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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사적제124호) 덕수궁 봄꽃 나들이

 

덕수궁의 정문은

정전의 정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는데,

대화재로 1906년 중건공사를 하면서 정전의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그 명칭도 대한문으로 고쳐

이 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70년 고등학생 때,

지금보다 시청 광장으로 나와 있던 대한문인데 도로확장 공사로 대한문과 덕수궁 담이 지금처럼 옮겨져

궁궐의 폭이 좁아졌다.

▽ 

 

 

 

- 정관헌 -

 

정관헌(靜觀軒)

덕수궁 경내에는 서양식 건물, 양관(洋館)이 여러 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관헌이다.

다만, 다른 양관들과 달리 한국 전통 가옥의 일부 요소가 혼합된 형태이다.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 레딘 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현존하는 덕수궁 내 양관 중 가장 오래되었다.

‘정관(靜觀)’ 뜻은 '조용히(靜) 내다본다(觀)'이다.

 

건물의 용도는 확실하지 않으며 여러 의견이 있다.

그중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했던 카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식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 참고로 커피바리스타 교육의 커피학 개론에서는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가 고총에게 커피를 진상- 덕수궁 정관헌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열렸다." 배웠는데,

공식 기록에는 사실 내용이 없다니-----

 

 

 

6~70년대 학창 시절 기억으로는

전쟁 후 먹고사는 것에 힘쓰느라 정원문화는 보잘것없어 봄꽃 하면 창경궁 밤 벚꽃놀이와 

덕수궁 모란꽃이 유명했다.

 

그땐 5월 초순에 모란이 피었는데, 요즘은 4월 중순이면 모란이 핀다.

덕수궁 정관헌 앞 정원이 그곳이다.

 

 

 

 

 

- 석어당 -

석어당(昔御堂)

 궁전에 지어진 건물 중 전각을 제외한 유일한 이층 집이다.

1904년(광무 8년) 화재 후 중건하였고, 원래의 건물은 석어당은 선조 26년(1593년) 창건했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의주까지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임시로 정치를 행하였던 곳이며,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악연으로 한때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곳이다.

 

석어당은 정면 8칸, 측면 3칸이고, 위층이 정면 6칸, 측면 1칸인 굴도리 집 우진각 지붕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서쪽 끝의 칸에 설치되었고, 2층은 칸막이 없이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사방에 창을 내었다.

궁내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아 가식이 없고 검소하며 소박하여 친근감을 준다.

 

 

석어당 : 고종의 친필

우측 상단에 어필이라고 쓰여있다.

 

 

 

- 석어당과 살구나무 -

 

석어당 살구나무

이 나무는 덕수궁에서 가장 오래된 살구나무로 꽃이 피는 시기는 3월 말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하는 노랫말에서 볼 수 있듯 살구나무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봄꽃 나무이다.

궁에서 보기 드문 2층 목조 건물인 석어당과 활짝 핀 살구꽃 풍경은 

덕수궁 봄꽃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준다.

 

 

 

덕수궁 주변 많은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덕수궁 봄꽃 구경을 나와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작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19로 인한 그들의 고통을 알고

또한 이해하고도 남는다.

 

 

덕수궁 중화전(德壽宮中和殿)

덕수궁의 정전.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격적인 궁궐 중건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1902년 중화전은 2층으로 세워졌고 정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5년 중건되면서 원래 2층이던 것이 1층이 되었다.

 

 

 

 

 

 

1904년 경운궁 대화재 이전의 중화전

 

 

 

 

 

- 덕수궁 석조전 -

학창 시절 서클 모임, 사진 혹은 그림 그리려고 덕수궁 많이도 왔다.

특히

지금 사진의 위치인 석조전 앞에는 매년 5~6월이면 등나무 꽃이 만발하여 그 아래에서 바라보는

석조전은 참 아름다웠다.

 

 

석조전(石造殿)

석조전은 정면 54m, 너비 31m의 장대한 3층 석조 건물이다.

대한제국기 동안에 지어진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이다.

구한말 총세무사 브라운의 권유로 영국 사람 하딩(J. R. Harding)이 설계했다. 심의석(한국인), 사바틴(러시아인),

오가와(일본인), 데이비슨(영국인) 등이 감독으로 1900년 기공하여 1909년 준공했다.

 

그리스 건축을 조형(祖型)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한 이른바 콜로니얼 스타일(식민지 양식) 건물로서

같은 모양의 건물이 18세기 이후 영국 식민지의 여러 곳에 세워진 바 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집무실과 외국 사신들의 접견실로 사용할 목적에서 지어졌는데,

지층은 시종들이 대기하고, 1층 황제의 접견실, 2층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되었다.

 

석조전의 정원으로 영국인 하딩의 설계로 같은 기간에 서양식 정원과 분수대가 세워졌다.

 석조전은 해방 후에는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궁중유물전시관이 있었으나 경복궁 자리로 이전하였다.

이후 2014년 복원공사가 끝나고 10월 13일에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은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미국과 소련 양국의 대표가 설립한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

 

 

 

- 오얏나무 -

 

자두는 우리말로 ‘오얏’이다. 자두의 한자말은 이(李)로 

조선왕조가 이 씨 왕조이기는 하지만 자두를 상징물로 쓰지 않은 탓에 자두나무를 특별히 우대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문장(紋章)을 자두 꽃으로 했다.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구한말 우표 등에 사용되었다.

 

 

- 석조전 용마루 오얏꽃 문장 -

 

 

 

 

 

이젠 덕수궁 돌담길을 완전히 한바퀴 돌 수 있다는데, 

결국 영국대사관 자리에서는 덕수궁 돌담에 쪽문을 내어 덕수궁내를 약 100m 걸어 영국대사관 건물을 벗어나

다시 쪽문을 내어 영국대사관 정문 앞으로 나오게 되어 시원스럽지 않았으나

그나마 덕수궁 돌담길을 한바퀴 돌 수 있음이 다행이다.

 

- 왼쪽은 영국 대사관 - 오른쪽 돌담 쪽문으로 들어간다.-

 

 

-  쪽문으로 들어서면 석조전 후원이다. -

 

 

- 우측 영국국기가 보인다. -

 

 

- 좌측 쪽문 밖으로 나가면 영국대사관 앞이며 다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한바퀴 도는 것이다. -

 

 

- 좌측 쪽문으로 나오면 영국대사관 정문이다.-

 

 

예전의 덕수궁 돌담길은

영국대사관 건물로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없었으나

이젠 덕수궁을 완전히 한바퀴한 바퀴 돌 수 있다기에 덕수궁 후문으로 나가 돌담길을 한 바퀴 돌아보려는데

일제강점기에 훼철된 덕수궁 돈덕전의 재건공사를 하고 있다.

 

사실 돈덕전은 지금까지 몰랐던 건물이라 공사 안내문과 설명문을 보고 담아본다.

 

 

 

 

 

 

 

 

 

 

 

 

 

 

 

 

 

 

- 돈덕전 공사 현장 -

 

 

- 비 내리는 날의 덕수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