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용굴암(水落山 龍窟蓭)와 도솔봉
12:00
학림사를 출발하여
쉬엄쉬엄 수락산 도솔봉을 바라보며 올라가니 용굴암 이정표가 나를 기다린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가다
좌측 큰 바위 아래 장군약수터라는 팻말이 보여 올라가니 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진다.
목이 말라 약수터를 올라간 것이 아니기에 기다릴 수 없어 발길을 돌린다.
12:25
용굴암에 도착
명성황후가 치성을 드렸다는 대웅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와 전망이 좋아 휴식을 취했다.
용굴암은 원래
수행납자 스님들이 자연 동굴 나한전에 십육나한 불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을 하는 자그마한 토굴이었는데,
구한말 고종 19년(1882) 임오년에
대원군 섭정으로 밀려난 명성왕후가 잠깐 숨어 지낼 당시 칠일기도 치성을 드리고 나서 다시 집정을 하게 되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하사금으로
현재 대웅전 지었다고 전해진다.
▲
학림사에서 용굴암 1.3km
▲
학림사 출발
▲
산철쭉꽃
▲
장군약수터
용굴암 가는 산길 좌측 장군약수터가 보여 올라가니 물은 거의 내리지 않다.
▲
12:25
용굴암 도착
▼
학림사에서 도솔봉을 향해 오르다가
도솔봉길을 벗어나 우측 산 허리를 돌고 돌아가니 좌측에 장군 약수터가 보여 올라가니 물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진다.
기다릴 수 없어 발길을 돌려 산허리를 돌아가니
높다란 바위 위에 2층 암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곳은 요사채이고 정작 명성황후가 치성을 들였을 자연 석굴인 나한전은
높은 계단을 오르면 나한전과 대웅전이 있는데,
대웅전에서 전방을 바라보니
막힘이 없이 확 터진 공간 저 멀리 불암산이 다소곳 머리를 숙이고 있다.
산세 볼 줄 모르지만,
어디서도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자연 석굴에서 명성황후가 7일간 치성을 들일만한 곳이었다.
▲
용굴암 전경
▼
▲
대웅전 내부
▲
나한전
대웅전 옆 자연석굴 나한전
▼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용굴암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경복궁에 난입한 성난 군인들을 피해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청량리를 통해
덕릉고개를 넘는 동북방면의 길로 우회하여 생가가 있는 여주로 가고자 하였다고 한다.
덕릉고개를 넘다가 어디에서 쉬면 좋겠냐는 물음에 용굴암을 추천해서 쉬어가게 되었으며
여기서 7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복귀를 하게 되었다고 전한다고.
▲
대웅전에서 본 불암산
▲
바위말발도리꽃
용굴암 바위 틈에 피었네
▼
▲
용굴암 범종
▲
용굴암 미륵전
▼
12:50
용굴암 출발 - 도솔봉을 향해
▼
▲
용굴암 갈림길 이정표
▲
산벚꽃
▲
도솔봉 탱크바위와 함박눈
▼
▲
도봉산 방향에서 강풍과 함께 함박눈
▼
▲
북한산
갑자기 눈이 내리니 북한산이 희미하다.
▲
도솔봉과 불암산
▲
하강바위
▼
▲
하강바위
바람이 드세 하강 바위를 올라가지 못하고 지나는 길은 사진에서 보는 바위 맨 아래 벌어진 곳이다.
그곳에서는 전경을 담을 수 없었는데,
마침
도솔봉 근처에서 당겨서 담은 사진이 하강바위 전체를 볼 수 있어 좋다.
▲
치마 바위와 도솔봉
수락산 능선 상 암봉들이 한양을 향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국이라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수락산을 특히 한양의 수호산(守護山)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수락산에는 지사(志士)들이 은둔하여 풍류를 즐겼고
명당 기슭에는 왕족의 묘역도 마련되었으며 따라서 왕실의 지원을 받는 사찰들이 번창하였다.
13:15
도솔봉을 지나 준비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드는데,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어두워지더니
강한 바람과 함께 함박눈발이 흩날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봄이 가는 날
수락산에서 함박눈발을 본다는 것은 요즘 스트레스로 쌓였던 응어리들이
가슴을 뚫고 날라가 버린다.
'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양주) 수락산 내원암(水落山 內院庵) (0) | 2020.05.20 |
---|---|
(서울) 수락산 정상 태극기 바람에 날리던 날. (0) | 2020.05.20 |
(서울) 수락산 학림사(水落山 鶴林寺) (0) | 2020.04.29 |
(서울) 삼각산 도선사(三角山 道詵寺) 연등(燃燈) (0) | 2020.04.27 |
(서울) 북한산을 가슴에 담고 (0) | 2020.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