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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남 여행

(당진) 사적 제529호 : 안개에 묻힌 솔뫼성지

-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 앉아 묵상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 -

 

 

언제 :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어디 : 충청남도 당진시 솔뫼로 132 솔뫼성지

 

 

10월 말경

내포평야에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풍요로운 때 솔뫼성지를 여행하렸는데,

이제야 솔뫼성지를 찾았다.

 

06:40 

인천 종합버스터미널 출발

09:40

솔뫼 성지 도착

오늘 새벽 출발하기 전, 이곳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10시 이후엔 날이 개인 것을 확인했는데,

솔뫼 성지에 도착하니 천지가 안개에 묻혀 100m 전방이 보이지 않는다.

 

2014년 4월 6일 일요일

내가 처음으로 솔뫼성지를 방문했을 때,

2014년 8월 14일

한국을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솔뫼성지를 방문하신다는 뉴스를 접했고,

솔뫼성지와 당진시 일원에 많은 교황 방문 환영 문구와 주변 도로 확장 공사도 하더만

7년 만에 다시 찾은 솔뫼 성지는

합덕읍에서 솔뫼까지 가는 도로가 잘 정비되었고, 솔뫼 성지의 예전 성당은 김대건 신부 기념관으로,

그리고

대성전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성당을 새로 지어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변 특산품 판매장과 카페 등도 생기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 하여

순우리말로 '솔뫼" 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한 곳이다.

 

솔뫼성지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부터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비오(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그리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신앙과 삶의  지표가 싹튼 장소로, "한국의 베틀 레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이 태어나,

1836년부터는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받았으며,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 1846년 9월 16일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 솔뫼성지 입구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대건 신부 조형물 -

 

 

 

- 솔뫼성지 입구 -

솔뫼성지 입구의 두 그루 소나무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어서 오시라는 듯 첫인상이 좋다.

 

 

솔뫼성지 비(碑) 아래의 작은 글씨는 아래와 같다.

 

 

 

 

 

 

 

오늘은 김대건 신부 생가를 먼저 찾아가는 길에 본 솔밭이 안개에 덮여

아주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생가에는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생가 앞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의자에 앉아 묵상하는 동상이 있다.

 

- 솔뫼 성모상 -

 

 

 

 

- 김대건신부 생가 -

 

 

 

 

 

-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 앉으신 프란치스코 교황 -

 

 

 

- 마루에 걸린 김대건 신부 -

 

 

 

 

 

 

-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 앉으신 프란치스코 교황 -

 

 

- 측면에서 본 김대건 신부 생가 -

 

 

 

- 김대건 신부 생가 은행나무 -

 

 

 

- 김대건 신부 동상으로 가는 길 -

 

지금까지 많은 여행길에서

오늘처럼 여행지가 안개로 자욱한 적은 기억이 없다.

 

더구나

솔뫼성지의 상징인 솔밭의 장송들이 자욱한 안개에 묻혀

마치 하늘과 대지를 잇는

신령스러운 내림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는 몽환적인 풍경이나,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몰라

평소의 구도로 담아보았다.

 

 

 

 

 

 

 

 

 

 

- 솔뫼 아레나 - 원형 공연장 겸 야외 성당 -

‘아레나’라는 말은 모래 혹은 모래사장을 의미하는 뜻이고,

현대적 의미로는 원형 경기장이나 원형공연장을 뜻하는 말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동료 밀사들이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또한 12사도상(최영철 바오로, 2011년 작품)을 세움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12사도로부터 이어져왔다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회유문의 정신을 본받아

이 시대에 우리가 바로 사도가 되어야 함을 전하고자 하였다.


솔뫼 아레나에서는 음악회와 연극, 야외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좌석수만 1,200명이 앉을 수 있는 장소로 2011년 5월 14일에 봉헌되었다.

대형 행사때에는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 솔뫼 아레나 벽화 -

 

 

- 솔뫼 아레나 12사도의 상 -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 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헌부 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