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남원) 사적 제309호 : 천 년의 향기 지리산 실상사(實相寺)

 

사적 제309호

천 년의 향기 지리산 실상사(實相寺)

 

 

 



언제 : 2019년 6월 2일 일요일

어디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남들과 여행에 관해 얘기하다 보면 어느 즘에서는 지리산 실상사가 나오는데,

실상사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은 이미 습득되었기 때문에 마치 다녀온 듯 얘기를 했다.


그러나

어디서 점심을 들고 맛이 어땠는지 혹은 실상사 건너는 강이 어디서 발원하여 그곳을 흘러 어디로 가는지는

말할 수 없었기에 얘기를 끝낸 후 후회를 한 적이 몇 번이나 된다.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면 그들이 나를 비웃을까?

혹은 별로 다니지도 않았으면서 다닌 척한다는 의심을 받을까 부질없는 자존심 때문에.....

어쨌든

이제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도 된다는 것이 실상사 여행의 한 가닥이다.


실상사는

 

우리나라 선문의 효시인 ‘구산선문’ 은 이곳 ‘실상산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실상사는 ‘구산선문 최초 가람’으로서 한국 선풍(禪風)의 발상지라고 소개가 되어있다.


지리산 뱀사골과 바래봉 골짜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조잘대며 해탈교 아래를 흐르고

해탈교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에 닿은 지리산 천왕봉 웅대한 자태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겨 버린다.

  

 

 ▲

해탈교

지리산 뱀사골과 바래봉 골짜기 물이 남원시 산내면에서 합류하여 람천이 되고

백무동 계곡과 칠선계곡 물이 합류하여 임천을 이뤄 산청읍을 지나며 남강을 이루어

진양호로 흘러든다.



 ▲

지리산 천왕봉

실상사 앞 람천을 건너는 해탈교 위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가운데)

 


 

 ▲

 ▼

 

 


 


 ▲

실상사 휴휴당

지금까지 다녀 본 절들과는 전혀 다른 산속이 아니라 들 가운데 있는 실상사


 

천왕문

천 년 고찰 실상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 

스님 한 분이 나의 뒤를 따라 천왕문으로 오고 있다.


 

 




실상사 전경 



 ▲

사천왕문을 지나며 본 지리산



실상사 전경



보광전

석등

보물 제35호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37호

 


 

보광전

 




석등

동.서 삼층석탑

지리산 천왕봉


 

 




 

 

 

 


 




 

약사전

 

 




범종각과 옛 기와로 쌓은 탑


 

고려시대 목탑지

 

 

 

 


 




요사체

 

 



텃밭


 

극락전 가는 길


 

극락전

 

 

 

 

 

 

 

 

 

 

 

 

 

 

 

 

 

 

 

 

 점심을 들려고 실상사 앞 메밀국수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는데,

어디서 낯익은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 개그맨 전유성" 씨가 지인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얼마전 경상도 청도에서 남원으로 거처를 옮겼다더니

이곳은 남원 시내에서 가장 먼 실상사 근방에서 유명인을 만나니 그 또한 기분 좋네.

 

 


절은 산속에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절이 산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주의 황룡사나 사천왕사 같은 절은 서라벌 중심지 가까운 평지에 있고,

지금 서울 조계사는 조선 왕궁 가까이 있다.


근본적으로 절이 산중에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불교는 

세속의 명리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출가하여 탈속과 해탈을 추구하는 수도처로는 산중이 적합하였고, 신라말 도선국사의 풍수지리학에 입각한

적합한 곳에 절을 세우다 보니 적합한 곳이 산이었다.



또한

조선 5백 년간의 억불정책이 원인이다. 

1392년의 조선 개국(開國)에서부터 대한(大韓)으로 국호를 고친 1897년까지의 불교는 한마디로

배척과 억압을 당한 수난의 불교였다.



실상사는

 옛날에는 심산유곡이었지만, 천년의 세월을 지나며 실상사도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지명도와 비교해

조금은 공간이 넓었던 실상사를 떠나며

담담하게 실상사를 내려다 보던 지리산 천왕봉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