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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남 여행

(순천) 사적 제302호 : 조선시대 삶이 머문 낙안읍성

 

어디 :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성

 

 

낙안(樂安)

‘낙토민안(樂土民安)’에서 유래된

대지와 사람이 두루 평안하다는 고을이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성이다.

이곳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 성안과 성밖의 돌담장 안 초가집 등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생활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전남 순천시 도심에서 서쪽으로 22km 떨어져 있는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인 1626년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전통의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사적 302호로, 초가집 293채와 동헌, 객사는 물론이고 호남 3대 누각으로 불리는 낙민루가 남아있다.

현재 98가구, 주민 228명이 살고 있다.

 

낙안읍성은 북쪽으로는 진산인 해발 668m의 금전산, 동쪽으로는 해발 592m의 오봉산,

남쪽으로는 해발 563m의 제석산, 그리고 서쪽으로는 해발 584m의 백이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읍성 주변은 분지형의 드넓은 평야지대가 발달하여 있으며,

남쪽 평야 끝에는 여자만이 있어 바다와 접하고 있다.



 

 

 

 

 

 

 

 

 

 

낙안읍성은 

옛 읍성으로 성벽이라는 방어시설을 갖춘 성곽도시이자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도시였다. 

일반적으로 읍성은 외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산등성이에 축성하는 것이 보통인데 낙안읍성은 평지에 축성된 야성, 또는 평지성이다. 

낙안은 평야가 많아 

고려 시대 말엽 이후 왜구들의 침략이 매우 극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낙안읍성 동문 낙풍루(樂豐樓) 앞 석구(石狗) -
- 석구(石拘) -

 

 

 

- 동문에서 바라본 남문과 성안 -

 

 

 

- 남문에서 바라본 낙안의 주산인 금전산((667.9m)과 동문 -

 

 

 

- 오금재 너머 먼 산 아래 선암사가 있다 -

 

 

 

- 남문 쌍청루(雙淸樓) -

 

 

 

- 남문에서 본 동쪽 오봉산(591m)과 멀리 제석산(563m) -

 

 

 

- 남문에서 본 남쪽 - 좌측 제석산(563m)과 벌교 - 중앙에 고흥 첨산이 조망된다. -

 

 

 

- 남문에서 본 서쪽 - 보리가 자라는 낙안들과 백이산(584m) -

 

 

 

- 서쪽 대나무 숲 전망대에서 본 낙안읍성 전경 -

 

 

 

 

 

 

 

 

 

 

 

 

 

 

담장 너머 장독대와 똥장군

똥장군은 똥을 거름으로 쓰기 위해 옮길 때 쓰는 농기구이다.

주로 봄에 변소에서 삭힌 똥을 바가지로 퍼 똥장군에 담고, 짚으로 된 뚜껑을 닫아 똥지게로 옮긴다.

논이나 밭에 가서 뚜껑을 열고 작은 바가지로 퍼서 뿌린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는 똥장군을 앵병, 얭병이라고도 부르는데, 오늘날엔 사용하지 않는다.

 

 

- 똥장군 -

 

 

 

 

 

 

 

 

 

 

 

 

 

 

 

- 관아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 -

 

 

 

- 관아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

 

 

 

- 낙민루(樂民樓) -

남원의 廣寒樓(광한루), 순천의 燕子樓(연자루)와 더불어 호남의 명루

 

 

 

 

 

 

- 방(榜) - 옛날 죄인을 잡기 위해 여러사람에게 알리려고 길거리 등에 써붙이는 글 -

 

 

 

 

 

 

 

- 임경업 장군 선정비 -

 

 

 

 

 

전남 순천시 낙안에 대한 기록은 1500년 전 마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안읍성(樂安邑城)은 조선 초에 세워졌으며, 백제 때는 ‘파지성(波知城)’이라 불렸고 

고려 태조 23년(940)부터 ‘낙안(樂安)’이라 불렸다. 읍성을 둘러싼 성곽은 조선 태조 6년(1397) 낙안 출신 

김빈길 장군이 부민들과 함께 토성으로 쌓았다가, 세종 6년(1424) 석성으로 개축했다. 

이후 정유재란 때 성곽 일부와 해자(垓子)·적대(敵臺) 등이 훼손됐는데, 인조 4년(1626)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보수·증축했다.

 

낙안읍성의 성곽 길이는 1410m, 면적은 6만 7000여 평으로 평지에 쌓은 평지성으로,

성문은 세 곳인데

낙풍루(樂豐樓; 동문)·쌍청루(雙淸樓; 남문)·낙추문(樂秋門; 서문) 등이다.

 

 

- Daum백과에서 모셔온 낙안읍성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