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블라나 세마춤
터키 이슬람을 이해하는 코드 수피즘
코냐의 푸른 지붕의 이슬람 사원에서
요즘은 무엇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을 코드라 한다.
터키의 이슬람을 이해하는 코드는 ‘수피즘’이다.
터키의 수피즘을 이해하면 터키의 이슬람이 보인다는 뜻이다.
이슬람은 사도 모하메드가 610년부터 히라 동굴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아 포교 활동을 시작하여 점차 아라비아 반도 전체로 전파되게 된 종교이다.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정통 순니파와 함께, 이단적 요소를 가진 수피주의자들이 있었다.
수피주의자들은 정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을 통해서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과도한 형식에 반대하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신과의 합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수피주의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신과의 완전한 결합이었으며, 이 같은 수피주의자들의 시조를 수피즘이라 한다.
수피주의자들은 신과의 완전한 합일을 위한 수단으로 춤과 노래로 구성된 의식을 갖고 있다.
터키 민족이 이슬람을 접하게 된 것은 대략 8-9세기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진입하였을 때 이미 이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이슬람과의 접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오스만 제국의 이전 셀주크 제국 때부터 수피 집단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었다.
터키 민족은 이슬람을 만나 이를 받아들인 후에도 그들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신앙 체계를 유지하여 나갔다. 따라서 아나톨리아에는 정통 순니파와 이단 수피주의자들이 각 지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아나톨리아에서 활동하던 수피주의자들에게 아나톨리아에 유입해 온 터키족은 좋은 포교 대상이었다.
수피주의 지도자를 데르비쉬 또는 쉐이흐라고 불렀는데, 터키 유목민들은 정통 순니파 지도자의 설교보다는 이단 수피지도자의 설교에 정서적으로 더 끌렸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교리를 담은 코란을 이해할 수 있는 아랍어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유목민의 성격상 원리적인 학습은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피주의자들이 주도한 춤이나 노래 같은 의식은 터키 유목 민족을 끌어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통 순니파에서 볼 때는 노래나 춤은 있을 수 없는 아주 사악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 수피중의자들의 교세는 점차 거세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초기에 오스만 조정이 영토를 확장하는 데 아나톨리아 내 수피집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지방에 산재한 수피 지도자들은 중앙의 조정에 대해 정치력을 행사하였다.
수피 지도자들은 영토를 지켜주고 전투 시 병사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술탄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에는 지방에 있던 수피 지도자들이 이스탄불로 입성하였다.
이때부터 이단 종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하였다. 바이라미, 벡타쉬, 할베티, 카디리, 메블라나, 낙시벤디 등 많은 이단 종파가 생겼는데, 1840년대 오스만 제국 전역에 37개의 종파가 활동하였다.
수피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된 이단 이슬람 종파의 신앙과 그들의 의식은 오늘날 터키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수피즘과 그들의 가르침은 시, 문학, 음악, 서예, 건축 등 다방면에 반영되었다.
15-16세기에 수피주의자들에 끌린 지식인들이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서예, 시, 건축, 음악 등의 발전은 메블라나나 벡사쉬 종파의 기여를 간과할 수 없다.
수피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는 오늘날 아랍풍의 터키 노래에 가사로 사용되고 있다. 1970년 나타난 터키와 아랍식이 혼합된 아랍풍의 터키 노래는 사랑, 운명, 고통 등이 주된 내용이다.
수피즘의 영향을 받은 아랍풍의 터키 노래는 농촌이나 소도시의 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수피주의자들의 의식 중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은 메블라나 종파의 의식이다.
메블라나 종파의 의식이란 세마(하늘)라 불리는 춤을 말한다. 메블라나 춤 의식은 메블라나 종파의 창시자인 메블라나 제랄레딘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12월 터키의 중부 도시 콘야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 춤은 터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다.
춤추는 사람들은 왼쪽 발로 중심을 잡고 원을 그리면서 계속 돌기 때문에 그들을 보통 ‘도는 데르비쉬’라고 부른다.
메블라나는 1207년 우주 존재 사랑 등을 주제로 한 많은 시를 남겼는데, “우리가 죽을 때 이 땅에서 무덤을 찾지 말고 인간의 마음에서 찾자”라는 시구는 유명하다.
메블라나는 신비주의자, 시인이자 철학가로서 그의 시상은 현재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춤추는 데르비쉬들의 모든 동작은 의미와 상징을 갖고 있다. 팔을 양쪽으로 벌리는 것은 영적인 합일을 위해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하고 왼쪽 손바닥을 아래로 펴되, 왼쪽 손은 오른쪽 것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
이 동작의 의미는 신에 대한 사모는 물론 세상 속에서 데르비쉬들의 믿음을 뜻한다. 원통형 모자를 쓰고 흰 옷을 입은 데르비쉬들은 신을 찬미하는 시와 율동이 어우러진 가운데 빙글빙글 돌며 세마 춤을 춘다.
메블라나 종파는 모든 사람은 다 형제이며 신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므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사랑 가운데 미덕과 선행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메블라나 종파는 종교적인 면보다는 그 종파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문화적 가치가 강조되어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해오면서 사회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알레비 종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특성이 강조되어 정통 순니파들에 의해 이단적인
시, 음악, 춤을 동반한 알레비들의 의식은 부도덕한 것이라고 질시받고 있다. 알레비는 이슬람 선지자의 사위인 알리를 추종하는 종파로 그들의 신앙은 불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샤머니즘 등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다.
알레비 종파의 지도자를 할아버지라는 뜻의 ‘Dede’라고 하는데, 이들 Dede는 알레비 파가 많이 살고 있는 시와스, 토카트, 툰젤리, 에르진잔, 초룸, 아마시야, 오르두 등 동부 및 흑해 지역에서 정신적인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알레비 파의 세속적인 성향으로 그들은 공화국 초기에 세속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하려는 아타튀르크의 정책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주로 농촌 및 소도시에서 살던 알레비들이 1970년대 이후 큰 도시로 이주하면서 이들의 종교관이 터키 사회에 다시 부각되게 되었다.
순니 무슬림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터키 인구의 15-20%를 점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도 일어나고 있다.
이슬람의 신비주의는 이슬람의 신비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나톨리아에서 활동한 수피주의자들은 유목 민족인 터키족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중개 역할을 함으로써 터키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생각하면 터키 사람들은 수피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터키의 이슬람은 더 관용적인 면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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