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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하동) 지리산 청학동 마고성(麻姑城)


지리산 청학동 마고성(麻姑城)

 

 

 

 


언제 : 2019년 4월 21일 일요일

어디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1561-1



우리의 옛 차림을 하고

일상도 신문화를 배척하고 옛사람들이 하던 방법으로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지리산 청학동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따금

대중매체를 통해 잠깐씩 청학동을 소개하기도 하여 궁금하였으나.

머나먼 하동 그것도 지리산 800m 고지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나에겐 만만하지 않은 곳이라

여태

찾아보지 못하다가

막냇동생과 함께 승용차를 이용하여 궁금하던 청학동을 찾았다.


찾아간 날은

제주도 인근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있어 흐려 맑은 날은 아니었다.



 

 

하동읍에서 청학동 삼성궁까지는

대략 36km이면 성인이 꼬박 하루를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라면 왕복하려면 최소한 3일이 필요한

세상 혹은 신문물과는 거리를 두었다고 생각된다.


   

청학동

갱정유도(更定儒道)인들이 살아가는 도인촌, 배달민족의 성지인 삼성궁,
그 아래 마을인 학동을 합해 부르는 명칭이
바로 청학동이다.

청학동은 청학이 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백학이 천년을 살면 청학이 되고, 청학이 다시 천년을 살면 현학(玄鶴, 검은학)이 된다고 하는 신비로운 새다.

따라서 청학이 사는 곳은 신선이 함께 사는 동천(洞天)이며,
세속의 때와 나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해 전쟁과 질병, 흉년의 삼재가 들지 않는
복지(福地)로 전해져 내려왔다.
 ▼  

지리산 청학동

 

 

청학동에서 바라 본 하동 방향

청학동을 오려면

사방이 고산준령으로 막혀 오직 하동에서 들어오는 계곡만이 유일한 교통로이다.

 

 

청학동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하였으면 좋았을 걸.

청학동 삼성궁과 도인촌은 떨여져 있어

마고성과 삼성궁만 돌아보고 도인촌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삼성궁 마고성

 

07:30

전라남도 순천에서 출발하여 청학동 오던 중 하동호에서 1시간 머물고

10:30

삼성궁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동으로는 천왕봉 서으로는 반야봉 그 중앙에 영신봉

영신대는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센 곳으로 소문난 곳으로 삼선봉 아래 

사방이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삼성궁이 있다.

 

 

 

선국()


- 삼성궁과 마고성의 입장료 성인 7,000원 -

 

 

마고성(麻姑城)


인류의 시초이자 창세의 여신인 마고를 모시는 곳으로

신라의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 있는 상상 속의 지역이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인 마고에게 두 딸이 있고

이들에게서 황궁씨(黃穹氏), 백소씨(白巢氏), 청궁씨(靑穹氏), 흑소씨(黑巢氏)의 남녀 각 1명의, 8명이 태어났고,

이들이 각각 3남 3녀를 낳았는데

이것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대를 지나 자손이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성(城)안의 사람들은 품성이 순수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고 수명은 한없이 길고 누구나 스스로 지키는 자재율로 질서를 이루었다.


어느날 백소씨(白巢氏)의 일족인 지소씨(支巢氏)가

 지유(地乳)대신 포도를 먹고 다른 사람에게도 먹게 함으로써 5미(味)의 맛에 취하고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천성을 잃게 되고 수명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성에서 쫒겨나게 되었고 성안에도 지유(地乳)가 끊어져 모든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의 어른인 황궁씨(黃穹氏)가 책임을 지고

 마고 할머니 앞에 복본(復本: 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모든 사람의 4파로 나누어 성을 떠남에 있어

황궁씨(黃穹氏)는 일행을 이끌고 북쪽 문으로 나가 현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갔다.


황궁씨(黃穹氏)와 그의 자손인 유인씨(有因氏) 그리고 유인씨(有因氏)의 자손인 한인씨(桓因氏)가

천년씩 3천년동안  복본을 위해 몸과 마음을 열심히 닦은 결과 기후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상승하여 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고성에 들어가자마자

왼쪽 계곡에 삼선봉에서 흘러내린 시원한 물줄기가 좋다.

 

 

마고성에 입장하여 본 청학동

그런데

보여야 할 옛 복장을 한 도인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무얼하고자 이렇게 돌로 성을 쌓았을까?

전혀

큰돌에서 작은돌로 단단하게 성을 쌓은 상식 밖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대체

누가 이곳을 침입한다고 성을 쌓았으며 이 돌들은 또 어디서 가져왔을까?

