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대구+경북 여행

(경북 문경) 문경새재(聞慶.조령.鳥嶺)

문경새재(聞慶.조령.鳥嶺)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해발고도 642m. 새재 또는 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이화령(梨花嶺) 북쪽 약 7km 지점, 주흘산(主屹山: 1,106m)과 조령산(1,026m)의 사이에 있다.      

 

문경읍내에 세워진 이정표 

 

시내에서 문경새재 진입하는 문 

 

 문경새재 입구 선비의 상

 

문경새재 박물관 

 

옛부터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서는

험준한 백두대간을 반드시 넘어야 했다.

그러나 김천지역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옆처럼 떨어지고

영주지역의 죽령을 넘으면 쭈 ~ 욱  미끄러진다고 하여

글로서 경사를 볼 수 있다고 하는 문경(聞慶 )을 선호했다.

 

 

 

제1관문 주흘관 앞에 서 있는 장승들 

 

제 1 관문 주흘관의 전경 

 

 

 

 

 

주흘관 안쪽의 현판 영남 제 1 관

관찰사들의 선정비 

KBS 촬영장 

뒤에 보인 산이 조령산 그 아래 KBS촬영장이 자리하고 있다.

 

태조 왕건에서 왕건의 본가 

왕건의 부속건물 

 

 

혜국사 오르는 길

 

숨어있는 폭포 

 

 

 

 

 

 

 

 

 

 

 

 

 

 

 

 

 

 

 

 

 

태조 왕건에서 궁예 최후의 촬영지 용담

 

용담 바위 주변의 고드름  

 

 

 

 

 

꾸구리 바위

과거길의 소원 성취탑 

 

 

 

얼어있는 수로에 물을 내려 물레방아를 돌리고. 

제 2 관문 조곡관 가기 전 조곡폭포 

 

 

 

 

 

 

 

 

 

 

 

 

 

 

새재는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 이런 흙길이어 걷는 맛도 일품이다. 

 

 

어느 선비가 비를 피하러 굴에 들었더니 어여쁜 처녀도 비를 피하고 있어 둘이는 인연을 맺고...... 

바위굴은 이렇게 막아있었다. 

 

 

 

임진란때 신립장군의 제 2진터 

ㅋㅋㅋ 기상청 신입사원들의 극기훈련-앞서 가는 나를 돌아 합류하는 기합을 받고 있다. 

 

 

일제때 송진을 받아 일본군의 연료로 이용했던 흔적 

 

 

 

문경새재 책바위 

 

제 3관문 조령관(좌측은 경상북도 우측은 충청북도) 

 

충청북도 수안보쪽에서 본 조령관 

 

 

 

 

아내에게 조령 약수를 떠다 선물했다. 

 

 

조령에서 푸른 창공을 솟아오르는 비행기는 내 마음이었다.  

김시습이 조령을 넘으며 남긴 詩 

 

 

어느덧 해는 지고 새재 입구 유락지에는 관광객들의 노랫소리가 넘치고 있었다.

 

- 여행후기 -

 

모처럼 3일간의 연휴를 맞아 동해안으로 여행을 하려다 진즉부터 가 보고 싶은 문경새재로

변경하고 베낭을 꾸려 혼자 집을 나섰다.

 

3월 12일 월요일 아침

인천 버스터미널 8시 25분 시외버스 타고 영동고속도로 여주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이용

11시 30분경 문경새재 터미널 도착

새재 가는 시내버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슈퍼마켓에서 쵸코렛과 비스켓 그리고 약간의 주류를 준비

월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별로 없는 주흘관에 도착했다.

 

주흘관(12:30).

중국의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에 비하면 우리나라 어느 성곽도 높이나 위용면에서는 초라하다고

생각했으나 주흘관 역시 낮으막한 성곽과 문루였다.

그 당시는 활이나 칼로 싸웠기에 높게 성을 쌓아도 큰 효과가 없었겠지만

적에게 심리적 위협을 줄 수 있는 위용도 필요했을 터인데......

 

주흘관에서 조령관까지 6.5km 걸어서 약 2시간 30분 왕복 13km 약 4시간 소요

문경새재는 연인이나 가족끼리 산보겸 여행을 떠나도 손색이 없을 뿐 더러

KBS 촬영지도 있어 흥미를 더 하고 부드러운 흙길이라 정말 멋진 트레킹 코스이다.

 

나는 일부러 옛 과거길인 산길을 많이 걸었으며 중간 중간에

옛 선비들이 남긴 詩碑들이 있어 옛 사람들의 삶과 과거시험 치루러 가던 그 분들의 감정,

군데 군데 유적지와 멋진 경관들이 있어 옛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것 뿐이랴!

