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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馬처럼 걷는 부산+경남 여행

(경남 하동)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 최 참판 댁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 최 참판 댁

 

 

 

 

언제 :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삼복더위와 장마로 후덥지근한 날, 

땀 흘리며 비탈길 올라 처음 본 최 참판 댁을 본 첫 느낌은 비록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고대광실(室)이다.

 

고대광실 솟을대문에서 본

악양 들은 벼가 기름지고 들 가운데 부부 송(松)이 인상적이다.

또한

민초들의 설운 사연을 담아 하동포구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여기서 손짓하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악양 들에서 본 평사리

 

 

 

 

지난 7월 17일 이곳을 방문하여 담은 사진인데,

8월 2일 여름 휴가로 아내와 남해 여행을 마치고 상경하던 중, 하동 박경리선생 문학관을 다시 찾아

우리가 젊었을 적

시청했던 "토지"의 드라마 세트장을 아내에게 안내하며 젊었을 적 한때를 추억했다.

 

 

 

 

 

소설 "토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로,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 9월에야 완성된, 총 5부 25편, 책 1권에 약 400페이지 분량이 담겨있다.

 

토지의 지리적 배경인 평사리에는 최 참판 댁의 모델이 된 조참판댁이 존재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에 존재하는 조참판댁을 취재하여 서술한 것이 아니라 상상에 의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은

만석꾼 집안인 최참판댁 집안에 어울리는 지리적 배경으로는 전라도의 평야 지대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작가 본인은 경남 통영 출신이라 전라도 지역 사투리나 풍습에 대해선 모르는 게 많아 곤란했는데,

우연히 하동 평사리를 찾게 되어 평사리가 배경에 적합하다고 여겨 결정하였다고.

 

 

 

최 참판

 언젠가 경주 최씨 지인이 이곳을 방문하여 사랑채 최 참판(연출)에게 어디 최씨냐고 물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최 참판은 "토지 최씨"라며 웃더란다.

참 똑똑하고 글을 쓰는 지인인데 처음 그런 최씨도 있나? 어리둥절 했다가 한방 먹은 줄 알고 얼굴 뜨거웠다는 실화가 있다.

사실 최 참판은 실존 인물이 아닌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다.

 

 

 

최 참판 댁 전경

 소설 토지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최참판댁 한옥 건물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소설속 집을 꾸며낸 것이지만,

원래 그 자리를 지키며 그 숱한 이야기를 실제 품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생기가 감돈다.

 


소설 "토지"의 최 참판 댁

 

박경리 선생 소설 "토지"를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바로 최 참판 댁으로 앞마당이 넓은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가는 마당이 넓었단다.

또한

최 참판 댁은 99칸인데, 한 칸의 의미는 방 하나의 양쪽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

 

 

 

바깥에서 본 행랑


 


최 참판 댁 솟을대문에서 본 악양 들




섬진강




부부송

솔은 홀로 서 있어도 가치를 알게 하지만, 함께 서 있으니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겹기까지 하다.

무릇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솟을대문

행랑채나 문간채를 양쪽에 두고 대문을 한껏 높였는데, 그 높이에 따라 그집의 권세를 알 수 있었다.

 

 

 

행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채인데,

세도가 큰 집일수록 노비가 많아 행랑이 줄처럼 늘어서게 되어 줄행랑이라고 하며, 

이렇듯 원래 줄행랑이라는 말은 '세도가 대단한 지역 유지 또는 만석꾼'이라는 일종의 권력을 지닌 부자 개념이었다.


이것과 연관지어 '줄행랑을 놓다' 혹은 '줄행랑을 부르다'라는 말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권력의 판세가 바뀌거나 가세가 급격히 몰락하여 줄행랑 있는 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행랑채와 중문채

 

  

 랑채 지나 담 사이로 음~메 하고 소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구석 외양간에 암소와 송아지가 있어 가까이 보니 모조품이다.

비록

소품이긴 하지만, 암소 울음소리는 어렸을 적 느꼈던 농촌을 느끼는 정겨움이 물씬하여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적 보았던 농사용 소품들이 잘 정리되어 좋았고 정겨웠다.

 

 

 

 

 

 

중문채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채가 있는데

이곳은 주로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이며 여자들의 공간이 안채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안채

조선 시대 양반집은 유교의 영향으로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에서 따로 지내다가

손 없고 좋은 날,

남자가 동침할 날을 정하여 합방을 하였는데 그것은 좋은 자손을 얻으려는 애씀이니 조선 시대 관계와 오늘날 관계의 의미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계단도 1단은 몸종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4단 계단은 양반들의 공간이다.

 

 

안채 마루

 

 

안채 곳간

 

 

사진이 건물들로 구성되어 사랑채 화단의 꽃을 담아 이곳에 올렸다.

 

 

부엌

나무로 된 부엌문의 여닫이와 상부의 채광창이 아주 인상적이다.

 

 

 

장독대

안채 뒤에는 장독대가 있는데 장독에 액막이 금줄도 보이고,

 밤중에 어머니가 정안수 떠 놓고 객지에 나간 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안수는 달랑 맑은 물이지만, 사실은 그 정안수 안에 하늘 달을 담아 달에게 빌었단다.

 

 

 

별당채

드라마 "토지"에서 주인공 서희가 머물던 곳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가 규수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7살이 되면 어머니 곁을 나와 별채에서 유모와 함께 지내는데

규수가 지내는 곳이라 규채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연못이 있는데,

담 안에 있어 연담이라고 하며 연못의 외양은 사각으로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섬은 둥근데 하늘을 의미한다.

또한 집안에 연못을 둔 의미는 화재가 났을 때 방화 시설로 활용하기도 한다.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의 원리로서 우리 선조들의 우주관을 표현했다 

 

 

 

 

사랑채 입구

 

 

 

사랑채

사랑채는 남자의 공간이며 손님이 찾아오면 맞이하는 곳이다.

 

 

사랑채 누마루에서 멀리 광양 백운산이 보인다.

지리산에서 백운산이 보이지 않으면 좋은 터가 아니라는데, 누마루에서 백운산이 보이니 아주 기분 좋은 곳이다.

 

 

 

 

 

사랑채와 뒷채 사이 화단에 거미가 줄을 펴고 있어 담았다.

 

 

 

뒷채

사랑채 뒤에는 뒷채가 있는데,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물려주면 은퇴한 노부부는 뒷채로 물러나 생활하는 공간이나, 때론 첩이 있으면 그곳에 머물러

안채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자가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집안 맨 뒤에는 사당

 

 

 

 

고래등 같은 집 뒤로 빼곡한 대나무 밭

 최치수 어머니 윤씨 마님이 절에 불공 드리려고 갔다가 동학 장군 김개주에게 겁탈당하여 김환을 낳아 보낸 후,

동학농민군이 괴멸하여 머슴으로 위장하여 찾아온 김환을 하인으로 곁에 두며,

별당아씨(최치수의 아내 - 서희의 어머니)와 김환의 불륜을 용인하고

후에 두 사람을 아무도 몰래 도망시킨 곳이 이 대밭일까?