 

 

 

 

 

 

청학폭포

 

 

 

묘신지문(卯神之門)

토신의 문

 

 

 

 

 

 

 

 

 

 

사신지문(巳神之門)

뱀신의 문

 

 

오신지문(午神之門)

말신의 문

 

 

미신지문(未神之門)

양신의 문

 

 

 

 

 

 






사슴이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네
미신지문을 지나 있어 양이 아닌가? 했는데 머리에 뿔을 보니 사슴 뿔이네

 


장난이 아닌 정말 정성들여 정교하게 쌓은 성이다.
어쩌자고 이렇게 지리산 깊숙이 견고한 성을 쌓고 무얼 기다리는 것일까?

궁금하나

누구하나 물어볼 사람이 없네.



이곳에 오기 전

성 아래 나무배가 몇 척 있어 누가 산으로 배를 가져왔나? 했는데,

모퉁이를 돌아 올라오니

이렇게 푸른 호수가 있어 ㅎㅎㅎ 누군가 이곳에서 뱃놀이를 하는 것을 알았다.

 ▼ 

주변은 온통 돌성인데 호수 뒤 가운데 움막집이 있다.

바로 기도처네



 


돌 성안에 아담한 집이 있어 안에를 보니 안에는 뜻하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 있다.
남자의 성기를 나무로 깎고 다듬어 모아 놓았다.

 

도인들도 성(性)에는 우람한 것을 좋아하는 일반인과 차이가 없는가?

 ▼

도대체 이렇게 큰 집을 지어 겨우 이것들을 보관하고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곳이다.





 

 

 

 




 

 

 

 

 

 

 

마고성을 한바퀴 돌아보는 시간은 대략 1시간이면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자 이렇게 깊고 깊은 지리산 속에 견고한 돌성을 쌓았는가?

그리고

만일 누가 오는가를 감시하려면

입구만 막으면 될 일을 견고하게 쌓은 돌성에 조그만 창문들을 만들어

굳이 누가 오는가를 숨어 봐야 하는가?

 

 

 


 

부도지符都志


신라 때 영해 박씨의 선조인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박제상 사후에 박씨 종가에서 필사되어 전해왔다.

조선시대 세조 이후에는 영해 박씨들이 숨어살게 되면서 숨겨졌다가,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朴錦, 1895~?, 본명 박재익)의 복원본을 말한다.

박금에 의하면,

해방 후 월남할 때에 여러 대에 걸쳐 전수받은 원본을 함경남도 문천에 놓고 왔고,

분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원본에 가깝게 남한에서 복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금은 해방 전에 동아일보 재직 시에 이를 번역연재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1986년 김은수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필사본. 오늘날 전하는 박금의 『부도지』는

 1953년에 그가 필사하여 복원한 것으로 모두 33장으로 되어있다.

김은수는 1986년 이를 번역하여 출판할 때,

1장부터 26장까지를 『부도지』, 27장부터 33장까지를 『소부도지』라 하고,

여기에 김시습의 『징심록추기』와 박금의 『요정징심록연의후기』등을 보태어

4편으로 편집하였다.

 


 

 

『부도지』에 따르면,

 

 마고성(麻姑城)은

마고가 사는 성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며, 천부(天符)를 받들어 선천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성의 가운데는 천부단(天符壇)이, 사방에는 각각 보단(堡壇)이 있다.

천부는 천리를 숫자로 표현하여 우주법칙을 설명한 것이며,

천부삼인(天符三印)이란 천지 본음(本音)을 본 뜬 것이다.


이 마고성에서 출발한 한민족은 마고·궁희·황궁·유인·환인·환웅·단군에 이르는 동안

천산·태백산과 청구를 거쳐 만주로 들어 왔으며,

이렇게 시작한 한국의 상고역사는 하늘과 함께해 온 천도적(天道的) 의미를 지닌다.


부도(符都)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1장부터 26장까지의 『부도지』는

황궁에서 단군을 거쳐 읍루(또는 단군가륵)까지의 7세(世) 동안 천부(天符)가 전해온 역사를

7천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7천년의 역년이란 단군 가륵으로부터 소급하면 서기전 9,100여 년으로, 이는 황궁씨가 출발한 때이다.

그리고 27장부터 33장까지의 『소부도지』는

후삼한과 삼국의 이야기로부터 부도의 재건과 복본(復本)의 회복으로 끝을 맺고 있다.


『환단고기』에 비유되는 것처럼 아직도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라져 버린 인류 시원문화의 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한민족의 국통(國統)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