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
언제 :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어디 : 서울 중구 세종대로 21길 15
내가 살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중 하나가 여태 덕수궁 뒤편에 있는 대한 성공회 내부를 들어간 본 적이 없다는 일이다.
학창시절과 직장생활도
성공회와 직선거리 2km를 벗어나 생활해 본 적이 별로 없었음에도, 바쁘게 사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성당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곱게 물든 단풍과 반백이 바람에 날리는 늦가을,
처음으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방문하여 안내자에게 말씀드리고,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두 손 잡고 기도를 드렸는데,
나와서 돌이켜보니
그 기도는 너무 형식적이었고, 진정 기도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직 내 마음에 자리하여 바보스럽게 후회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성공회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생성과 발전, 창조적인 분열이 겹쳐있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분열은 1054년 일어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 이후, 서방교회도 중세를 거치면서
16세기 종교개혁을 다시 큰 분열을 겪는다.
원칙적으로 하나였던 서방교회도 천주교,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으로 분열된 것이다.
전 세계 164개국에 퍼져 있는 성공회는 세계적으로 단일한 교단으로,
이 세계 성공회를 ‘앵글리칸 커뮤니언’ the Anglican Communion 이라고 부르며, ‘친교’ communion 라는 말로
교단 이름을 정한 교회는 성공회밖에 없다.
단일 교단으로서 세계 성공회는
세계에서 천주교와 러시아 정교회 다음으로 교세가 크며 신자는 약 1억명 정도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레오 3세는 성인(聖人)의 조각상이나 그림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는 성상 숭배 금지령을 내렸으며,
이에 로마 교황이 반발하여 동서 교회가 분열하게 되었다.
중세 서유럽 - 비잔티움 제국
황제와 교황의 분리, 지방 분권적 - 황제 교황주의, 중앙 집권적
농업중심, 장원제발달 - 상공업발달, 자영농 중심
로마 가톨릭 - 그리스 정교
라틴 어 - 그리스 어
고딕 양식 - 비잔티움 양식
예배와 풍습은 천주교와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교리와 관행은 개혁교회의 성격을 띠는 교회이다.
천주교나 정교회처럼 주교제도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나, 천주교와 같은 세계적 중앙기구나 헌장은 없다.
대한성공회
1889년 11월 1일
조선교구 설립을 목적으로 존 코프 주교(Charles John Corfe : 한국명-고요한)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켄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은 것이 대한 성공회의 기원이다.
1890년 9월 29일
존 코프(한국명: 고요한) 조선 제물포 도착,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 시작
1890. 12. 21.
현 위치에 한옥을 구입하여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로 명명. 고요한 주교가 첫 감사성찬례 집전
1892. 11. 17.
전통 한옥 건물을 신축하고 장림성당 축성식 거행
1910
첫 교구의회를 개최하고 ‘조선종고성교회’를 ‘대한성공회’로 개칭. 대성당 건축을 결의
영국인 C.S. 딕슨 이 설계하고 영국인 건축가 브록크가 감독했다.
천장은 돔 형식 대신 주황색 기와를 지붕에 올렸고, 지붕과 처마는 우리의 전통 건축물을 차용해 독특하고 아름답다.
창문은 아치형을 취해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랐다.
하지만
개축 당시부터 1996년 이전까지는 ‘1’자의 건축이었다.
비용이 부족해 1926년 이래 십자가의 양 날개를 세우지 못한 절반의 건물로 70년을 지냈다.
1991년 100주년을 기념해 증축 계획하여 1993년 영국인 관광객에 의해 원 설계도를 구했다
서울 성공회성당은 평면상으로는 십자가 모양이다.
십자가 중심의 종탑이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성당의 외벽은 적벽돌과 회백색의 화강석이 섞여 있다.
붉은 빛깔은 순하고 성당은 한층 율동적이며 아치 형태의 문양이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이며,
서울에서도 유일하다.
1988년 100인의 건축가가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선정되었다.
