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
용문사 은행나무를 출발했다.
요즘 내 컨디션과 오늘 날씨로 보아 한 시간 정도만 빨리 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으로
아무도 오가지 않은 용문산 가섭봉을 향해 오른다.
지난 장마로 용문산 오르는 길은 사라지고,
부러진 나무들과 떨어진 바위들로 험하나, 계곡 물 내리는 소리 우렁차
기분이 좋다.
40대 때
친구들과 어울려 용문산을 오르곤 처음 오르기 때문에 옛 기억을 살려보려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인터넷 검색하니
용문사에서 마당바위를 지나 가섭봉에 오르는데 보통 3시간이 소요된다는데, 오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7, 8월 장마와 무더위에 운동도 하지 않고 지낸
두 다리도 걱정이다.
지난 9월 7일
태풍 제10호 하이선이 지나며 내린 비 때문인지 용문산 계곡은 인적은 없으나 단아한 폭포에서 내리는
물소리는 숨가뿐 나에게 시원한 음료수와 같다.
하산길에
오늘 수고한 두 다리와 땀에 젖은 몸을 이 폭포수 아래 담가 수고로움을 덜고, 혼란스런 정신마저
깨끗히 씻어 버리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13:05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올라오는데 태풍의 피해로 길이 엉망인데 하산길도 만만치 않겠다.
좀더 일찍 도착해 점심을 들었어야 했는데, 계곡물 내림이 어찌나 멋지고 우렁차 구경을 하고
준비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늦은 점심을 들었다.
마당바위에서 점심을 드는 사이 하산하는 중년 남자 둘을 보았다.
코로나 19 발생 전이었으면
산행하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은 외롭지 않았을 터인데......
용문사 계곡은 마당 바위를 조금 더 오르면 계곡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우렁차게 내리던 물소리도 차츰 멀어지고, 가파른 오르막길에 들어서 이끼 폭포를 지나니
더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오르막길 오르는데 다리가 힘들다며 아우성을 친다.
14:00
용문사와 상원사에서 오르는 삼거리에 도착하여 두 다리를 쉬고 있는데,
청년 두 명이 인사를 하고 쉬지도 않고 올라간다.
나도 젊었을 땐 타잔이었는데
정상은 무슨 정상!
마음 한 켠에서는 그냥 내려가자 하고, 다른 한 켠에선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밟자며 갈등을 하지만,
용문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니
하늘은 나중에 오르고
오늘은 용문산 가섭봉을 밟고 말리라.
엊그제 장마가 끝났는데,
용문산 허리에는 가을이 이미 와 있네
흐리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늘 일기예보에 비 내림은 분명 없었는데, 부질없이 마음만 흔들어 놓곤 곧 빗방울은 그치고,
저 멀리 여주에서 양평으로 흐르는 남한강 줄기가 보이고,
백운봉이 조금 보여 더 오르면 멋진 백운봉을 담으려고 담지 않았다.
15:00
드디어 용문산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 사방을 담으려는데 흐린 날씨라 먼 곳을 담아도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없고,
백운봉 역시 장군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르면 다시 내려가는 것이 산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는데, 눈 먼 욕심을 부려 잘못된 사람을 자주 본다.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이듯, 정상에 오르는데 힘은 들었지만
문제는 하산할 땐 다리에 힘이 없으면 매우 어려운데, 내 뒤로 내려오는 사람이 없는 악조건이다.
여름에 운동을 계속 했다면 용문산 정도야 힘들지 않았을 터인데, 어쨌든 마음을 다잡고 안전하게 하산해야 한다.
올라올 때 잠시 쉬었던 삼거리에 도착하니 중년 두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 중 61년생이라는 분이 상원사길로 하산하다기에 함께 하산 부탁했더니 흔쾌히 손을 내민다.
인터넷 검색에서 상원사길은 수월하다던데 생각보다 하산길이 가파르고 태풍으로 길도 사라져
그 분이 앞장서고 나는 뒤 따르며 정말 힘들게 용문사에 도착해
용문사 찻집에서 냉커피를 대접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18:20
그 분은 백두대간을 걸었고, 오늘은 유명산을 거쳐 용문산에 왔다는 전문 산악인이었다.
함께 버스로 용문사역에서 전철로 그 분은 왕십리에서 내리고 나는 용산역에서 환승하여 늦었지만,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내게 도움을 주신 분께 다시 감사 말씀 드리며 건강하시고 안전 산행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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