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918~2018) : 그 찬란한 도전 - 차(茶)가 있는 공간
언제 : 2019년 1월 7일 월요일
어디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지난해 2018년 12월 17일 2차 방문하여
"대고려 찬란한 도전"을 카메라로 담았는데, 조금 늦게 간 바람에 전부 담지 못했고,
잘못 찍힌 사진은 다시 찍을 겸 3차 방문하였다.
해외에 나가 있는 고려 유물과
국내의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한다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껏
국내에 있는 고려 유적과 유물 그리고 문화에 대해 이렇게 성대하게 전시를 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어떤 이유로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고려 유물을 한자리에 전시하고 볼 수 있음은 행운이다.
고려의 문화는 결국 불교 문화이다.
다행스럽게도
사찰을 중심으로 유물들이 많이 남았고,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었던 해외에 나가 있는 유물들을
한곳으로 모아 전시한
국립중앙박물관과 관련 기관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각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1.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
고려 1346년 - 금동 - 보물 제337호 - 청양 장곡사
700년만에 첫 나들이를 한
장곡사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이다.
이 약사불상은
균형 잡힌 신체 표현과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 주는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금동불이다.
왼손에 위로 불룩 솟은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뚜껑이 아니라 약이나 음식같은 내용물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도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 상의 복장에서 다수의 발원문과 직물이 나왔다.
발원문에는 승려 백운(白雲)의 이름과 함께 천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1346년에 백운의 주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시주하여 불상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2.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고려 - 철
불교의 진리인 법(法)을 인격화하여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상이다.
양손을 가슴에 올려 왼손 주먹을 쥔 채 둘째 손가락을 세워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태의 지권인을 하고 있다.
옷 주름은 간략하며 계단식으로 층층히 표현되어 있고 두 다리 밑으로는 형식화 된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이 펼쳐져 있다.
철불은 통일신라 말부터 제작되어 고려시대에 유행했는데, 이 불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주조 과정에서 불상의 표면에 가로와 세로의 외형틀 분할선 흔적이 남게 된다.
3.
건칠보살좌상
고려 14세기 - 건칠과 나무에 채색
건칠불(乾漆佛)은 삼베나 모시에 옻칠한 후 여러 번 겹친것을 건조시켜 완성한 불상이다.
이렇게 만든 상을 우리나라와 중국의 옛 문헌에서는 협저상(夾紵像) 또는 칠상(漆像)이라고 하였다.
송과의 교류로 중국 건칠불의 제작 전통이 전래되면서 고려에서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상은 건칠 기법으로 제작된 보살좌상 가운데 가장 크기가 크며, 광물을 새겨 넣은 장식판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금동보관이 함께 남아 있다.
4.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 14세기 - 금동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에 머물며 설법하는 부처로, 한없는 광명과 수명을 상징한다.
이 아미타불상은
얼굴이 계란형으로 갸름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으며, 이목구비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머리의 중간 계주(髻珠), 속옷인 승각기의 띠매듭과 왼쪽 가슴 아래로 드리워진 마름모꼴식,
왼쪽 팔뚝 위에 겹쳐진 옷주름 표현 등은 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이다.
5.
대승사 금동아미타불좌상
고려 14세기 - 금동 - 보물 제1634호 - 문경 대승사
700년만에 첫 나들이를 한 아미타불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해주는 부처이다.
문경 대승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불상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상이다.
양손은 엄지와 약지를 구부린 수인을 취하고 있고, 손바닥에 "井"자 형태의 손금이 남아 있다.
불상의 육계 부분에서
대덕(大德) 5년(1301)에 인출된 아미타삼존다라니가 발견되어 제작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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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도 전시물을 관찰하며 의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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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신(兪弘愼)의 아내 이씨가 헌납한 복장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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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신(兪弘愼) : 고려 후기의 무신
1276년(충렬왕 2) 장군으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판비서시사(判秘書寺事) 주열(朱悅)을 따라 원나라에 다녀왔다.
1278년에도 장군으로서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 곽여필(郭汝弼)을 따라 하정사로 두번째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에는 대장군이 되어 소윤(少尹) 김광취(金光就)를 대동하고 세번째 하정사로 파견되었으며,
1282년 상장군이 되어 네번째 하정사로 갈 때에는 혼자 대표가 되어 다녀왔다.
1291년에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차(茶)가 있는 공간
고려 시대 지식인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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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동자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이규보 푸른 자기 연적
푸른 옷의 작은 동자 살결이 옥과 같구나
무릎 꿇은 모습 지극히 공손하고 얼굴과 눈매도 준수하구나
종일토록 나태함 없이 물병 들고 벼룻물을 따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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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사자장식 베개
고려 12세기 -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이규보 푸른자기 베개
푸른 자기 베개는 물보다 맑고 손을 대면 옥을 만지듯 매끄럽구나
그 베개 베고 깊이 잠들지마라 어지럽고 황량한 꿈일 뿐이니
한단(邯鄲)의 청구(靑駒)가 어찌 부끄럽겠는가
당나라 盧生(노씨 성의 서생)이
한단(邯鄲)에서 도사에게 받은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일어나 보니
아직 조밥(조로 지은 밥)도 익지 않았다는 故事. 청구는 고사 속 노생의 말 이름이다.
기마도강도
고려 - 이제현 작품(1287~1367) - 비단에 채색
눈 덮인 바위산을 배경으로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있는 말과 호복 입은 사냥꾼을 그렸다.
오른쪽 상단에 "익재(益齋)"라는 글씨와 "이제현인"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上王)인 충선왕(忠宣王)의 부름을 받아
원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으로 가서 만권당(萬卷堂)에 머물게 됨으로써 원나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현은 원나라 만권당에서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시문서회를 교유하며 원대문화를 수용했고,
이는 고려말 조선초 문예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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