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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서울 여행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918~2018) : 그 찬란한 도전 -사찰로 가는 길

 

대고려(918~2018) : 그 찬란한 도전- 사찰로 가는 길

GORYEO : THE GLORY OF KOREA

 

 

 

 

언제 :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어디 : 국립중앙박물관

 

 

2. 1100년의 지혜 : Wisdom of 1,100 Years

 고려는 어떤 나라였나.

남북으로 분열된 중국 대륙의 국제적 상황을 이용해 그들과 대등한 외교를 벌이며,

황제의 나라를 자임했던 정치 조직체였다.

상업을 장려해 국내 유통은 물론 중국을 넘어선 지역과도 활발하게 교역했던 경제 공동체였다

무엇보다 고려는 실질적 사고에 충만하고 전문 기술을 숭상했던 실용적 사회였다.

여러 분야의 연구 개발이 활발해, 원산지인 송의 청자보다 한 차원 높은 고려청자를 만들었고

목판 인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평화적으로 공존했으나, 고려의 문화적 성취는

불교문화를 기반으로 정점을 이루었다.

 

1100년의 지혜가 담긴 신비한 마법과 같은 세계를 느린 걸음으로 걸어본다.

지역에 따라 다원적으로 전개된 고래의 불상, 불상 내부에 납입된 복장물과 섬세한 직물은

동북아시아 불교 의례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중요한 퍼슬이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 오백나한도

 남송 1178년 - 비단에 채색 - 미국 보스턴미술관

그림 설명은 위와 같음.


2. 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 보물 제1238호 - 개인 소장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미타 계열의 불화이지만,

독존형 여래도는 총 6점만이 알려져 있다.

자세 면에서는 대부분 측면을 향해 왕생자를 맞이하는 내영來迎의 상징성을 암시한다.

이에 비해 오른손을 내리면서도 이처럼 정면을 향한 자세로 표현한 형식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오른 손에는 금니로 법륜 무늬가 있으며, 가슴에는 반대로 된 만卍자형 무늬가 있다.

녹청의 내의에는 구름과 봉황무늬가, 군청의 치마 끝단은 꽃무늬로 장식되었다.  


3. 석가삼존십육나한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 개인 소장

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 삼존과 십육나한이 그려진 불화이다.

나한은 아리한을 줄여서 부르는 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다.

고려시대에는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비를 기원하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한제를 올렸다.

나한신앙은 고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크게 성행하였고 관련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상단에는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석가모니와 보살들이 그려졌고 아래에는 상서로운 구름을 따라 꽃, 쟁반, 지팡이,

 발우, 금강저, 향로나 경함 등을 들고 경배를 표하는 십육나한을 표현하였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 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 이탈리아 문화박물관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아미타불은 기도의 결과 만나게 되길 고대했던 존재의 모습을 숭고하게 재현했다.

푸른 연꽃 위에 서 있는 아미타여래는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리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뻗었다.

여래에게서 발하는 빛을 형상화한 두광만이 있을 뿐, 모든 이들이 태어나고 싶어 했던 정토에 대한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여 응시하는 시선에서 신비로운 공간의 느낌이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방대한 경전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염송과 염불을 통해 여래의 상호와 공덕을 관상하는

수행 방식이 유행했다. 전에는 중국 불화로 인식되다가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아미타여래임이 밝혀졌다. 


2. 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 비단에 채색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누군가를 맞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그렸다.

이런 도상의 그림은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수행할 때나 실제 임종을 맞이하는 의식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중국 불화이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와 일본에도 유사한 도상의 불화가 남아 있어 동아시아에

아미타 내영來迎에 대한 신앙과 불화가 유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아미타여래도는 선묘가 단순하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3. 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 비단에 채색 -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남송대에는 아미타정토 신앙이 성행하여 아미타불이 많이 그려졌다.

정토신앙에서는 관상수행을 중시하여 아미타불과 정토의 모습, 아미타불이 죽은자를 맞이하는 모습 등을

뚜렷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상상하므로써 실제로 정토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 그림의 아미타불은 몸을 옆으로 틀어 죽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적외선 촬영 결과 하단 왼쪽에서 경원부세마교동화 (慶元府洗馬橋東)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경원부는 1195년부터 1277년 사이에 사용된 중국 닝보(寧波)의 옛 지명이므로

이 그림이 해당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