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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서울의 전차(THE TRAMS OF SEOUL) - 70년간 운행되었던 전차여, 안녕!

 

서울의 전차(THE TRAMS OF SEOUL) - 70년간 운행되었던 전차여, 안녕!

 

 

 

 

언제 : 2020년 2월 19일 수요일

어디 : 수을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는 전차가 들어오게된 배경과 운행으로 변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곳은 전차의 종말을 담았다.

 

1960대말에는 서울 인구가 400만이 넘어서고 1970년에는 500만이 되어 속도가 느린 전차는

더이상 시민의 발이 되지 못했다.

 

1968년 11월 29일 

마지막 전차가 동대문 차고에 들어갔다.

8시 12분 동대문에 도착한 마지막 전차 303호 차장은 "동대문 종점입니다. 안녕히들 가십시오"라고

목 메인 소리로 남아있는 승객 46명에게 안내를 마친 후,

운전사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1899년부터 70년간 시민의 발이었던 전차는 그 여정을 다하게 되었다.

 

 

 

 

 

 

 

 

 

 

 

 

 

 

 

 

 

 

 

 

 

 

운전사와 차장의 복장

 

 

 

 

 

 

 

 

 

 

 

 

 

 

 

 

 

 

 

 

 

 

 

 

 

 

 

 

 

 

 

 

 

 

 

 

 

 

 

전세 전차를 탄 어린이들

전차에도 전세 버스처럼 전세 전차가 있었다. 주로 소풍을 갈 때 이용되었던 전세 전차는

타기만 해도 설렘이 가득하였다.

이 아이들의 기억은 이제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전차 승무원 배지 및 단추

 

경성전기 및 한국전력회사의 당시 승무원들의 옷에 부착했던 배지 및 단추이다.

승무원들은 운전수 및 차장이 있었으며 일부 차장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배지에는 승무원의 번호 및 성별이 적혀 있다.

여차장은 아래 위로 곤색 상의와 바지를 입었다.

 

 

전차 운전사 월급 명세서(1962~66년)

 

한국전력, 경남지부 전차과에 근무하였던 정복록 씨의 월급 명세서이다.

정복록씨의 월급은 11,915원이었다.1960년대 당시 일반 제조업 생산 종사원의 임금이 4,600원인 것으로 보아

전차 운전사의 월급이 3배가량 높음을 알 수 잇다.

 

 

 

 

 

 

전차표 검표기와 전차 승차권

 

검표기

승차권을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승차권에 구멍을 내는 도구이다. 대한제국 때부터 사용되었던

전차표 확인 방식은 전차가 운행을 멈추는 1968년까지도 계속되었다.

 

전차 승차권

전차 요금은 버스 요금에 비해 저렴하여 전차사업이 중단될 때까지도 서민의 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남겨진 기억들

 

 

 

 

마포종점 - 은방울자매(1968년)

전차의 종점 중 하나인 마포종점에 대한 노래이다.

마포종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으나, 아직도 노랫말 속에 남아 전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1968년 11월 29일 저녁 8시 12분

전차는 파란만장했던 70년의 생을 마감했다.

 

 

태평통을 지나는 전차와 사람들

 

숭례문에서 촬영한 태평통 일대이다.

이곳은 용산으로 나가는 선로와 태평통 선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경성 내에서도 많은

이동인구가 있던 곳이었다.

 

 

흥인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길

 

흥인지문 옆 동대문 전차 차고지에서부터 청량리역까지가 청량리선이다.

청량리로 가는 한적한 길은 하이킹 코스로 각광을 받았다.

 

 

용산우편국 근처에서 삼각지 방면으로 가는 길

 

용산은 대한제국때부터 주목 받았던 곳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철도 관사 등이 들어서면서

선로는 계속 확장되었다.

앞에 보이는 산이 남산이다.

 

 

종로2정목에서 흥인지문 방향으로 달리는 전차

 

종로선을 달리는 전차의 모습이다.

 좌측에 옛 한성전기회사 사옥과 YMCA 건물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