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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충북 여행

(충주) 명승 제42호 충주 탄금대

 

명승 제42호 충주 탄금대

 

 

 


언제 : 2018년 3월 12일 월요일

어디 :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457-3

 

 

충주는

충주호와 월악산 그리고 수안보와 문경새재를 걸음하며 수시로 잠시 들렀던 곳이나

탄금대는 32년 만에 다시 왔다.

 

아주 친한 친구가 서울 모은행에 근무하다가 충주로 발령받아 아내와 아들 수빈이랑 객지생활 하였는데,

친구가 그립다며 놀러 오라고 하여

- 아내들도 아는 사이 -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그들과 수안보 온천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은 충주댐과 탄금대를 방문했는데, 기억에 송어회에 점심을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는 남한강 가에는 민물횟집이 즐비하였더만,

자금은 정리되어 아주 조용하고 훌륭한 역사 유적지가 되었다.

 

 

탄금대 유래 탑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감자꽃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탄금정

탄금정자에서 우측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한편에 신립장군 순국지와 더 아래 열두대가 있다.

 

 

신립장군순국지

 

 

열두대

열두대

사진의 전면 툭 튀어 나온 곳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열두대라고 하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이 있는데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달천(왼쪽 다리)이 만나 양평 두물머리로 흘러가는 곳

 

 

열두대에서 바라본 충주댐에서 탄금대로 흘러오는 남한강

 

 

 

 

 

 

신립 장군 순절비각

배수진을 치고 최후까지 전투에 임했던 신립의 전공을 기리는 비각이다.

신립 장군 순절비각

 

 

 

 

탄금대 국궁장

 

신라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 전한다.

본래 대문산이라 부르던 작은 산으로 밑으로 남한강과 접하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 곳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우륵은 가실왕(嘉悉王) 당시의 가야 사람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고는

신라 청년 중에서 법지(法知)·계고 (階古)·만덕(萬德)을 뽑아보내 악(樂)을 배우게 하였다.

 

우륵은 이들의 능력을 헤아려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한다.

그는 이곳을 우거지(寓居地)로 삼고 풍치를 상미하며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불렀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8,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한을 품고 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열두대라고 하는 100척이나 되는 절벽이 있는데

신립이 전시에 12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신립의 충의심을 기리기 위해 군수 김용은(金容殷)이 건립하고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찬한

탄금대비가 있다.

 

탄금대에는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악성 우륵선생 추모비, 신립장군 순절비,

조웅장군 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과 조각공원 및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