웅전 영역의 중심축에서 약간씩 비켜 서 있다.

특히 이러한 소 영역들은 서로 분리되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축대로 쌓여진 각각의 서로 다른 단 위에 펼쳐져 있다. 선암사는 예부터 6방(房) 살림을 살았다고 한다.여기서 6방이라하면 상선원.하선원.강원.정읍원.도감원.염불원을 일컫는다.

상선원은 지금의 칠전으로 하선원인 심검당에서 어느정도 수행을 한 납자들이 참선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하선원은 심검당으로 수행납자들이 처음 선방에 들어와서 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강원은 천불전으로 스님들이 부처님의 경전을 공부하는 공간이다. 정읍원은 무우전으로 밀교계통의 다라니를 외우는 공간이다.

도감원은 창파당으로 절의 사무를 관장하는 곳이다.
염불원은 설선당으로 아미타불을 계속해서 독송하는 공간이다. 이런 6방 살림은 예불, 공양 등을 따로 분리하여 각각의 독립된 공간에서 독자적인 살림을 살았다고 한다.
선암사 가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삼무(三無)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그 이유는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구지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는 주련인데 다른 사찰의 대웅전에는 주련이 기둥에 붙어 있는데 선암사는 개구즉착(開口卽錯, 입을 열면 틀리다)라고 하여서 곧  깨달으면 말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해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
셋째는 어간문이 없는데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의 문에도 사람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太古叢林)이다.

 

 

17:50

선암사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니 버스는 조금전 출발하여 다음버스는 18:30에 있다

날은 어둡고 할 일도 없다.

동동주라도 마시며 시간을 보낼까 생각도 했으나

18:30

나와 버스기사만 탄 버스는 어둠을 달려

19:20

순천 버스터미널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선암사의 일주문 안쪽 현판에는 옛 절 이름과 옛 산 이름이 적혀있고

선암사 하면

우리나라 절의 해우소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뒤깐이 있다. 또한 무량수전 앞의 와송(누워있는 소나무)도 인상적이었으며

선암사만의 특징이라면 三無를 빼놓을 수 없다.

3무란 첫째 사천왕문이 없고 둘째 주련이 없고 세째 대웅전 앞문이 없는 것이다.

아쉬운 일이라면

남들은 일부러 편백숲의 피톤치드(phytoncide) 산림욕을 하러 찾아 간다는데 나는 편백숲을 지나면서도 시간이 없어 산림욕도 못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