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서 : 끝나지 않은 100년의 외침
언제 :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어디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셨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흔적을 찾아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학창시절
살던 곳이 영천 시장 방면 산동네 시민아파트라 매일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면
현저동 101번지 붉은 벽돌집이 내려다보여 눈에 익지만,
기피의 장소였기에 특별한 추억은 없다.
거의 50년 만에 찾아온 서대문 형무소는
범위도 좁아졌고 무악재 넘어가던 도로와 맞닿아 있었는데, 지금은 약 50m 뒤에 있다.
아쉬운 일은
서대문 형무소 감방 내부 시설과 여자감방 등 다른 시설도 사진에 담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라져 버려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찾아 사진을 보강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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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전경과 인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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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어서인지 학생들과 각 단체에서 방문하여 입장하는데 40분을 기다렸다.
어쨌든
남 여 노 소를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아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저항과 수난 그리고
죽음으로 나라를 되찾으려던 자주 자립 자유 그리고 자조를 이룩하여 더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각오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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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집 서대문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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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여 본 형무소 문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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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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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과 청사 -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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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한일 의병장 칼(일제강점기)
1906년 홍주의병. 1913년 독립의군부에 참여하였던 곽한일(1869~1936) 의병장이 사용하였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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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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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용 지팡이 칼(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비상시 사용하였던 호신용 무기.
지팡이로 위장하여 윗 부분을 열면 칼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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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규 의사 절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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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일제강점기)
수감자 이동이나 노역 시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양쪽 발목에 채웠던 형구
(독립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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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수감자 이송 시 탈주 방지를 위해 손목에 채웠던 수갑 - 1987년 발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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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관 고문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 직접 체험을 했는데 좁은 공간에 서 있으니 움직일 수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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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독방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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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 높은 건물 - 감옥동 세 동이 모여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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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동을 부채살처럼 지었다.
형무소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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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찍는 틀(일제 강점기)
수감자들의 밥을 폈던 밥틀로, 밥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받침의 두께가 각기 다르다.
(법무연수원 소장)
옥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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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작대기가 내려와 있는 것은 감방 안에서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교도관에게 알리는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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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동 12동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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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자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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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벽장
수감자 운동장으로 옆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하게 한 사람씩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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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
- 촬영 금지 지역이었는데 찍고 나서 알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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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과 의자 그리고 시체를 운반하던 지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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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殉國先烈)과 애국지사(愛國志士)
순국선열(殉國先烈):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建國勳章)·건국포장(建國褒章)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
애국지사(愛國志士):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이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 그리고 지사(志士)
성패와 상관없이 무력을 이용해 거사를 결행한 분을 의사(義士)라 하고,
맨몸으로 싸우거나 직접적 행동 대신 강력한 항의의 뜻으로 자결하거나 피살된 분을 열사(烈士)
지사(志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바쳐 일한 굳은 의지를 가진 분이다.
의사와 열사는 순국한 뒤 붙일 수 있는 칭호이지만
지사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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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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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1930년대 추정)
여수감자들이 신었던 버선으로 2011년 여옥사터 배수관로 공사 중 발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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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1940년대 추정)
여수감자들이 신었던 고무신으로 2009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종합보수정비공사 중 발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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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과 8호 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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