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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전남) 신년 산행 순천 조계산과 송광사

순천 조계산과 송광사(松廣寺)

 

경인년(庚寅年) 새해,

1월 3일 조카가 전라남도 순천에서 결혼 하기 때문에 송광사와 선암사라는 두 거찰을 품에 안은 해발 884m의 조계산을 올해 신년 산행으로 정했다.

 

조계산은 소백산맥 끝자락에 솟아 있고 해발 884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며,

정상인 장군봉을 중심으로 연산봉, 월출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12월에는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다.


산의 서쪽에 있는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이후 50여 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절이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부터이다.

송광사는 16국사를 비롯하여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우리나라 三寶사찰 가운데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다.

경내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제43호)·송광사국사전(국보 제56호)·

송광사경패(松廣寺經牌:보물 제175호)·송광사하사당(보물 제263호)·송광사약사전(보물 제302호)·송광사영산전(보물 제303호) 외에도 많은

보물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주위에는 광원암·감로암·천자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천자암 위쪽에는 곱향나무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가 있다.

 

산의 동쪽에 있는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으며, 현재 태고종의 본산인 태고총림이다.

경내 주요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3층석탑 2기(보물 제395호), 입구의 석조 다리인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 동부도(보물 제1185호), 금동향로(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화산대사사리탑,

순조가 친필로 쓴 '대복전'(大福田)과 '천인'(天人)이라는 편액 등이 있다.
선암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昇仙橋:보물 제400호)와 강선루가 있다.

그밖에 비룡폭포가 유명하며 특산물로 산채와 고로쇠약수가 알려져 있다.

 

송광사-마당재-굴목재[屈木峙]-선암사를 잇는 등반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눈 덮인 송광사.

 

 

매표소와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승보종찰(僧寶宗刹)이란?

 

송광사가 승보종찰이라는 이유는 두 가지 사실에 연유한다.

첫째는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 고려 때 보조 국사(普照國師 知訥)스님께서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는데 그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바로 송광사였다.

다른 하나는 지눌 스님의 뒤를 이어 송광사에서 열다섯 명의 국사들이 출현하여 지눌과 함께 모두

열여섯 명의 국사(十六國師)가 나와 한국 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총림(叢林)이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이라 함.

 

청량각과 극락교

송광사 입구의 편백나무 숲 

 

 

 

 

 

송광사 일주문 

 

세월각과 척주당

보조국사의 전설을 간직한 뼈대만 남은 고향수.

송광사(松廣寺) 우화각(羽化閣) 앞에 키가 6.7m인 말라죽은 나무가 있는데 고려 명종 30년(1200년) 송광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1158~1210) 스님이 향나무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살아서 잎과 가지가 무성하였답니다. 그런데 지눌 스님이 “너하고 나하고 생사를 같이하자. 내가 떠날 때 너 또한 마찬가지…”라는 시를 지어놓고 입적하니 향나무도 말라 죽었는데 현재에도 썩지 않고 남아있어 고향수(枯香樹)라고 부릅니다.

영조 27년(1751년)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에도 “보조국사와 함께 죽은 나무가 있다. 천 년이 지났건만 잎은 없으나 칼로 긁으면 안에는 물기가 촉촉한 것이 생기가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능허교와 우화각 그리고 육감정)

 

일주문을 넘어 조계산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그 위에 놓인 능허교와 우화각, 그리고 두 발을 맑은 물에 담은 육감정(六鑑亭)은 뭐니뭐니해도 송광사 제1의 풍광이다.

특히 얼은 계곡물 위에 소담히 덮인 하얀 눈 그 위에 능허교와 우화각의 풍경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곳을 건너야 부처의 세계에 듦은

속세의 모든 허물을 맑은 물에 씻고 부처의 세계 즉 이상향의 땅에 발을 딛음이다.

육감정(삼청선각)

육감이란- 거울에 비치는 하늘, 해, 달, 별, 구름, 바람.

  

심계루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으로 내 안의 탐욕을 씻어 내린 듯하다.

 

 

종루 

 

 

대웅보전에는 삼세여래(과거 연등불, 현재 석가모니불, 미래 미륵불)와 사대보살(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승보전 옆 모습(비사리구시와 벽면의 십우도)

 

송광사 3대 명물(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

 

 

 

국사전(국보 제56호)

나라를 빛낸 큰 스님 16분의 영정을 모신 곳.

 

  

선원

 

성보각의 성보 박물관(사진촬영절대불가)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 국보 제42호

박물관 안에는 목조삼존불감과 고려고종제서(국보 제43호)와 능견난사, 경패, 금동요령등 귀한 문화재들이 전시되어있다.  

