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팀원들과 마니산 가을 산행기
조석으로 바바리 깃을 세우고 낙엽 날리는 호젓한 오솔길을 좋은 사람들과 걷고 싶은 계절에
다름 아니라
우리 반의 동료간 화목을 돈독히 하고 이 가을 고운 추억을 만들고저 김포 들녘을 지나 시원한 바닷길을 달려 단군님이 천제를 올렸다는 마니산=(마리산469m))으로 아래와 같이 가을 산행을 할까 합니다.
- 아래 -
1. 일시 : 2006.10.30/월요일 09:00~17:00 2. 장소 : 강화도 마니산 종주(화도매표소-단군 산행로-참성단-정상-암릉-정수사) 3. 회비 : 일만원 (입장료/점심/주류및 삼겹구이) 4. 복장 : 가벼운 차림 (필히 운동화 또는 등산화) 5. 모이는 장소 : 동암역-09:00 가좌동-09:20 가정.5 -09:30 공촌.4 -09:40
* 참고 사항: 1. 산행 후 동막 해수욕장에서 삽겹구이+소주 2. 간단한 과일.사탕 및 음료수 개인지참 3. 찬조금으로 화려한 뒷풀이 준비 되었슴.
2006.10.30. 09:00 동암역 출발- 가좌동-가정 5거리-공촌 4거리
09:40 동암역에서 부터 가정 5거리까지 11명 모두 정시에 탑승을 하고 공촌 4거리에서 용유도와 영종도에서 오는 오성산 고라니 Moon & 백운산 여우 Park을 태우고 드디어 우리 일행 13명은 맑은 가을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영종대교 아랫길을 이용하여 상쾌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강화도로 향했다.
철마산에서 본 영종 대교와 강화 마니산
시골 담장 안 감나무들은 아침 햇살에 젖은 잎들이 빨갛게 빛나고 서리맞은 감들은 옹기종기 모여 어디로, 어떻게 될것인지 불확실한 미래에 머리를 맞대고 수군대고 있었다.
초지대교를 지나며 조선말 외압에 맞서 싸운 선조들을 기억하고 온수리를 지나 마니산 입구에 도착하니 왠일인가! 월요일인데도 등산인파로 붐볐다.
10:30
행여 우리도 뒤질세라 준비한 도시락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와 약간의 술을 베냥에 나눠 담고 입장료 1,500원씩 내고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서 10여분 후 등산로는 계단로 와 단군로 두개로 나누어진다.
1. 상방리매표소-마니산 기도원-918개 계단-참성단-마니산 -암릉구간- 정수사.(약 4~5시간 소요) 2. 상방리매표소-휴게소-314m봉-381계단-참성단-마니산-암릉구간-함허동천 (약 3.5시간 소요)
우리는 단군로를 택했다. 그러나 마니산은 호락 호락한 산이 아니다. 단군로 초입부터 오르막 길이어서 숨소리들이 거칠어지며 앞서던 사람들이 뒤쳐지기 시작했고
성주산 청솔모, 원족산 다람쥐, 지리산 산토끼, 백운산 여우, 문학산 제비
마니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적당한 높이의 아주 야무진 산이다. 또한 출근길에 우리를 지켜보며 힘 내라고 멀리서 용기를 북돋아 주며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길은 수고했다고 담담히 미소를 보내는 우리와 인연이 있는 산이다.
(원적산 다람쥐, 약산 심뚝심, 천마산 복실이, 계양산 늑대)ㅋㅋㅋ
참성단 -이색-
11:30
후발대가 아직 314봉에도 못가고 있는데 선발대 오성산 고라니 Moon과 베트남 타잔 Jeong은 참성단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뒤쳐진 사람들은 쉬엄 쉬엄 올라오던지 아니면 중간에 점심도 굶고(야속!) 기다리고 있어라 하고 나머지는 선발대와 참성단에 올라 합류하기로 했다.