고딕양식
뾰족한 아치가 특징이며, 수직적이며 강렬한데, 명동성당이 대표적.
로마네스크 양식
둥근 아치를 가지며, 선이 완만하며 대체로 단아한데 서울 성공회성당이 대표적이다.
성당 밖을 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안내하시는 분이 계신다.
생전 처음으로 성공회를 방문했다며 사진도 촬영하겠다고 하니 전등 스위치를 올려 불까지 켜 주시며,
몇 가지 특징도 알려주신다.
명동 성당과 비교한다면
명동 성당의 실내 높이는 아주 높고 채광이 잘 되어 어둡지 않으며, 기세등등한 웅장함을 보인다면
성공회 성당은
천장은 높지 않아 단아하면서 창문들이 작아 채광이 어두워 엄숙하면서도 장엄함을 느낀다.
천장은
전통 가옥의 서까래를 장식하여 우리의 전통미를 표현했으며 친근감이 들었다.
특히
내가 가 본 적이 있는 강화도 성공회 성당은 우리의 전통 기와집 양식으로 지어 마치 절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선교 초기에 우리와 이질감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유리조각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화
비잔티움 회화 양식으로, 한국에서 유일하며, 크기도 5m로 동양에서도 가장 큰 모자이크로,
인공조명을 쓰지 않고 자연 채광으로 은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성 앤드류 채플 모자이크를 만든 영국의 장인인 조지 재크에 의해 디자인 되어
1927년부터 38년까지 11년 동안에 걸쳐 완성된 모자이크는 반돔 형태의 총 2단으로,
상층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하층부는 5명의 성인이 있고,
그 아래 대제대가 있다.
비잔티움 회화의 양식에서
주인공을 그릴 때 머리가 길고 눈은 통찰력이 있게 부리부리하며 수염을 길게 그린 후 양쪽에 이름을 쓰는데,
IC와 XC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이 계시는 반원은 아무것도 없는 무한천공에 계시는데
이것은 비물질의 세계, 초월의 세계, 영의 세계, 신성의 세계를 의미하는 천상에 계신 예수님 모습이다.
예수님의 오른손 손가락 세개를 들었고, 왼손엔 책 한 권을 들고 계시는데,
손가락 세개의 의미는 " 이 신전에 들어온 그대를 축복하노라" 라는 축복의 의미이고, 또다른 손가락 세개의 의미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의미라고 한다.
왼손의 책은 요한복음서인데,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천상의 예수님
그 아래 왼쪽에서 부터 다섯 분의 성인은
성 스테파노 - 돌에 맞아 죽은 최초의 순교자로 무릎쪽에는 돌무더기, 한아름 들고 있는 것은 식량 즉 빵이다.
성 사도요한 - 두루마리를 보는데, 성경을 여러편 집필하셨으며 두루마리 밑에 독수리는 요한계시록 속의 요한을 나타낸단다.
성모마리아 - 중앙에 아기예수를 안고 계시는 모습으로 발 아래 두 마리 비둘기는 희생, 재물의 상징적 의미
성 이사야 - 예수님 탄생 이전의 사람으로 구약의 자리로, 예언을 신약에 완성했다는 의미
성 니콜라스 - 4세기 경 터키 어는 곳 주교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원형으로 발치의 아이들을 축복하시며,
어깨 쪽 돗단배는 선원들의 수호 성인이며 교회의 대표로 저 자리에 계신다
또한 대한 성공회 전체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성인들 아래로 긴 띠의 글귀는
순교자가 주를 찬미하고, 사도가 주를 찬미하고, 예언자가 주를 찬미하며, 교회가 주를 찬미한다는 찬미가이다.
지상에 오신 예수는 시간 안에 계시며, 천상에 계신 예수는 시간 너머에 계신다는 이야기란다.
혼자 큰 예배당에 들어서니 위압감도 들었고, 왠지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서툴지만,
두 손을 모우고 기도를 드렸다.