 

   

설법전과 수선사 오르는 길

 

대웅전 보다 더 위에 있는 지눌스님의 부도에서 내려다본 눈 내린 지붕들과

성보박물관에서 본 능견난사와 승보전옆에 놓인 비사리구시 그리고 추운 겨울에 아직도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1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승보종찰 송광사에는 16국사를 상징해서인지 16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보조국사께서 창건하신 보조암(普照庵 ; 일명 本庵)을 중심으로 한 은적암(隱寂庵 ; 東庵)·광원암(廣遠庵 ; 西庵)·묘적암(妙寂庵 ; 南庵)·북암(北庵)과 천자암(天子庵)·청진암(淸眞庵)·자정암(慈靜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조계암(曹溪庵)·판와암(板瓦庵)·실상암(實相庵)·상선암(上禪庵)·상염불암(上念佛庵)·하염불암(下念佛庵)을 말한다.

그 가운데 현존하는 암자는 광원암· 천자암· 감로암· 부도암· 자정암(현재 佛日庵)· 판와암(현재 印月庵)뿐이며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과 탑전(塔殿 ; 寂光殿)이 있다. 보조암·은적암·묘적암·청진암·조계암·실상암(1994년 확인)·상선암(1994년 발견)은 터가 남아 있으나 북암·상염불암·하염불암은 이름만 전할 뿐이다

 

 

 

삼보사찰(三寶寺刹)

삼보 사찰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娑)를 봉안한 불보(佛寶) 사찰인 양산 통도사,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 사찰인 합천 해인사,

보조 국사(普照國師)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 사찰로 불리는 순천 송광사지칭하는 말이다. 

 

 

토다리 

대피소 

 

 

 

 

대피소 

조계산 질경터의 보리밥집(송광사와 선암사 중간에 위치한 밥집) 

  

여행 후기

 

2010. 1. 2.

 

10:30

송광사에 도착

2,500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산문에 들어서니 승보사찰조계종송광사란 큰 글자가 새겨진 자연석이

나를 맞이한다.

눈에 덮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속세의 발길을 쉬어가라는 청량각이 극락교 위에 서 있고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저 멀리 송광사 일주문이 두 발을 버티고 "아무나 오는 것 아니다." 하며 나를 노려 본다.

 

대체로 일주문은 사찰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송광사는 일주문과 경내가 조계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위의 능허교를 건너면 바로 경내가 된다.

송광사의 풍광은

뭐니뭐니해도 능허교와 우화각 그리고 두 발을 계곡물에 담긴 육감정이 제일이다.

 

청량각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능허교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조계산 맑은 물에 버리면

사천왕문을 지나 한 모금의 감로수로 마음의 탐욕을 씻어내면 곧 부처의 세계

이상향인 대웅보전을 맞이하게 된다.

대웅보전 좌측에는 승보전과 선원이 우측에는 지장전과 요사채가 자리한다.

 

웅장한 대웅보전에서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뒤로 돌아가면 선원이 있고 왼편으로 송광사를

승보사찰로 중흥시킨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에서 눈에 덮여 어깨를 맞닿은 지붕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이한 것은

다른 절에는 석탑들이 많은데 송광사는 석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절은 석탑을 중시하는데 왜 송광사는 석탑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송광사에는 우리나라 사찰중 국보급과 보물급의 문화재가 가장 많이 소장되어 있고,

3대 명물이 있는데

천지암의 쌍향수와 승보전 옆에 둔 비사리구시 그리고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능견난사가 그들이다.

또한

대웅전 뒤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를 보지 않고는 송광사를 봤다고 말 할 수 없다.

그곳에서 어깨를 맞닿은 지붕들과 경내를 내려다보는 풍광은 일품이다.

 

불자는 아니지만 나이 들어 가면서 여행지에 자주 절을 찾는데 그 이유가 있다면,

 

첫째 : 산문에 들어서면 마음이 경건해 지며 안식처 같은 포근함이 제일이며

둘째 : 부처 세계의 감로수 한 모금으로 내 안을 깨끗이 씻어 버리는 것

셋째 : 부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부담없이 바라는 것을 기원할 수 있으며

넷째 : 두 손을 모은 스님의 행보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음이며

다섯째 : 대체로 절은 명산에 있어 절을 둘러본 후 땀 흘리며 산행을 할 수 있음이다.

 

13:45

송광사를 둘러보며 더 머물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신년 첫 계획이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까지 걷는 일이기에 아쉬움을 두고 송광사를 떠나 조계산 산행을 했다.

산길은 험하지 않으나 눈길을 걷다 보니 힘들고 넘는 사람도 없어 몇 번이고 송광사로 돌아갈까

마음의 유혹이 있었으나 마음을 다잡고

15:00

조계산 중간에 있는 보리밥집에 도착

그곳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선암사를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