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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경남 남해) 안개에 덥힌 금산 보리암에서 본 남해 풍경

 

안개에 덥힌 금산 보리암에서 본 남해 풍경

 

 

 

언제 : 2017년 8월 1일 화요일

어디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원래

새벽에 금산에 올라 일출을 보기로 했는데, 지난밤 일정이 꼬여 늦게 잠자리에 들어 일찍 출발한다고 했지만

07:15

한려수도 국립공원 안내소에 도착하니 국립공원 주차료 5,000원을 받고

보리암 입장하는데 1,000원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사찰로

 강원도 낙산사,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살아있는 관세음보살이라 불리는 3대 사찰로 손꼽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무엇을 닮았을꼬!

금산에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다.

 

 

 

대장봉과 형리암

인사로 탐방객을 맞이하는 갈색 바위

금산 보리암 뒤편에 우뚝 솟은 웅장하고 위엄있에 창공을 찌르고 있는 대장봉과 허리 굽혀 절하는 형리암의

위태로운 모습은 절경이다.

 

 

 

보리암 내려가는 길에 핀 백합꽃

비록 상처나고 시들어가는 꽃이지만 얼마나 심성이 고운 분이 이곳에 백합꽃을 심었을까?

 

 

 

보리암 보광전(菩提庵 普光殿)

보리암의 주법당으로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 보광전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초창이래 여러번의

 중건 중수를 거쳤으며 현 보광전은 1968年에 중건하고, 2000年에 중수하였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서천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왕) 삼존상(三尊像)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불감은 2015년 1월 15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 575호로 지정되었다.

 

 

남해 보리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불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75호

남해 보리암 목조 관음보살좌상 불감은 독립적인 관음보살상과 선재동자 용왕이 협시한 불감 형식의 작품이다.

현재 불감의 윗부분은 없어졌고 남아있는 형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형식은 서울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불감(1637~1644)을 시작으로 17세기 부터 19세기 까지 유행하였다.

보리암 목조 관음보살좌상은 통통한 뺨 보발이 없는 점 대칭적인 연판 양측면에 늘어진 옷자락 등에서

조선 전기적 특징을 계승한 조선 후기 17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용왕과 선재동자가 협시한 관음보살 삼존의 도상적 특징을 지닌 점과 사례가 적은 목조불감 형식.

17세기로 추정되는 제작시기 등 자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불상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향나무 금분칠로 좌고 46cm, 슬폭 23cm로 조성되어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곳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선은전(璿恩殿)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각지붕으로 보리암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좌.우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으며, 1996년부터 원불을 조성하여 2000년에 완성하였다.
많은 원불이 봉안되어 있다고 하여 만불전(萬佛殿)이라고도 한다.

 

 

 

안개로 뚜렷한 풍경을 담지 못한다.

 

 

 

범종루

 

 

해수관세음보살상(海水觀世音菩薩像)

보리암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으로 알려진 해수관세음보살상은

1991년 한 기업가의 원력으로 세워졌다.

당시 지형적 영향으로 육로로 운반 할 수 없었던 해수관세음보살상은 헬기를 이용하여 탑대에 안치했다.


좌대는 연꽃문양으로 하좌대와 상좌대로 이루어져 서로 마주 보게 포개져 있고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에 두었다.

의습은 양어깨를 감싸고 각각의 팔을 휘감으며 아래로 흘러 내렸으며,

흘러내린 옷깃은 그 끝이 살짝 들려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이다.

 

 

 

 

 

보리암전 삼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이 탑은 금산 정상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보(裨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리암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683년 (신문왕 3)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으로 절을 세운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태후(許太后)가 인ㄷ에서 가져온 파사석(婆娑石)으로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허태후가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이곳에 안치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양식 또한 고려초기의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이야기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이 탑의 형식은 커다란 돌 하나로 된 단층받침을 세우고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각층 몸체의 사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다. 지붕돌의 처마에는 4단의 받침이 있으며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꼭대기 부분에는 구슬 모양의 보주가 남아있다.

 

※ 비보(裨補) :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의 지역에 탑.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

 

 

 

보리암에서 본 남해

 

 

보리암에서 본 상주 은모래해수욕장

 

 

 

 

 

 

화엄봉

바위 모양이 화엄의 한자 화(華)자를 닮았다 하여 화엄봉이라 하며, 원효대사가 이 바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하여 화엄봉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일월봉

 

 

 

흔들바위

거북이 모양을 닮아 본래는 귀암(龜岩)이라 하였으나,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 흔들거리기 때문에

요암(搖岩)이라고도 한다.

 

 

 

상사암

 

 

 

 

 

 

 

쌍홍문 가는 길

 

 

쌍홍문 안에서 본 바깥 풍경

 

 

 

 

 

세 개의 구멍에 돌을 던져 넣으면 뭐라고 하드만

 

 

쌍홍문

금산의 수문장. 해골을 닮은 검은 동굴

금산 기암괴석 중 제 1경으로 손꼽히며, 석가세존과 세존도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금산을 오르는 관문으로 쌍홍문은 두 개의 무지개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2013년 6월 30일

쌍홍문 수문장인 장군봉에는 송악이 바위를 휘감고 푸르게 오르고 있었는데,

2017년 8월 1일

누가 송악을 잘라 보기 좋던 송악이 죽어버렸다.

(2013년 6월 30일 사진)

 

장군암(將軍岩)

이 바위는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하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 한다.

특히, 이 바위를 휘감고 있는 송악으로 인해 장군암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금산에서 본 남해

 

 

 

 

 

금산산장

예전에 TV에서 보니 이곳에서 보리밥을 팔던데 아침을 안 먹어 식사를 요청하니

이곳에선 식사는 팔지 못하게 되었다네

 

 

 

 

 

 

보광전 뒤에 계단이 있어 올라가니 조그만 동굴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부처님은

환한 곳보다 어두운 곳에 계시는 것을 좋아하실까?

 

 

 

 

허약한 몸으로 먹고살겠다고 일하는 아내가

리암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올여름 더위를 거뜬히 이겨내면 좋겠는데,

성깔이 좋지 않아 복을 주셨는지 모르겠네.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지만,

올여름은 해도 해도 너무 덥고 습하여 돈 없는 사람 더위 먹고 죽으라는 것인가

 

하나님, 알라,처님 "적당히" 라는 단어가 한글이라 모르시나요!

더위도 적당히

비도 적당히

열대야는 없도록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금산을 내려가 다랭이 마을 가는 도중에 어디서든 식사를 해야 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