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명정문(보물 385호)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으로, 명정문은 흥화문과 같이 동향을 하였는데,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동서 중심축 선상에 정확하게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행각은 2칸 폭의 복랑이며, 경복궁의 행랑에 비해 높이가 낮다.
영조 38년(1762년)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역사를 같이한 나무로
사도세자의 비명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 줄기가 비틀리고 속이 완전히 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화나무 근처에 있는 선인문은 폭군 연산군이 왕위에서 쫓겨난 문이며,
선인문 추녀 끝 뒤주에서 사도세자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곳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한 선인문과
역사를 같이 한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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