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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강원 여행

(철원) 가을 가득한 직탕폭포(直湯瀑布 )

  

가을 가득한 직탕폭포(直湯瀑布)

 

 

 


언제 : 2018년 10월 3일 수요일

어디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고석정에서 약 2km 상류에

일명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불리는 직탕폭포에 도착한다.


우리는 폭포 하면

깊은 골짜기 절벽의 높이에서 내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데,

직탕폭포는 80m 넓이에 3m~5m 높이라 폭포라고 부르기에 인색할 수 있다.


그러나

폭포 아래 서면

수량의 중압감과 천지를 울리는 압도되어 폭포임을 실감한다.


직탕폭포는

 직탄폭포(直灘瀑布)라고도 하며

신생대 제4기 홍적세 때 용암이 분출해 만든 200~500m 높이의 평평한 철원 용암대지를

한탄강이 침식하며 현무암이 기둥 모양으로 갈라져 나간

주상절리 절벽의 길이 80m 강 전체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높이 약 3∼5m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폭포를 이룬다. 


 

 

 

  

1975년 경 직탕폭포 위에 설치된 상산교.

 

  탱크의 이동 등 군사목적으로 건립돼 이용돼 왔던 상산교가 태봉대교 건립으로 효용가치가 떨어져

 머잖아 철거될 예정이란다. 







 





추가령 열곡(楸哥嶺裂谷)

철원-평강 용암대지로 이 용암대지는 신생대 말에 해당하는 제4기에 평강에서 남서쪽으로 3km에 위치한

오리산(454m)을 중심으로 열하 분출한 현무암이 구조선을 따라 분출되어

이른바 철원ㆍ평강 용암대지를 형성하였으며, 이 용암은 열곡을 따라 북쪽으로는 남대천을 따라

북한의 강원도 고산군 북부일대까지,

남쪽으로는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일대까지 흘러내렸다.


이후 침식력이 작용함에 따라

용암대지를 수직 계곡을 형성하며 깎아내렸기 때문에 한탄강은 깊이 40m에 이르는 협곡을 형성하는 곳도 있다.

현무암이 기둥모양으로 갈라져나간 주상절리(柱狀節理)의 절벽이

한탄강계곡의 특이한 절경을 이룬다



직탕폭포와 구절포

 

직탕폭포 사진 담느라 구절초가 피었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구절초를 또렷하게 살렸으면

정말 멋진 사진이 되었을 터인데.

 

다음부터는 사진 담기 전 주변을 자세히 살펴 멋진 사진이 나오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직탕폭포 바로 위에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다리 상산교와 강 복판의 바위들 그리고 돌다리는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로 보인다.


만일

군사 목적으로 설치한 장애물이라면 참으로 한심스러운 발상이고,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인 직탕폭포에 대한

흉물이다.


그러나

돌다리는 직탕폭포와 거리를 두었고 낮아 경관을 해치지 않고 한탄강을 건너는 수단으로

나쁘지 않게 어울린다.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보니

우리가 생각한 높고 웅장한 폭포가 아니나 정작 폭포 아래에서 보면 대단한 폭포이다.



 




 

 

직탕폭포 아래에서 본 폭포 풍경인데 폭포 위로 인공구조물인 상신교가 보여

폭포의 전경을 망쳐버린다.

 

지금은 폭포에서 200m 아래에 태봉교를 세웠으니 필요 없는 상신교는 철거되어야만 한다.


 




폭포 아래에서 담은 직탕폭포











 

 

 

 

주상절리
한탄강 주변의 주상절리는 세월의 흐름과 풍화작용에 의해 주상절리의 형태는 차츰 사라진다.


 



직탕폭포는

현무암이 기둥 모양으로 갈라져나간 주상절리 절벽의 길이 80m 강 전체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높이 약 3∼5m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폭포를 이룬다



 

 

 

 

직탕폭포와 무지개

내가 오늘 이 시간에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이 무지개를 볼 수 있었을 것이며, 맑은 물 내림과 그 굉음을

어찌 보고 들을 수 있었겠는가!


다른 분들과 공유할 수 있어 감사할 일이며 행복이고 말고!







해가 서으로 많이 기울고 있는데, 오늘 마지막 행선지는 삼부연폭포다.


직탕폭포의 높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세 번의 굽이를 이뤄

장쾌하게 흘러내리며 수묵화를 제 몸으로 그려내고 있는 삼부연 폭포를 찾을 일이다.


조선 시대 금강산을 그리러 가던 겸재 정선이 마음을 빼앗긴 절경이다.

겸재는 금강산을 오가는 길에

이 일대에 은거하던 스승 삼연 김창흡을 찾아왔다가 이 폭포의 경관에 반해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그림 위에 스승 삼연의 시가 얹혔다.

전설도 있다.

궁예가 철원을 태봉의 도읍으로 삼을 때

소(沼)에 살던 이무기 3마리가 폭포의 바위를 뚫고 승천했다는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바위의 구덩이 세 개가 가마솥(釜) 모양과 닮아 ‘삼부연(三釜淵)’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생대 쥐라기에 마그마가 뚫고 들어간 화강암이 지표에 드러난 이후

흐르는 물에 침식돼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