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舞衣島).
개 요 : 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섬으로 육지에서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섬으로 두개의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하나개 해수욕장과 사유지인 실미 해수욕장이다.
하나개는 영화 천국의 계단과 칼잡이 오수정 촬영 셋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실미해수욕장은 영화 실미도 촬영장으로 썰물 때 바닷길이 열려 실미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섬 중앙에 호룡곡산(244m)과 국사봉(230m) 두 봉이 솟아있어 3시간 정도 등산도 할 수
있으며 주변에 실미도, 사렴도, 해녀도, 소무의도, 잠진도 등 작은 섬들이 있어
바다 낚시도 할 수 있어 인기있는 섬이다.
영종대교를 건너자 갯펄에는 칠면초(七面草)가 지천이다. 멀리 강화 마니산 (버스 안에서 촬영)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전철길이 뚫리고
인천공항 3층 (Gate 5-6사이) 잠진도 가는 버스 번호와 시간표
오전 중 썰물이라 갯펄이 드러났다.
잠진도 - 무의도 운행하는 배(왕복 2,000원) 건너편 선착장이 무의도 선착장
갈매기와 낚시하는 여인들.
잠진도와 무의도 사이 바다= 이 거리를 배 타고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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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꾸미에서 호룡곡산 등산로 입구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이 입구이다.
호룡곡산 오르는 조망대에서 본 시원하게 트인 바다와 영흥도 그리고 자월도.
샘꾸미(광명항) 선착장과 소무의도
호룡곡산 (244m)
잘록한 허리의 아름다운 능선
소무의도 우측의 작은 섬은 해녀도. 소무의도 뒤 멀리는 팔미도
호룡곡산 정상의 고래바위
호룡곡 정상에서 본 하나개 해수욕장
멀리 인천공항이 보인다.(우측) 좌측의 숲은 용유도이다.
호룡곡 정상에서
호랑바위
옛날에 이곳 섬에 물이 차 오르면서 이 바위밑까지 차올랐다지요.
이 때 어부와 호랑이가 함께 살았는데 산신령께 맹세를 했다나?
서로 절대로 헤치지 않겠다고 말이지요.
근데, 몹시 배가 고팠던 호랑이가 그만 어부를 한입에 삼켰다네요.
그러자 산신령이 노하여 지팡이로 호랑이 대갈통을 갈겼다지요.
호랑이는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바위가 되었는데 바로 이 바위랍니다.
호룡곡에서 바라본 국사봉(230m)
호룡곡산과 국사봉을 연결하는 짐승 이동로인 구름다리 그 아래 도로는 하나개 해수욕장 가는 길
국사봉쪽에서 본 호룡곡산
호룡곡쪽에서 국사봉 오르는 도중 바위
국사봉 정상 오르는 길
국사봉(해발 230m)
국사봉에서 본 인천국제공항
국사봉에서 본 실미도
국사봉에서 실미 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길의 바위
바위틈으로 보는 아름다운 실미도
바위위에 올려진 두개의 바위
숲길에 보이는 국사봉
국사봉 오르는 입구
무의도 숨겨진 비경들
하나개 해수욕장 입구
'하나밖에 없는 큰 갯벌'이라는 뜻의 하나개는, 서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폭 100m에 달하는 백사장이
1㎞ 넘게 전개되는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은 반원으로 넓게 퍼져 있고, 백사장 남쪽 끝에는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원색의 방갈로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요란하지 않은 편의시설들에 눈이 편안하다.
전국의 해수욕장 중 갯벌을 무제한으로 개방하는 유일한 곳답게 물이 빠지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에서
굴 캐는 재미가 쏠쏠하다. 갯벌 깊숙한 곳뿐만 아니라 숨구멍이 뚫려 거품이 생긴 모래밭 어귀를
조금만 파헤쳐도 하얗고 예쁜 동죽이 곧잘 잡힌다. 양동이를 들고 가 캐기 시작하면 1시간이 못 돼
홍합, 바지락, 피조개, 소라 등이 가득 찬다고 한다.
하나개해수욕장은 또 서녘을 바라보고 있어 낙조도 볼 만하다. 6월에서 7월 사이, 맑은 날의 낙조를
최고로 치는데, 물 빠진 해변에서 맞는 금빛 낙조가 특히 장관이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연인이나 연인 같은 친구가 낙조 무렵 이 갯벌을 함께 걷는다면 그새 아주 다정한(?)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을 만큼 낙조가 분위기 있고 화려하면서도 아름답다.
하나개 해변의 파도
해당화
해당화 열매
꽃 머금은 해당화
천국의 계단인가?
말 두필이 관광객을 싣고 달리기도 한다.
하나개 해변 전경
껍질.
모래파 갈매기
갯바위파 갈매기
실미 해수욕장 안내
실미 해수욕장
실미해수욕장이라고도 불리는 큰무리해수욕장은 하나개해수욕장에서 대무의도 북쪽 끝으로 가면 된다.
실미도의 푸른 해송을 배경으로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바다와 숲의 정취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이곳은 2㎞에 달하는 해변이 아름다우면서도 찾는 사람들이 적어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적격이다.
