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터 천주교 대성당에 들어서며
성전 내부 사진을 담으려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 두 손을 모우고 기도를 올렸다.
무슨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만,
천주교 신자도 아니며 천주교 성당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릴만한 자격도 없고,
준비된 기도도 없었지만
얼마전 암 판정을 받은 아내가 곧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서투른 기도를 올렸다.
어쩌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는가 보다.
새남터 대성전을 나서
지하에 있는 천주교순교성지 새남터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순교성지 새남터
새남터는 한양성 밖 한강변의 노들 나루터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얕은 모래언덕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과 국사범과 같은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성삼문 등 사육신(1456)과 남이 장군(1468)이 처형되기도 했던 곳인데 조선 후기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성직자들이나 지도층 신자들의 처형지로 이용되었다.
신유박해(辛酉迫害)때인 1801년 5월 31일 주문모 신부가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여 이곳의 첫 순교자가 되었고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는 제 2대 조선교구장 앵버르 주교, 모방신부, 샤스탕 신부가 순교하였고,
1846년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도리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푸르티에 신부
그리고 정의배 회장과 우세영이 모두 군문효수로 순교하였다.
이 가운데 11명이 1984년 5월 6일 성인으로 시성 선포되어 새남터는 중요한 순교성지로 "영광의 땅" 이 되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 또한 2002년 하느님의 종 증거자료로 선정되어 시복시성 대상자로 인준을 받았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헌양회의 노력으로 1960년 한국 천주교 순교 사적지로 지정된 후
1956년 7월 8일 "가톨릭 순교 성지" 라는 순교자 헌양비가 세워지고,
1967년부터 한국순교복자 성직 수도회가 이 사적지를 관리해 오고 있다.
서울 대교구에서는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새남터 본당을 설립하였고,
1987년 9월 12일
한국순교복자 성직 수도회가 한국 전통양식으로 기념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순교성지 새남터 성당에서는 2006년 9월 3일 지하 전시관을 개관하고
새남터에서 순교환 9위와 타지역에서 순교한 5위의 성인유해를 모시고 있다.
뮈텔주교의 사목목표 '순교자들의 곷을 피워라' 를 중심으로
김대건 신부와 12명 빠리외방전교회 주교님과 신부님
(1925년 시복식 동판화)
기념전시관 풍경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와
100여 년 동안(신해박해부터 한불수호통상조약까지)은 박해시대라고
말할 정도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었다.
순교자 약 1만명 중 교회법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성인에 오른 이가 103위이다.
1925년에 시복된 한국의 복자 위에 오른 24위는 1866년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이다.
한국천주교 창설 200주년 기념행사로 1984년 5월 6일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천주교 순교자 103위가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시험 답안
주문모 신부의 순교기록
상복(喪服)
조선 천주교 박해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밀입국할 때와 선교활동을 할 때
입고 다녔던 상복이다.
조선 관습상 상복을 입은 사람에게는 말을 붙이지 않기 때문에 서양인의 신분을 감출수 있는 가장 좋은
차림새였다.
1836년 최초로 입국한 모방신부를 비롯하여 그 후 신앙의 자유를 얻은 1887년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서양 성직자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입고 다녔던 복장이다.
순교의 열매
한국교회는 103위의 성인을 모시고 있다.
103위 중 79위는 1925년에 그리고 24위는 1968년 시복(諡福) 된 후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에 즈음하여 방한한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5월 6일 모두 시성(諡聖)됨으로써
성인품(聖人品)에 올랐다.
한국성인의 축일은 9월 20일이고, 축일의 명칭은 '성 안들아 김대건과 바오로 장하성과 동료 순교자' 이다.
103명의 성인 중에는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 10명의 선교사(3명의 주교와 7명의 신부)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국적이 비록 프랑스일지라도 그들은 한국의 선교사로서,
한국인의 구원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으므로 그들 역시 당연히 한국 교회에 속하는 성인들이다.
한국성인 93명 중 성직자는 유일하게 김대건 신부뿐이고 나머지 92명은 모두 평신도이다.
그러므로 한국성인의 교회활동과 순교는 그 자체가 한국 교회 평신도상이요
평신도적 영성(靈性)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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