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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연천) 임진강 고랑포와 가을 들녘

 

 

언제 : 2020년 10월 6일 화요일

어디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임진강은 북한 법동군 용포리 두류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휴전선을 지나 연천군 전곡읍과 군남면 경계에서 한탄강이 흘러들며, 유로를 남서쪽으로 바꾸어 

파주시로 흐르다가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에 흘러든다.

 

국토 분단 전에는 

농산물의 집산지였던 고랑포(지금의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일대)까지 강을 따라 배가 다녔으며, 

유량이 많을 때는 소형선박이 안협(지금의 강원[북한] 철원군 중북부 일대)까지 운항되었다. 

이들 하천이 합류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쌀·밀·조·옥수수·고추·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예로부터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국경이 되어 역사적인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킨 일이 있고,

신라진흥왕은 이 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복하였을 때에는

칠중성(積城 : 지금의 파주시 적성면)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다.

 

 

 

임진강이 전곡읍 마포리에서 한탄강을 만나

멀리 감악산 아래를 용처럼 거대하게 휘감아 돌며 고랑포에 닿고, 고랑포를 지난 임진강은

이율곡선생의 화석정 아래를 거쳐 다시 한 번 크게 용틀임을 한 후 임진각을 지나 파주시 오두산 아래에서

한강과 만나 조강이란 이름으로 남북을 경계하며 서해로 흘러든다.

 

 

 

 

 

 

멀리 감악산 - 삼국시대 칠중성이 있었던 감악산 아래 적성면 소재지가 있다.

 

고랑포

지금의 임진강은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담담하게 흐르지만,

옛날의 강은 육로보다 빠른 길이라 강은 분주하였고 임진강에도 배가 많이 다녔다. 

조선시대에는 일대에서 거둔 세금과 공물(貢物)을 실은 배가 임진강을 따라 한양으로 다녔다. 

하류의 고랑포는 1930년대까지 번성했단다. 

또한

개성과 서울이 가까워 온갖 산물이 모여 포구 주변에는 가옥들이 촘촘했다. 

 

삼국시대엔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가 이 유려한 강줄기를 따라 영토전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한국전쟁의 상흔도 아직 오롯한 강이다.

 

 

 

 

 

 

고랑포구 내려가는 길은 철문으로 닫혀있고,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시비(詩碑)가 담담히 이곳이 고랑포구 임을 말하고 있다.

 

 

내 고향은 長湍 高浪浦

성원경

 

 

내 고향은 임진강포구 고랑포외다

달밝은 밤이면 징개미 춤추었고 비에젖은 날이면 자라 덩실 노닐었소

 

내 고향은 경순왕 잠드신 고랑포라오

봄이면 장구채와 찔레 꺾어 배불리고 삘기 뽑고 심아 뜯어 봄을 먹고 자랐소

 

성수산 앞에 앉고 紺岳山 빗겨뵈어

소문난 고호팔경 예나 다름 없건만 어이타 人家없는 休戰線이 웬말이오

 

 

 

 

 

 

 

 

 

 

 

 

 

 

 

 

 

 

 

 

 

 

고랑포구 역사 박물관 마당에는 말 한 필의 상(像)이 있고, 박물관은 코로나 19로 임시 폐쇄되었다..

 

 

 

 

 

 

 

 

 

 

 

 

 

 

 

 

 

 

 

인삼밭과 인삼을 수확하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쓸쓸한 모습으로 흐르지만, 

조선시대 임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수운이 이뤄지던 강이었다. 

서울의 마포나루와 임진강 고랑포 사이에는 큰 돛단배들이 물자를 가득 싣고 오갔으며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선 임진강 유람과 뱃놀이가 하나의 유행이어서 

미수 허목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 다산 정약용이 이 대열에 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