물이 빠지면 앞섬 실미도와도 이어진다.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1968년, 북한무장공비 김신조 일행의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남북은
극도의 긴장상태에 이르렀고, 한국에서도 북파 특수부대 일명 684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3년 4개월의 훈련 후에도
북파되지 못한 실미도 특수부대 훈련병들은 기간병들을 사살하고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로 향한다......
실미도는 무의도 실미해수욕장에서 바닷길이 열렸을 때에 맞추어 가면 걸어서 갈 수 있다.
실미해수 욕장에서 실미도까지는 약 100m 정도의 거리로 특별히 장화를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바닷길이 열리면
그야말로 살아 있는 갯벌이 생기는데, 굴은 물론이고 낙지까지 잡을 수 있기도 합니다. 세트장이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따라 10분정도 걸어야 한다.
막상 도착한 부대터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더 감동을 주었다. 아무도 살지않 는 무인도,
그리고 이름 모를 젊은 이들의 죽음. 실미도는 그야말로 정적 속의 분주함,
고요 속의 소용돌이 그 자체인 역사적인 섬 입니다.
실미 해수욕장
을왕리 해변과 멀리 왕산리 뒷산
실미 해수욕장
실미도. 물이 빠지면 건널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 밀물이라 가지 못했다.
아래 사진들은 71년 8월23일 실미도사건 당시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현장 사진이다.
■ 실미도사건 - 난동범들의 최후. 노량진 유한양행 앞. 인도에 올라선 버스가 난동범들의 탈취한 버스
■ 실미도 사건
2시간 동안 소란을 피우던 범인들이 버스안에서 자폭, 수도경비사 군인들이 시체를 꺼내고 있다.
(미게재사진)
■ 노량진로 유한양행 앞 실미도 사건 현장
■ 실미도사건 - 손일병이 대전에서 탈출하여 경기도 이천까지 타고간 충남1바 6003호 시보레 택시/ 뒷유리창에 총구멍이 보인다.
■ 실미도 사건
■ 당시의 실미도 부대 교관들
■ 자료출처 : MBC
■ 노량진로 유한양행 앞 실미도 사건 현장
■ 자료출처 : MBC
실미도 사건은 내가 고등학생 여름방학때 쯤 일어난 사건이다.
난 그때 서대문 천연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영등포구 대방동 유한양행 도로에서
괴무장군인들(처음은 간첩)이 버스를 탈취하여 청와대를 가겠다고 했던 사건으로 그 해 여름을
더욱 뜨겁게 했었다.
실미 해수욕장은 송림과 해변 가까이 있어 좋다.
그냥 갈 순 없잖아! 실미도 사건을 생각하며 한 잔은 하고 떠나야지......
밀물이라 실미도를 직접 갈 수 없었다. 술 한 잔 마시는 동안 물이 빠질까 기다리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름이 지났지만 아직 관광객들이 가족단위로 많았다.
큰무리 선착장의 밀물의 바다.
고기를 잡으러 나갈 채비를 하는 배
인천국제공항 업무지원단지가 보이고.
멀리 팔미도를 볼 수 있다.
낚시하는 남과 여(폼이 예사폼이 아니다.)
용유도와 잠진도의 연륙도로
용유도 마시란 해변
무의도 입구 선착장 풍경
지난 7월 25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미국의 잭 로젠과 독일의 켐핀스키 등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과
용유/무의 21.65㎢(약 656만 평)를 투자유치 대상지역으로 한 기본협약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마침내 성사시켰다. 그러나 매국 문서와 같은 이 협약은 중대한 여러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즉각 파기
되어야 할 것이다./펌
무의도 입구에는 영어와 한글의 이런 글들이 여러개 있다.
귀가 길에 들른 인천 국제공항
햐! 국제공항이라 별스런 차도 있네요.
인천 국제공항 정부청사와 공항공사 청사인 쌍둥이 빌딩
-여행후기-
여행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떠남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여행은 그래서 좋다
접하지 않은 것을 만나는 일도 좋고
접한 인연을 따라 가는 길도 좋다.
접하지 않는 곳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좋고
접한 인연을 따라 여행하면 친구를 만나서 정을 나눌 수 있어 좋다.
여행은 혼자라도 좋고
여행은 둘이서도 좋다.
그저
삶의 군더더기 많은 일상에서
잠시라도 비켜 나 보는 일이 즐거워서
언제나 떠날 채비를 한다.
그래서 내 삶은
언제나 여행하는 마음으로 산다.
오늘도 꿈 꾸며 산다.
고등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실미도 사건이 있었는데 그동안 몇 글자로 역사속에 묻혀졌다가
최근 영화 "실미도" 에서 재조명된 현장이라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터에
시간을 내어 무의도 호룡곡산과 국사봉을 등산하고 실미도를 구경하게 되었다.
실미도 사건이란
북파목적으로 창설되었다는 실미도 특수부대의 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였다 고한다. 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684부대' 라고 불렀다.
