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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여주) 영월공원의 마암(馬巖)과 삼층석탑

 

여주 영월공원의 마암(馬巖)과 삼층석탑

 

 

 

 

언제 : 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어디 : 경기도 여주시 상동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더니

2018년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찬 바람 불고, 눈 내리는 12월 중순에 든다.

 

초목은

봄에는 꽃 피워 즐거움을 주고, 여름에는 그늘 만들어 더위를 피하게 하고, 가을엔 열매 거두게 하고

고운 단풍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는데,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그 자체로만 의미 있는 것이라 생기발랄했던 초목은

 나목으로 담담히 삭풍을 맞는다.

 

겨울 여강을 보려고 모처럼 여주를 걸음 하였으니

여주 영월공원에 올라 유유히 흘러내리는 겨울 여강(남한강)과 여주 제2경으로 꼽히는 마암(馬巖)

그리고

보물로 지정된 두 개의 삼층석탑을 보고 아름다운 영월루에 올라

 확 트인 겨울 여강을 본다.

 

 

 




 





 

신륵사에서 걸어서 영월공원의 마암과 삼층석탑을 보려고 강변을 따라 가니

조포나루터를 지난다.


 



  



날고 싶어 갈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솟대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여 원망의 눈망울로 먼 하늘만 바라보네


 


강 건너 절벽 위에 영월루

행여 날아갈까 바라보던 갈대들 오들오들 거리네



 

 



삭풍 부는 여주 대교 위에서

영월루 절벽 아래 마암을 바라보네


 

 

 



여주 대교에서 바라본 마암 

 

 

마암(馬巖) 

 △

바위에 크게 馬巖(마암)과 이인용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

마암에서 바라본 여주대교


 

 △

보물 제91호 - 보물 제92호

삼층석탑 

 ▽

 


 


여주 창리 삼층석탑

보물 제91호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상동)

 

이 석탑은 본래 여주읍 내 과수원 안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의 터로 옮긴 것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이나 그 느낌이 독특하다.

아래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이 2개씩 새겨져 있는데, 움푹한 무늬의 바닥선이 꽃모양처럼 솟아올라 있어

 당시의 조각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기단을 마감하는 맨윗돌에는 엎드린 연꽃 모양의 조각을 둘러 놓았는데, 보기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독특한 수법으로 돌을 올려놓고 있다.

즉 1층의 몸돌만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고, 이후 지붕돌부터는 윗층의 몸돌과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모자 형태의 돌 3개를 얹어놓은 듯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며, 추녀는 매우 두껍고 귀퉁이 끝의 들림도 희미하다.

 

각 부분의 재료가 두툼하여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며,

아래기단의 안상이나 3단의 지붕돌 밑면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각수법도 엉성하고 몸돌과 지붕돌을 각 하나의 돌로 쌓는 등 간략한 모습들도 여기저기 보이고 있어

고려 중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여주 하리 삼층석탑

보물 제92호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상동)

 

이 석탑은 본래 여주읍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삼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기둥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얇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뒷면의 중앙에 3cm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19세기 전반 여주목 광여도

 

 

영월루(迎月樓)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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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루(迎月樓)




 

여강 상류


영월루에서 바라본 여주 시내와 여강


여강 하류




 

멀리 조포나루터와 신륵사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이 보인다.

 

 

여주목 선정비

 ▽ 

 


15:00

신륵사를 출발하여 여주대교를 건너 마암과 영월공원을 둘러보고

다시

걸어서 여주 전철역에 도착하니 

17:00


 

 

  

돌이켜보면

여주는 학창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곳이다.

 

누구나 잘 아는 세종대왕 능인 영릉이 이곳에 있고, 고종황제의 비인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강가에 세워진 천년 고찰 신륵사가 있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에는

혼자 야영 장비와 식량을 짊어지고 신륵사 맞은편 금모래은모래유원지에서 캠핑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모래밭에 버드나무 숲이 조성되었는데,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 되어

주변에 호텔도 들어서는 멋진 유원지로 조성되고 있다.

 

또한

결혼하여 신혼여행 후 첫 여행지가 여주라 이 또한 대단한 인연이다.

 

여행자는 왔으면 보고 보았으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신륵사에서 걸어서 여주대교를 건너 영월공원을 둘러보고 여주전철역까지 걸어간다.

 

이제

전철도 놓여있으니 언제 아내와 함께 다시 여주를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