(공포의 381계단)
314봉에서 바라본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의 지붕이 햇빛에 빛나고 바다에는 신도, 시도, 장봉도, 불음도, 석모도가 푸른 바다위에 점, 점, 점으로 떠 있다.
참성단 오르는 마지막 코스 381계단이다. 계단을 세어가며 오르다 전화가 와 잊어버리기도 하여 다시 세는 사람도 있고 우리의 문학산 제비 모종운씨가 계단을 끝까지 세면서 올라왔는데 370 계단 이란다. 그러나 계단 맨 마지막에는 381계단이라고 누가 써 놓았는데 이걸 어쩌랴! 370계단이 맞는지 381계단이 맞는지......
12:20
(헬기장에서 찍은 참성단 )
우리민족의 국조 단군님이 천제를 올리시던 곳 백두산 천지에서 한라산 백록담까지 딱 중간에 위치하여 있고 우리나라에서 氣가 제일 세다는 곳.
드디어 우리는 뒤쳐진 2명과 함께 올라오는 심뚝심을 제외한 10명은 참성단에 올랐다. 그러나 아쉽게도 참성단은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를 쳐 들어가지 못하고 건너편 헬기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적 제136호. 1964년 지정.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내려 온다. 면적은 5,593m2이며, 상단 방형(方形) 1변의 길이는 1.98m, 하단원형의 지름은 4.5m. 자연의 산석(山石)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 자연석들에 의지하여 둥글게 쌓은 하원단(下圓壇)과 네모 반듯하게 쌓은 상방단(上方壇)의 이중으로 구성하고, 상방단 동쪽면에는 21계단의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는데,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했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마니산이 그만큼 정결하며 장엄하고 뛰어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강도(江都:江華)는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로 되어 있고 문물이 발달하였으며, 마니(摩利)·혈구(穴口) 등 하늘과의 인연이 깊다고 예로부터 일러 왔다. 또 개국신화(開國神話)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桓雄)의 권속이므로 결국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 지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방(方)과 원(圓)은 천지의 의형(擬形)이며 조화가 모두 거기서 일어나는 것으로 옛날 사상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참성단의 원과 방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에 두고 설치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늘은 둥그렇기에 재단 바닥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로 제단을 나타냈다 함.
장정 8000명을 동원하여 강화도 정족산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마니산에 하늘에 제사지낼 참성단을 쌓게 하였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13:00
핸드폰이 울렸다. 뒤쳐진 3명은 참성단 오름을 포기할것으로 생각했는데 381계단을 오르고 있단다. 아마 뒤쳐지면 도시락도 못 먹는다고 했더니 이를 악물었는 모양이다. 우리는 환호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자 박수를 치며 격려와 축하를 했다. 참성단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개별 사진들을 촬영하고
(앞줄 왼쪽 : 정BM, 강BS, 김KH, 박JS, 김YN, 김JS) (뒷줄 왼쪽 : 유JW, 김CS, 한SH, 모JW, 문SJ, 구NH, 심HS)
나무그늘을 찾아 그렇게 기다리던 도시락을 열었다. 내가 준비한 김밥과 노란 단무지 그리고 붉은 방울 토마토가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는 도시락! 거기에다 영종도 백운산 여우가 가져온 쑥술을 곁들였더니 도시락 맛은 Excellent! 기분은 가히 Fantastic!
(5 공주 좌 부터 강BS, 김YN, 김KH, 박JS, 김JS)
13:30
마니산 입구에 주차해 놓은 승합차를 함허동천으로 옮기기 위해 심뚝심과 종주가 어려운 동료 3명은 다시 계단로로 해서 마니산 입구로 내려가 함허동천으로 오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마니산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참성단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암릉지대라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데
(당신은 누구? 뒷 봉우리가 마니산 정상 469m)
바위틈에 참성단 중수비(바위면의 네모)가 숨어 있었다. 만일 안내판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날 뻔 했다.
숙종 43(정유, 1717)년에 강화유수 최석항이 참성단 중수 기록을 남긴 비문
참성단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정수사로 가는 길은 암릉지대이지만 특별히 정수사로 내려가는 길은 험난하고 위험한 암릉지대이다. 그러나 최근에 로프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조심스럽지만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허나 곳곳에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방심을 해선 안된다.
