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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

 

언제: 2011.3.22.

 

지난 2월에 마이산을 다녀오려 했다가 동행인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던 마이산을

새싹이 나 나뭇잎이 무성해 지면 마이산의 속살을 볼 수 없기에 치장이 되지 않은 마이산을 보기 위해 3월이 가기 전에 혼자 다녀왔다.

그러나

사진을 담은 카메라의 이상으로 핸드폰으로 찍었던 몇장의 사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너무 크다.

며칠 전

새벽에 비 내리는데 영춘화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카메라에 빗물이 들었나 보다.

 

 

진안읍내 어느 방면에서나 눈에 띄는 마이산은 이름이 철에 따라서 네 가지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마이산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명한 마이산 탑사가 있는 남쪽에서 오르는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서 내려가는 코스이다. 마이산에는 조선시대 태조가 임실군의 성수산에서 돌아가다가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은수사,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80여개의 돌탑을 거느린 탑사 등이 있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말의 귀모양으로 생긴 두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솟아있는 숫마이봉은 667m이며, 서쪽에 솟아있는 암마이봉은 673m이다. 마이산은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으며, 화암굴, 탑군, 금당사 등이 있다. 특히, 두 봉우리 사이의 남쪽 계곡에는 돌로 쌓은 수십 기의 마이산 탑사가 있기도 하다.

 

신라 시대는 서다산, 고려 때에는 용출산, 조선조 태조 때에는 속금산으로 불리다가 태종이 산 아래 이르러 관원을 보내 제사지낸 후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전체가 바위로 되어, 인조 축조물같이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마이산의 두 봉우리 사이에는 V자형의 계곡이 있다. 이곳에서 조개류나 민물고기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지각변동이 있기 전에 호수나 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산 구경은 보통 진안 입구 로터리에서 연결된 관광 상가 쪽에서 시작된다.

두 봉우리 가운데 동쪽 봉우리는 수마이봉(667m), 반대쪽은 암마이봉(673m)이라고 부르는데 양 봉우리 사이에 있는 400여 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면 약수가 신기하게 솟아나는 화암굴이라는 천연굴이 있다. 이 약수를 마시고 지성을 드리면 옥동자를 본다 하여 아낙네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다.

수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은수사가 기다리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와 줄사철나무(천연기념물 380호, 국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북이 있어 유명해진 절이다.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절이 없어지고 절터만 남았고 이후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던 이 절은 1920년 경 은수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절에 작은 샘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섬진강이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깎아지른 바위가 만들어내는 절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마이산 최대의 명소인 탑사에 닿는다. 탑사에는 높이 15m의 천지탑을 비롯하여 80여개의 크고 작은 돌탑들이 원추형 또는 원기둥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모습이 절묘하다. 바라보면 금방 무너질 듯 한데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돌과 돌 사이의 흡인력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치 아랍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아라베스크의 지붕 모양을 하고 있는 이 탑들은 이갑룡 처사가 중생을 구제하고 만인이 짓는 죄를 속죄하는 마음에서 그가 25세 되던 해부터 10여년간 쌓은 것이다.
이갑룡처사는 1860년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났다. 25세 때인 1885년 마이산에 들어 와 수도를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전국 명산의 돌을 하나씩 날라다 마이산 주변의 돌과 함께 10여년에 걸쳐 혼자 돌탑을 쌓았는데 중생을 구제하고 만민들이 짓는 죄를 속죄하는 마음에서 쌓았다고 해서 만불탑(萬佛塔)으로도 불린다. 1957년에 세상을 떠났다.

지방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는 탑사의 돌탑은 쌓은 방식이 현대 기하학의 원리로도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하여 신비로움과 절묘함이 탑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남부 주차장에서 마이산의 진입로

 

 

 

 

타포니 지형

이 산을 남쪽에서 보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파먹은 것처럼 움푹 패인 많은 작은 굴들을 볼 수 있은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타포니 지형은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이 산의 타포니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특수한 기후조건, 즉 신생대 제 4기의 빙하기와 뒤에 온 한냉기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은수사

천연기념물인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와 줄사철나무(천연기념물 380호)가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북이 있어 유명해진 절이다.
이 절에 작은 샘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섬진강이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나 대홍수시 모래, 자갈 등이 압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으로 약 7천만년전 지각 변동으로 융기되어 지금의 마이산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된다. 마치 시멘트 범벅을 해 만든것 처럼 생겼다.

 

 

화암굴 

 

 

북부 주차장에서 본 마이산

 

- 여행후기 -

 

시골길을 오가다가 멀리서 마이산을 바라보곤 말아 늘 아쉬움이 남았는데 오늘 마이산을 다녀오니 마음이 후련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너무 크다.

카메라의 반란!

천연기념물 제 386호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와 섬진강 발원지 그리고 탑사의 암마이봉에 달라붙어 여름이면 장관을 이루는 능소화

그리고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사잇길에 숨어 핀 변산바람꽃.

사실

오랜만의 산행과 홀로의 여행의 피곤함에 귀가를 서두르며 탑사와 은수사를 지나 계단길을 힘들게 오르는데 계단길 옆의 낙엽속에

무슨 꽃이 피어있어 촬영을 하려다 그냥 지나쳐 계단을 다 오를 즈음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내게 바람꽃을 보셨나요? 묻는다. 그래서 그 꽃이 바람꽃인 줄 알았는데 

다리가 불편하여 다시 사진을 찍으러 내려갈 수 없어 다른 분의 사진을 옮겨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