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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강원 여행

오대산 상원사

 

언제 : 2021년 4월 10일 토요일

어디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08:51

진부역에서 월정사와 상원사행 버스를 타고,

월정사를 지나 얼마 정도 가니 이제 도로는 비포장도로로 버스가 울퉁불퉁 도로 사정에 따라 흔들린다.

어쩌면

우리나라 버스가 다니는 길에 이처럼 비포장도로가 또 있을까? 

하지만

바람처럼 슁슁 달리는 포장도로의 거만함에서 울퉁불퉁 흔들리며 상원사 가는 길은 겸손함을 가르친다.

 

09:45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성지 오대산 적멸보궁과 상원사는 누구나 한번쯤 다녀온 사찰일 것이다.

나는 적멸보궁을 이미 두 번이나 방문했기에

오늘은 선재길을 걷기로 한다.


 

 

 

 

 

 

 

 

 

 

 

 

 

- 상원사 가는 길 -

 

 

 

- 관대걸이 -

관대걸이

조선 초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목적으로 상원사로 오던 중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둔 곳을 기념해서 후대에 만든 표지석으로

다음가 같은 문수동자와 세조의 전설이 전해집니다.

세조가 상원사 앞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동자승을 만나 등을 밀게 하고는

"어디 가서 임금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고 신신당부를 하니

동자승은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줬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며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후 세조는 피부병이 완치되었고 그때 만난 동자승을 나무에 조각하게 하였으며

이 목각상이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 좌상(국보 제221호)입니다.

 

 

- 상원사 가는 길 -

 

 

 

- 상원사 청풍루 -

 

 

 

- 청풍루 밑을 통과하면 문수전에 오를 수 있다. -

 

청풍루 천정에는 문수보살 36화 현도가 조성되어 있다.

 

- 문수보살 36화현도 - 

 

 

청풍루 밑을 지나니

앞에는 높은 계단을 오르면 문수전과 석탑이 있다. 

 

 

 

 

 

- 문수전과 석탑 -

 

 

 

- 문수전 -

 

- 좌 : 문수동자(국보 제221호)  - 우 : 문수보살(보물 제1811호) -

 

 

- 문수동자 -

 

 

 

 

 

 

고양이와 세조

 

문수전 계단 아래쪽에는 한 쌍의 돌 고양이가 조각되어 있는데

하루는 세조가 기도하러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 하자 고양이가 나타나 세조의 옷소매를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괴이하게 여긴 세조는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진 끝에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서 세조를 죽이려는 자객을 찾아냈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 고양이를 잘 기르라는 뜻에서 묘전(猫田)을 하사했다.

그래서 예부터 상원사를 중심으로 사방 팔십 리 땅이 모두 상원사 땅이었다.




- 전각들과 봉황보당 -

 

 

 

 

 

 

- 2009년 7월의 상원사 -

2009년 7월 22일

상원사를 방문했을 때 사진 

 

사진의 맨 앞 조그만 건물이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을 보관했던 건물인데

지금은

동종은 범종각으로 모셨고 그 자리에 봉황보당이 세워져 있어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내 사진으로

역사의 한 면을 볼 수 있고 2009년 7월의 한날을 추억할 수 있어 좋다.

 

 

 

- 범종각 -

 

 

 

 

 

 

 

 

 

- 영산전 -

 

 

- 청량선원 -

청량선원(淸凉禪院)

 오대산을 다른 이름으로 청량산이라고도 하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다.

 

 

 - 평창 상원사중창권선문 (平昌上院寺重創勸善文) - 국보 제292호 -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平昌上院寺重創勸善文)

국보 제292호.

2첩(帖). 필사본.

세조가 중수의 소식을 듣고 물자를 보내면서 지은 글인 상원사 어첩(御牒)과 함께 첩장(帖裝)으로

월정사에 소장되어 전한다.

 

이들은 각각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에는 신미와 학조 등, 후자에는 세조와 왕비, 세자와 세자빈 및 거의 전국 관료들의 수결과 옥새가 찍혀 있다.

한글 번역본은 가장 오랜 필사본으로서 유명하며,

수결은 고문서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자료는 1936년 『조선사(朝鮮史)』에 부분 복제가 되었으나,

근년에 월정사에서 원본 크기로 복제하였다.

그러나 이 복제본은 매우 소홀하게 되어 원본과 차이를 보이는 곳이 있다.

 

 

- 목우당 -

 

 

 

 

- 일원각 - 

 

 

 

 

 

 

 

- 괴목으로 조각한 달마대사 -

 

 

 

 

세조는 즉위 기간 내내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만년에는 단종의 어머니이며 형수인 현덕왕후의 혼백에 시달려 아들 의경세자가 죽자

그녀의 무덤을 파헤치는 등 패륜을 범하기도 하였다.

 

또한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나서부터 피부병에 걸렸다.
전신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등 잘 낫지도 않고 견디기가 무척 힘든 병이었다.
세조는 명의와 명약으로도 효험을 보지 못하자

오대산으로 발길을 돌려 부처님께 참회기도를 올려 낫기를 발원하였다.

 

세조가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어느 날,

오대천의 맑은 물이 너무 좋아 혼자 몸을 담가 목욕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동승(童僧)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동승이 등을 밀자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그대는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하니 동승은 미소를 지으며 "대왕은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이렇듯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이다.
지금은 문수동자의 화상은 없어졌으나 목각상은 상원사 법당에 모셔져 있다.

 

세조가 당시 친견한 문수보살의 모습을 그리려고 많은 화공을 불렸으나 잘 그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 보겠다고 했다.
세조가 이러저러한 모습을 설명해 주자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 그리겠다고 설명도 듣지 않았다.
이윽고 그려온 문수 동자승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고 기쁜 마음에 "스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자

노스님은 "나는 영산회상에서 왔습니다."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결국 세조는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한 것이다. 

 

 

 

상원사에서 중대 사자암을 거쳐 적멸보궁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좀 가파르긴 해도 길이 잘 정비돼 있어 오르기 어렵진 않지만, 오늘은 선재길을 걷기 위해 오대산을 찾았고

이미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은 두 번이나 방문했기에

오늘은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