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7호
한재(寒齋) 이목(李穆 )의 사당 한재당(寒齋堂)
언제 : 2017년 9월 18일
어디 :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2017년 9월 18일
하늘 푸르고 너른 김포 들엔 황금물결이 넘실 대던 날
김포 애기봉을 방문할 목적으로 집을 나서 어렵게 애기봉 입구에 도착하니 입구의 군인들이
요즘 애기봉 공사로 일반인은 통제한다네.
많은 날 김포 문수산에서 보면 저 아래 낮으막한 산이 애기봉인 것을 알지만,
정작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 어렵게 찾아 갔다가 빌길을 돌리는데,
저만치 도로 한편에 홍살문이 서 있고, 제법 넓은 사당이 있어 다가서니 한재 이목의 사당이란다.
솔직히
전혀 낯선 이름이지만,
무오사화 때 목숨을 잃고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했다는 행적으로 김종직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
얼마전 다녀온
경남 밀양 김종직 생가와
그의 제자 함양 정여창과 김일손의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다녀온 적이 있어
흥미가 일어 사진을 담았다.
한재(寒齋) 이목(李穆)의 사당 정간사((貞簡祠)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7호
연산군 때의 문신이면서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한
한재 이목(1471~149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헌종 14년(1848)에 세워졌다.
이목은 김종직의 제자로, 연산군 원년(1495)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숭불론(崇佛論)을 주장한 훈구대신 윤필상(1427~1504)을 탄핵하다가 공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무오사화 때 훈구파의 모함으로 조의제문에 관련되어 죽임을 당한 뒤, 다시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목을 베어 거리에 내거는 부관참시(剖棺斬屍)형을 받았다.
태학에 있을 때, 성종이 병이 있어 대비가 무녀를 시켜 벽송정에서 기도를 베풀자,
이목이 태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무녀에게 곤장을 쳐서 쫓아냈다.
후에 성종이 이 사실을 알고 노하여 당시의 유생들을 기록하게 하였다. 유생들은 모두 도망하였으나,
이목 홀로 도망하지 않아서 성종의 칭찬과 술을 받았다.
그는 늘 바른말 잘 하기로 유명하였는데, 이로 인해 공주에 유배된 적도 있다.
무오사화 때,
윤필상의 모함을 받아 김일손.권오복 등과 함께 사형을 받았는데, 형장에 나갈 때 조금도 안색이 변하지 않고,
스스로 절명(絶命)의 노래를 지어 죽으니 그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는 일찍이 공주에 귀양갔던 인연으로 공주의 인사들이 충현 서원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나중에 이조판서로 추종되었으며, 시호은 정간공(貞簡公)이다.
사당은 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 와삼문. 사당인 정간사(貞簡祠)를 일렬로 배치한 구조이다.
공주 귀양살이에서 읊은 시로 그의 강직함을 볼 수 있다.
이 생애는 어려운 세상을 만났으니 어느 강호에 산들 즐겁지 않으랴
푸른 물결 위에는 밝은 달이 비치고 푸른 산 머리에는 백운의 관이 씌웠네
내가 여기에 와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인간이 슬퍼하고 기뻐함을 알랴
△
외삼문
△
내삼문
▽
△
대절문(大節門)
△
정간사(貞簡祠)
정간은 이목의 시호이다.
△
연지
△
한재다정(寒齎茶亭)
연지 옆에는 멋들어진 정자가 빈 공간을 채운다.
한재 이목 선생은 무오사화 때 28세의 젊은 나이로 참혹한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사상은 그 다부 속에 담겨져 있다.
이목 선생의 다부다송(茶頌)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 마음속에 이미 차가 있거늘 어찌 다른 곳에서 또 이를 구하려 하겠는가(是亦吾心之茶又何必求乎彼耶)’라 하여
실재(實在)의 차에서 오심(吾心)의 차로 승화한 경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의 4대 사화
무오사화 : 연산군4년 (1498) 김종직의 조의제문의 사초의 발단으로 시작된 무오년에 일어남.
갑자사화 : 연산군10년(1519) 연산군 어머니 폐비윤씨사건 갑자년에 일어남
기묘사화 : 중종14년(1519) 조광조를 시기한 훈구세력이 주초위왕이란 유언비어를 퍼뜨림.
을사사화 : 명종즉위년(1545) 윤임과 윤원형 두 외척간의 세력다툼
△
관리실
사당은 널찍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후손들이 잘 관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한재당(寒齋堂) 전경
한재당을 나와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북문에서 잠깐 쉬며 강화읍내를 본다.
하늘 높고 푸르며, 메밀꽃과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가을을 노래한다.
강화읍내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니 황금들판이 보기 좋은데,
저 멀리 철조망이 보이고 그 너머 황량한 북한 산이 조망된다.
△
강 건너는 북한 땅
평화롭던 황금 들판 끝에는 녹슨 철조망이 말없이 북한을 바라보고 무어라 말 하는 듯하고,
벌써 70년을 남과 북을 나눠 오고 가지 못하고 있다.
▽
△
북한 땅을 경계하는 우리 군 초소
▽
△
북한에도 가을이 왔으나 산엔 나무들이 없고 선전 마을에는 인적이 고요하다.
△
강화 외포리와 석모도를 오가는 여객선과 뒤로 마니산
△
마음이 울적할 때 혹은 이유없이 자주 찾는 적석사
▽
고려산 적석사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렸더니 "염화의 미소 찻집" 문이 닫혔네.
이 좋은 가을날
혼자
쏘다니는 이유야 있겠지만, 사람은 어울려 사는 것이 옳은 일이다.
이 사진은 작년에 담았는데,
사진을 정리하다가 찾아 해를 넘겨 한 겨울에 가을을 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내가 저수지 너머 강화 외포리와 석모도
그리고
왼편으로 강화 마니산 줄기가 서해에 발을 담그고 있다.
'牛馬처럼 걷는 경기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제부도 (0) | 2018.03.19 |
---|---|
(광주) 유네스코 세계유산 - 사적 제57호 남한산성(南漢山城) (0) | 2018.03.16 |
(포천) 천연기념물 제537호 비둘기낭 폭포 (0) | 2017.11.12 |
(포천) 명성산과 산정호수(山井湖水)의 가을 (0) | 2017.11.09 |
(파주) 감악산 범륜사 (0) | 2017.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