새재를 넘어 부는 아직 차가운 바람에 솔향이 베어 답답했던 가슴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그 향기에 묻혀 그 곳에 머무르고 싶었고 그래서 혼자 걷기는 너무 쓸쓸했다.

 

조령관에 도착(15:50)

 

여기는 경상도땅  저너머는 충청도땅

빗방울 동무하여 내리다 

어떤 놈은 경상도땅 어느 놈은 충청도땅

낙동강으로

한강으로 흘러

영영

이별 하는 조령 몰랑의 아픔.

 

몰랑은 늘 아무도 없다.

오직

바람과 나의 숨소리

여기에 술이 없다면 무슨 맛으로 여행을 하랴. 

긴장은 풀리고

준비한 술 한 병을 마셨더니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어

내려오던

이십 리 골짜기가 시끄러웠다.

 

산속은 어둠이 쉬 찾아오지......

어느새

골짜기 해는 지고 술 기운 떨어지니 저 앞에 주흘관이 어서 오라 반긴다.

아직

봄이 이르니 초목들이 말라 운치가 덜 하겠지만 흙길을 걷고 때론 과거보러 가던 옛길을

일부러 찾아 걷고 교귀정의 아름다운 풍경과 용추, 용담폭포의 시원함들이

충분히 문경새재의 진미를 맛 보았다.

4, 5월 봄이나 가을에 이곳에 오면 이곳에 살겠다고 귀가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17:50

왕복 4시간 코스를 쉬엄 쉬엄 구경하며 걷다보니 5시간이 걸렸구나.

이곳 저곳 식당에서는 관광객들의 노래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여행객의 해질 녘은 아픔이지...... 

객지,

오라는 곳 없어도 갈 곳은 많아 

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여야 했다.

 

문경새재에서

 

 

左 조령 右 주흘

그 사이 막아선 주흘관이

나그네 발 길을 시비하네

 

새재 넘는 삼월초 산바람

아직 차건만

그윽한 솔향있어 낯설지 아니하다.

 

흰 머리칼 날리며

옛길 걸으니 

지나온 삶 회한 많아 

어지러운 마음  

달래려 술 한 잔 마셨더니

 

두 다리가 힘들다고

투덜 투덜

말 듣지 않는구나.

 

어화, 님이여!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얼로 가고

물은 예서 시작하나

어디론가 흐름을 굳이 알려 하지 말고

남은 술이나 비우고 가세나.

 

문경관문(聞慶關門)】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上草里) 소백산맥 조령(鳥嶺)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문.

사적 제147호. 제1ㆍ제2ㆍ제3관문 및 부속성벽이다.

옛날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려면 문경에서 주흘산(主屹山: 1,106m)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라 때는 주흘산의 한 갈래인 대촉산(黛蜀山)을 넘어 계립령(鷄立嶺)으로 다녔고

조선 전기부터는 조령이 개척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위시설을 축조해야 한다는 논의를 낳았다.

 

관문이 건립되기는 임진왜란 이후이다.

 임란 당시(1592)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4천여 기를 거느리고 이곳에 포진했다가 스스로 물러나 충주 단월역(丹月驛)에서 왜병에 대패했다.

 

이듬해인 선조26년, 이곳에서 왜병을 물리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영의정 유성룡의 제안에 따라 현지 실측(實測)이 시행되고, 1594년(선조 27)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충주 사람 신충원(辛忠元)이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을 건립했다. 그가 이루어놓은 첫 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숙종 34년(1708) 조곡관을 크게 중창하고 3km 아래에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 3.5km 위의 고개 정상에 제3관문조령관(鳥嶺關)을 각각 세웠다.

 

 중성은 1708년(숙종 34) 크게 중창(重創)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의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主屹關)이라 하였다. 이들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육축(陸築)에는 홍예문(紅霓門)을 열고, 성벽에는 총구멍이 있는 성가퀴를 돌리고, 한쪽에 큼직한 수구문(水口門)을 뚫었다. 숙종 때 조령 재 위에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조령산성(鳥嶺山城)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위치한다.

제3관문은 육축만 남겨 놓은 채 불타버려 1977년 복원하였다.

 

  제1ㆍ제2ㆍ제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높은 봉우리 6분선(分線)에서 끝났다가 다음 골짜기에서 다시 이어져 초곡ㆍ중성ㆍ조령산성의 성벽을 이룬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鎭)과 군창(軍倉)의 터가 있고,

경상감사(慶尙監司) 신임ㆍ후임자가 서로 교인(交印)했다는 교구정(交龜亭)의 터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