△
제단 앞에서 바라본 후면
△
후면의 파이프 오르간
영국 해리슨사가 1985년 제작된 파이프오르간 - 그 옆에 14:12 시간이 나오네
△
스테인드글라스
은은한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나 격자 무늬 창살도 다분히 한국적이다.
오방색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용해 색깔의 톤을 낮추고 특유의 부드러움을 살려 단순하지만 절제미를 살려
중후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 - 방문객에서 -
전면 재단에 이르기까지는
둥근 아치로 이어져 좌우 여섯 개씩 총 열두 개의 배흘림기둥으로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재단의 좌우 바깥쪽은 익랑을 둬 공간을 확장했다.
내부의 빛도 투과율이 높지 않아 어둠이 짙게 깔린 장엄함을 느낀다.
지하에는 가 보지 못했으나,
지하에는 세례자 요한 성당이다. 서울 성공회성당을 지은 트롤로프 주교가 안치됐다.
성당 가운데 초상이 새겨진 황금색 동판 아래다.
후면 벽에 걸린 성화
1996년 5월 2일 현재의 성당으로 완성
순교추모비
한인 첫 사제 김희준 마가(1866~1946)상
△
6월민주항쟁진원지 표지석
▽
1987년 6월10일부터 6월29일까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우리는 6월 민주항쟁이라 부른다.
1987년 4월13일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4.13 호헌(護憲)조치'를 선언한다.
재야 및 시민운동 단체들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6.10일 국민대회를 대규모를 계획하며
6월5일 국민운동본부 국민대회 행동 요강을 다음처럼 발표한다.
1) 6.10일 오후 6시 전 국민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애국가를 제창한다.
애국가가 끝난 후 자동차는 일제히 경적을 울린다. 전국 사찰, 성당, 교회는 타종을 한다.
국민들은 민주헌법 쟁취 만세, 민주주의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을 한다. 1분간 묵념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의 결의를 다진다.
2) 경찰이 폭력으로 대회 진행을 막는 경우 전 국민은 비폭력으로 이에 저항한다.
연행을 거부하지만 연행되면 일체의 묵비권을 행사한다.
3) 전 국민은 오후 9시부터 10분간 소등을 하고 KBS, MBC 뉴스 시청을 거부한다.
4) 6.10 국민대회는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며 폭력을 사용하거나 기물 파손 등을 자행하는 사람은
국민대회를 오도하려는 외부세력으로 규정한다.
경찰의 봉쇄를 피해
성공회성당으로 미리 들어온 재야인사들과 시민들은 오후 5시경 4·13호헌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미사를 올리고,
오후 6시부터 국민대회를 시작했다.
특히 정오에 울려 퍼진 마흔두 번의 종소리는 통일을 기원하는 종소리로 알려져 있다.
이날 저녁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시 전역과 전국의 주요도시의 대부분의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주었다.
참가자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었다.
‘6월민주항쟁 1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는
이날을 기념하여
1997년 6월10일 성공회성당 뒤편에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지석을 설치했단다.
△
성가수녀원
한옥대문을 가진 ‘ㄷ’자 형의 적벽돌 건물이다.
▽
△
서울주교좌성당 사목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뒤에는 다소곳한 붉은벽돌 한옥이 사제관이다.
그 아래로는 돌을 쌓아 화단을 꾸민 한구석에 "유월민주항쟁진원지" 표지석이 있다.
△
성공회 화단에 핀 꽃
▽
포스터가 예뻐 담았다
1976년 개관된 세실극장은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1977)의 산실이었으며,
1979년 가족 레스토랑으로 문을 연 세실 레스토랑은 1985년 한국 현대 정치사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회동 장소였다.
그리고 성공회 성당이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 잡으면서
세실 레스토랑도 오랫동안 시민단체들의 성명서 낭독 장소가 됐었다.
2009년 세실 레스토랑이 30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사의 큰 물줄기들이 출렁거리던 장소였다.
그리고
덕수궁 대한문 앞은 3.1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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