정상으로 가는 암릉지대
(바위위에 모진 바람을 견뎌낸 소나무와 같이 우리도 그러하리라.)
정상에 오른 우리 9명은 서해를 바라보며 마음껏 야~호 를 길게 소리쳤더니 삶의 터전에서 알게 모르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릴 수 있어 속이 후련했다. 정상 한 모퉁이에 가을의 꽃 구절초가 우리를 영접한다.
구절초
그대 국화처럼 화려하지 못하나 향그럽고
그대 코스모스처럼 요염하지 못하나 정숙한 여인.
연약한 줄기로 구부정한 허리 받치고 머리엔 하얀 미사보 얼굴엔 노란 웃음 듬뿍 머금고
영롱한 눈빛 얼굴엔 풍파 깊은 세월의 흔적.
살아있는 것들은 찬 서리에 힘없이 스러지는데
당당히 언덕 비탈 나지막히 서서 두 손 모아 여린 입술로 올리는 감사의 기도
다가올 찬 바람에 어깨 움추리는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그대는 Mother Teresa.
하산로는 처음 계획은 정상에서 정수사 길로 하산하려 했으나 정수사 길은 워낙 암릉지대가 위험하고 나이 드신 분들의 다리가 후들거려 우리는 어쩔수 없이 하산하기 수월한 함허동천 길을 택했다.
▲정상의 이정표
(정수사 가는 암릉 지대)
(저 멀리 초지대교가 희미하게 보이네!)
함허동천으로 하산하는 길은 암릉은 없지만 가파르고 가뭄으로 인해 먼지가 심했다. 중부 이북지방은 가을 비가 더 내려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마니산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마니산에 온다는 전갈도 못했는데 어찌 알고 밤 새 곱게 화장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함허동천 내려가는 길에 넋을 잃고 억새와 단풍에 젖어있는 여심(J.S.Kim)
(멀리 영종대교도 눈에 잡히고...)
15:00
우리는 함허동천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함허동천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己和)가 마니산(摩尼山:469.4m) 정수사(精修寺)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堂號)인 함허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물 내리는 함허동천 계곡)
계곡은 약 200m의 암반이 펼쳐저 있어 물이 내릴 때면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러나 함허동천 계곡은 메말라 물은 내리지 않았다.
마니산 입구로 내려간 동료들도 함허동천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고 우리는 넓은 곳에 자리를 잡고 철판 3개에 두껍게 썰은 삼겹살을 굽고 마늘 청양고추를 쌈장에 찍고 묵은 배추김치를 누렇게 익은 삼겹살 기름에 익혀 상추쌈을 하여 마시는 소주맛은 술이 아니라 보약이었다. 더구나 미끄러지며 헉헉대며 마니산을 넘다보니 허기짐과 목마름에 삼겹살의 고소한 맛은 일품이었고 취기가 있으면 당연히 여흥도 뒤따르고......
그런데 뒷풀이를 전국적으로 유명한 강화 갯펄장어 구이로 하려는데 다들 배 부르고 술도 어지간하여 반기는 기색이 아니라 일단 인천 시내로 돌아가기로 했다.
(함허동천에서 본 마니산 단풍)
16:45~18:00
함허동천을 출발 시내에 들어오는 차 안에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며 흥에 취했으나 오랫만의 산행으로 다들 피곤하여 더 이상 즐겼다가는 내일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휘향찬란한 동암 먹자골목에서 다시 한 번 우정과 단합을 과시하고 우리는 마니산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산행 후기
특별히 승합차를 준비하시고 운전까지 직접하여 주신 심형께 감사드리고 적잖은 찬조금을 내 주신 정형,구형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같이 하지 못한 동료들은 다음에는 함께 하기를 바라며, 마니산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적극 협조하여 주신 여러분 정말 고맙고 즐거웠던 오늘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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