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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전북 여행

(고창) 미당 시문학관(未堂詩文學館)과 고향 풍경


미당 시문학관(未堂詩文學館)과 고향 풍경

 

 

 


언제 : 2019년 4월 6일 토요일

어디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231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노래한 미당 서정주.


그를 키운 질마재 아래

옛 선운초등학교 봉암분교를 개조하여 지은 미당시문학관은 해 질 녘 운동장 저편 회색빛으로 솟은 첨탑이

조금은 낯설지만 나를 맞이한다.


질마는 짐을 실으려고 소나 말의 등에 안장처럼 얹는 기구로, ‘길마’의 사투리다.

 결국 질마재는 서정주 시인의 고향 진마마을 뒤에 있는 고개로 안장을 닮은 고개이며,

 진마마을은 질마재를 한자로 고쳐 붙인 마을 이름이다.


고향 선운리에 있던 폐교인 선운초등학교 봉암분교를 개조하여

부지 9,461㎡에 4동의 건축물을 만들고, 2001년 10월 생가 복원에 이어 11월 3일 문학관을 개관하여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 선생(1915∼2000)의 작품과 생애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시인의 고향에 세워진 문학관이다.

 


 

 

 

 

 

 

 

 

 

 

 

 

 

 

 

 

 

 

 

 

 

 

 

 

 

 

 

 

 

 

 

 

 

 

 

 

 

 

 

 

 

 

 

 

 

 

 

 

 

 

 

 

 

 

 

 

 

 

 

 

 

 

 

 

 

 

 

 

 

 

 

 

 

 

 

 

선생님께서는

평소

가야금 소리를 좋아하셨는지 가야금이 서서 찾아오는 이를 맞는다.

 

 

 

 

 

 







 

성철 큰스님과 함께 해인사에서

미당은 촬영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였으나 성철 스님을 직접 찾아 친견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생전에 15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약 70년의 창작 활동기간 동안 1,000여편의 시들을 발표했다.

현대의 시인들 중에서

만해, 소월, 지용 등과 함께 가장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시인 평가에 대한 각종 자료에서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번역된 한국문학 자료 중 가장 많은 나라의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기록이 있으며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다섯 번이나 추천되었지만 수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한국문학이 도달한 최고의 미학적 형상력,

또는 후대에게 미치는 가장 강렬한 미학적 감화력의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 후반의 친일작품 발표 문제 및 독재정권 지지와 찬양 문제로 인해

문학계 안팎의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후,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애비는 종"이었다고 고백한다.

노비의 자식으로 서럽기만 했다던 서정주는 대를 이어온 노비의 신분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고

노비의 설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자 나름 애썼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처세에 대해 말하며 그의 시도 그렇게 묶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처세는 처세이고 시는 시이다."라고



 




 




 







 

 




 




 

 

미당은 1992년 월간 ‘시와 시학’에서 자신의 친일행적 시비와 관련,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변론한 바 있다.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오직 시만 가지고 논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살아 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이라는 찬사가 붙지만,

친일·친 독재 전력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다츠시로 시즈오'가 되고,

전두환 생일에 축시를 쓴 파렴치한 시인이 된다.


'꽃'의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는 말로

그의 이런 전력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인의 고향에서조차 미당을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비극인 셈이다. 

 


 

 

 


 

 

미당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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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 풍경 - 건너편은 변산반도

 


 

 

 

 

하필

 미당 시문학관 전망대에 올라 미당의 고향 들과 곰소만 건너 곰소항과 내소사일대를 사진에 담으려니

미세먼지로 희뿌연 하늘에 해 질 녘 찾은 이유로

도무지 잡히지 않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