특수부대 창설은 68년 김신조가 이끄는 북한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1·21사태에서 비롯되는데 이 사건에 분노한 박정희가 그 보복 조치로 실미도 부대를 만들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며 부대 인원도 김신조 특공대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되었고 훈련요원과
동일한 수의 기간요원들이 있었다. 모든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대장과 직접 교육병들을 담당하고
같이 행동하는 소대장, 통신병, 의무병, 보급병 등이 있었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조범)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실미도 특수부대가 창설된지 3년 4개월만에 북파지연과 월급/대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실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0 km 떨어진 무의도 옆 무인도.
중앙정보부가 당시 북파 특수부대를 훈련시킬 최적의 장소로 이곳을 지적했다.
그들은 3년4개월동안 체포되면 죽는다는 교육으로 조국 통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고,
북한 침투훈련을 위해 위성사진을 본따 북한 지형의 모형(사판)을 만들어 훈련했다.
독도법 호신술 산악훈련 폭파기술 등을 배웠으며 기간요원과 훈련병 모두 처음에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신조부대를 능가해야 한다는 각오로 산악구보를 하더라도 그들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렸다. 훈련중에 동료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기량은 최고에 달했다. 목숨을 건 훈련 3개월만에 목표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그들의 사격실력은 백발 백중이었다.
훈련요원과 기간요원이 함께 먹고 자면서 똑같이 생활했다.
당초에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면서 상부로부터 보급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실미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전명령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참아온 석달. 그러나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한침 투 명령이 떨어졌다가 전격 취소되고
만다. 그이후 지옥같은 훈련을 3년이나 견디어 내면서 작전 명령을 기다려 왔지만 그들에게 단한번도
북파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실미도 난동사건 그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실미도 밖의 상황은 남북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은 684 부대를 만든 장본인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문제는 계속 미루어진다.
국제 데탕트의 영향(미 중의 핑퐁외교등...)을 받아 남북한 역시 대화노선으로 나간다.
이후락은 마침내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고 남북회담으로 이어진다.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한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끔찍한 최후의 날인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 탈출을 위한 훈련병들의 행동개시와 함께 실미도는 삽시간에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특수훈련을 받은 훈련병들이 일당백의 기량으로 기간병을 습격한다.
24명의 기간요원중 교육대장이던 준위등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피하려다 익사 하였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경비병 5명과 김방일 소대장등 모두 6명.
그리고 훈련병들은 무의도에 들어가 배를 타고 낮 12시 30분경 3년 4개월간 갇혀 있던 실미도를 빠져 나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다. 12시 53분 송도외곽에서 탈취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을 벌이고, 그들이 타고가던 버스의 바퀴가 펑크나자 마주오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한다.
오후 2시 15분경 운전기사가 탈출하자 실미도 훈련병이 직접 차를 몬다. 대방동 로터리 유한양행앞에서 그들이 몰던 버스가
가로수에 받혀 멈춘다. 그리고는 수류탄 자폭으로 최후를 맞는다.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이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발생 3일후 당시 국방장관이 전격 사표를 냄으로써 이사건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종결된다.
경향신문 "클릭 이사람" 에서 펌
따가운 가을햇살을 받으며 큰무리 선착장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샘꾸미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호룡곡산을 먼저 오른 후 국사봉을 넘어 하나개 해변과 실미 해변을 볼 생각으로 그런 코스를
선택했다.
마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무의도에 사시며 농사 하시거나 어업에 종사하시는 어른들의 푸념도 들었고
호룡곡과 국사봉을 오르 내리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인사를 나누는 향기로운 산행이었다.
그리고
하나개 해변의 고운 모래와 영화 천국의 계단 촬영 셋트장을 볼 수 있었고
실미 해변에서는 반공 이데오르기의 산물인 실미도 사건의 현장을 가까이 볼 수 있어 흥미로왔다.
무의도 여행의 맛은
영종대교로 바다를 건너 영종도와 용유도를 지나 잠진도까지 가서 무의도 건너는 배를 타는데
잠진도에서 배를 타고 돌아서니 내려야 한단다.
사실
옛 그대로라면 육지에서 바다건너 영종도 다시 신불도 지나 용유도 그리고 잠진도에서 무의도
참 쉬운 여행길이 아니나 지금은 육지에서 잠진도까지 차로 이동하면 너무 쉽다.
무의도는 굳이 승용차를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
마을 버스가 수시로 운행을 하거나 전화를 하면 언제든지 마을버스가 이동하니
좁은 섬 그리고 좁은 도로에서 도시의 승용차가 넘치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여행의 참맛은 걸으며 보고 듣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야 하는데 이상하리 만치 승용차를 타고
위험하게 과속하며 과시하는 행동들이 안타까웠다.
언제쯤
우리는 정신을 차려 낭비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될까 생각하며
꿈에 그리던 무의도 여행을 마친다.
대중교통 이용 :
- 서울에서 전철 1호선 타고 동인천역 출발 306번 버스(경유: 인천공항)로 을왕리행 버스를타고 무의도입구에서 하차, 약 10분쯤 걸어오시면 됩니다. - 서울은 지하철 5호선 타고 김포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 전철로 환승하여 오셔서
( 잠진도 배표 왕복 2,000원 : 매시간 4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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