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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수원) 화성의 봄날 : 팔달문 ~ 동장대

 

 

언제 : 2023년 5월 7일 일요일

어디 : 수원 화성 (팔달문~동장대)

 

 

일요일,

아내와 아들 내외와 손자 승우는 교회에 가고

 오랜만에 배낭에 카메라를 담고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왕십리행 전철을 처음으로 타고 수원 화성을 다녀왔다.

 

수원 화성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며

화성 한 바퀴 걷는 것도 멋있는 여행이기에 코로나 콘테믹 이후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을 보았으며

용지와 방화수류정 근처에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포함된 가족과 연인들이 함께 즐기고 있었다.

 

나는 비록 혼자 걸었지만

 화성을 한바퀴 돌며 나들이하는 사람들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쉬는 곳에서는 이웃들과 얘기도 나누면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팔달문 

보물 제402호

 

수원 화성(水原 華城) 혹은 화성(華城)은

길이 5.52km의 성곽으로, 대한민국 사적 제3호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팔달산의 채석장에서 채굴한 벽돌로 쌓은 축성 공사에는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그것들은 충신,군사력,자금 이 세 가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서울(수도)에서는 이 세 가지 것을 모두 얻기 어려워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이 신도시가 바로 수원화성이다.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에서 걷기 시작하여 수원천을 건너

동남각루로 올랐다.

 

 

산딸나무꽃

꽃잎도 아닌 4개의 포苞조각은 암술 1개와 수술 4개로 짜인 20~30개의 꽃잎을 감싸 안고 꽃잎 행세를 한다

산형화목 층층나무과 낙엽소교목 '산딸나무 Kousa dogwood' 다.

 

 

봉돈(烽墩)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로 보통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벽돌로 만든 화성의 대표적인 벽돌 건축물로 높게 쌓은 

대(臺) 위에 횃불 구멍인 화두 다섯 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 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 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 봉수제도 : 변방에서 일어난 위급한 일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이용해 서울로 연락하는 군사통신제도

 

 

성벽을 따라

노란 야생초꽃들이 봄날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내성길을 걷다가 외성이 궁금해 바깥으로 나와 화성을 담아본다.

 

이 아름다운 화성도 가난한 민초들의 노고로 쌓았으리

비록 

정조는 효심에 의해 쌓은 성이지만,

그 옛날 민초들의 땀과 눈물이 성벽을 이룬 돌 하나하나에 베여있어 

위정자들의 처신을 생각해 본다.

 

 

 

창룡문(蒼龍門)

1795년(정조 19) 창건 - 한국전쟁 때 문루 파괴 - 1976년 복원

창룡문은 수원 화성의 동문(東門)으로

창/蒼은 푸른색을 가리키므로, '동쪽 방향을 지키는 신령한 청룡'을 상징한다.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

 

 

 

창룡문은 서울의 흥인지문(동대문)처럼

 문 밖에 반달모양의 옹성을 둘렀으며, 옹성 위에는 방어에 유리하게 여장을 쌓았다. 

 

 

 

 

성밖에서 본 창룡문 

 

성안에서 본 창룡문

 

창룡문 성벽에는 성벽 공사 책임자 이름이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때 창룡문 모습

 

 

성 안에서 본 창룡문

많은 사람이 연 날리기도 하고 성 밖에선 열기구 풍선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성벽 위에 홀연히 노란 야생화가 피어 담아 보았다.

 

 

동북노대(東北弩臺)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수리

동북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지은 시설이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동북노대에 올라

우연히 성벽 사이로 본 동북공심돈이 멋지게 보인다

 

 

동북노대에서 본 동북공심돈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1796년(정조 20) 창건 - 1976년 복원

동북공심돈은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경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으며, 보통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동북공심돈은 성벽 안쪽에 설치했다.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동북공심돈은 3층으로 이뤄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출입문에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르는 구조다. 이 모습을 빗대서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정조 21년(1797) 정월,

좌의정 채제공은 동북공심돈을 올라가 본 뒤 "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기이하고도 교묘하다' 며 감탄했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 무너졌었는데

1976년에 복원해 모습을 되찾았다.

 

 

 

 

1960년대 동북공심돈 

 

 

밖에서 본 동북공심돈

 

 

동부공심돈에서 본 화성 성벽 

가까이 동장대와 멀리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가 조망되며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동장대(東將臺)

1795년 창건 - 1976년 주변 부속건물 복원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練武臺)'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犒饋) 행사를 자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년 8월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동장대에 설치된 불랑기 5호(佛朗機 5號)

조선후기 대표적인 휴대용 화포로 몸체 길이 72cm, 총구멍 2.5cm

뷜랑은 프랑크(Frank)라는 유럽인을 뜻하는 말로 서양에서 만든 화포를 '불랑기'라고 하며,

몸체가 큰 1호부터 작은 5호로 구분되며

임진왜란 이후 육전은 물론 해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조선 제일의 화기로 평가된다.

 

 

 

 

 

 

 

 

 

이팝나무꽃

비 내린 뒤라 초목들이 깨끗하고 날이 좋아 향기도 좋아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다.

 

어제(토요일) 강화 둘째 딸 집에서

경기도 동탄에 사는 첫째 딸 가족과 부평에 사는 아들 가족 그리고 우리 내외 즉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이유는 

어린이날 비가 많이 내려 야외 어린이날 행사가 취소되어

오늘 개들과 고양이가 있는 둘째 딸 집 잔디 마당에서 어린이날 축하 겸 월요일 어버이날의 축하 모임을 가지며

바비큐 요리와 준비한 맛깔스러운 음식도 먹으며

손자들 재롱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